지난해 3·9 대통령 선거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 휴직자 수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6일 나타났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업무를 대행하는 공무원 대부분을 계약직이나 기간제가 아니라 정규직 경력 채용 방식으로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에서는 “선거를 관리하는 헌법기관 직원들이 정작 선거를 앞두고 대거 휴직하고, 일부 간부는 휴직자들의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지방직 공무원인 자기 자식을 정규직으로 경력 채용한 총체적인 도덕적 해이 사태”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이날 선관위에서 받은 ‘2013~2022년 연도별 휴직자 현황’을 보면, 2021년 휴직자는 육아 휴직 140명을 포함해 총 193명이었다. 2020년 휴직자는 육아 휴직 73명 등 107명으로, 1년 사이 휴직자가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상반기에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진 2022년에도 휴직자는 육아휴직 109명 등 190명(상반기 112명·하반기 78명)이었다. 최근 10년 사이 2021년에 이어 둘째로 많은 휴직자 규모다. 휴직 사유는 육아 휴직이 가장 많고 그 외 ‘질병 휴직’과 ‘가족 돌봄 휴직’ 등이 있다고 선관위는 밝혔다. 노정희 전 선관위원장(2020년 11월~2022년 5월)과 노태악 현 위원장(2022년 5월 이후) 시절 크게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대거 발생하자 선관위는 경력 채용 규모를 확대했다. 경력 채용은 2018년 26명에서 지난해 75명으로 4년 사이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반면 신규 공개 채용(선거행정직)은 같은 기간 110명에서 77명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휴직자는 126명에서 190명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선거 전에 육아휴직을 쓰는 직원이 늘어 경력 채용 수요가 많다”며 “신규 공채의 경우에는 ‘선거행정’ 직군은 줄었지만, ‘일반행정’ 직군은 늘었기 때문에 전체 채용 규모는 예년과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선관위 간부들이 경력 채용을 자기 자녀 특혜 채용을 위한 통로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 공무원 규칙’은 “휴직자 업무를 대행하기 위해 ‘시간 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및 ‘한시 임기제 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계약직 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도, 정규직 경력 채용 방식을 고수한 것이다. ‘채용 비리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선관위 간부 11명의 자녀 대다수도 이와 같은 정규직 경력 채용 방식으로 선관위에 취업했다.
정우택 의원은 “선관위의 정규직 경력 채용 행태는, 육아휴직에 들어간 교사를 대신해 기간제 교사가 아니라 경력직 채용을 통해 정규직 교사를 한 명 늘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행정부 소속 기관들도 신입과 경력직 채용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부 소속의 경우 인사혁신처의 감사를 받기 때문에 경력직 채용만 늘리면서 ‘아빠 찬스’를 쓰기 쉽지 않은 구조다. 반면 선관위엔 이 같은 채용 견제 장치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단시일 내에 관련 법과 행정 절차를 숙지해 실무에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었고, 선거 관리를 위한 당사자의 ‘정치적 중립성’까지 확정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 및 ‘정당 가입 금지’ 의무가 공통적으로 적용되며, 업무 파악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현직 공무원으로 우선 충원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휴직자가 복귀하면서 일시적으로 정원이 늘 수 있지만, 매년 정년퇴직자와 면직·휴직자 등 인력 감소 요인이 있어 불필요한 인력 증원을 최소화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선관위 업무의 경우 선거가 있는 해와 없는 해의 차이가 커, 경력직을 한꺼번에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간 선관위 내부에서는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늘어나는 것을 관행처럼 여겨 왔다고 한다. 선거가 없는 해에 낮은 강도의 업무만 하다가, 선거철에 잦아지는 야근과 주말 근무를 피하려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선관위 휴직자는 최근 10년 사이 2021년과 2022년 다음으로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4년 휴직자가 138명(육아휴직 12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대선이 있었던 2017년 137명(육아휴직 112명), 지방선거가 있었던 2018년 126명(육아휴직 96명) 등의 순이었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선거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관리 업무와 병행하기 어려운 성격의 휴직(육아·질병·가족 돌봄)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한 선관위 직원은 “국가가 나서서 출산과 육아를 독려하고 있고, 육아휴직은 개인의 권리인데 그걸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요즘은 일반 직장에서도 육아휴직을 많이 하는데 그런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대거 휴직자 발생으로 생긴 공백을 채우기 위한 ‘정규직 경력 채용’으로 입사한 현직 선관위 간부 아들도 이직 6개월여 만에 7급으로 승진한 뒤 현재 육아휴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택 의원은 “개별 직원이 휴직하는 것은 자유지만, 본연의 선거 관리 업무에 지장을 주는 수준으로 선거 기간에 휴직자가 늘어난다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선관위원장부터 대법관이 비상근으로 겸직하는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조직 전체가 선관위를 생계를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선관위의 존재 의미가 ‘선거 관리’인데 선거 때마다 휴직이 많이 늘어난다면,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