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과 정부가 12일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 하한선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서 실업급여도 같이 올랐는데, 그 결과 일하는 사람이 받는 세후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더 많아지는 등의 부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실업급여가 오히려 구직자의 취업 의지를 꺾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이날 민·당·정 공청회를 열고 실업급여 하한액 하향·폐지를 포함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당정은 실업급여 수급자들이 활발하게 구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부정수급 방지를 위한 행정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당정은 현재 180일만 일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근무 기간 요건을 1년으로 늘리는 등의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공청회 직후 브리핑에서 “면접 불참 등 허위·형식적 구직활동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사업주 공모나 브로커 개입형 부정수급에 대해서는 특별 점검과 기획 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syrup)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그래픽=이지원

노동개혁특위 위원장인 임이자 의원은 “5년간 3번 이상 실업급여를 받는 반복 수급은 최근 5년간 24.4% 증가하고, 실업급여 수급자의 수급 기간 내 재취업률도 상당히 낮다”고 했다.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기간 중 재취업률은 28%였다.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은 “일하며 얻는 소득보다 실업 급여액이 더 높다는 건 성실히 일하는 다수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노동시장 공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현행 실업급여 제도는 퇴직 전 3개월간 평균 임금의 60%를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금액이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최저임금의 80%를 지급하게 돼 있다.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 정부가 ‘소득 주도 성장’을 하겠다며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을 각각 16.3%와 10.9% 인상하면서 실업급여 하한 액수도 2017년 하루 4만6584원에서 2019년 6만120원으로 높아졌다. 정부는 2019년 하한액 기준을 최저임금의 90%에서 80%로 낮췄지만,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힘들게 일하느니 실업급여를 받는 게 낫다’는 풍조가 확산하고 있다.

이날 민·당·정 공청회에 참석한 조현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수급자 중 일부는 ‘취업 안 할 테니 일자리 소개해주지 말라’고 하고,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 선글라스와 옷을 사는 식으로 즐기고 있다”며 “이게 제대로 굴러가는 게 맞는지, 저희도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으로 취업하라고 도와드리고 싶은데 본인들이 거부하니 속상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교통시스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홍길씨는 “직원들이 퇴사를 결정했을 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인 ‘권고사직’으로 처리해달라는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히 있었다”며 “이들의 빈자리를 보충하기 위해 채용할 때 면접 대상자 3~4명 중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실업급여 요건인 ‘구직 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지원한 거 아니냐는 의문이 심각하게 드는 실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