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업자들에게 수천억원의 이익을 안겨다준 대장동 프로젝트가 ‘일당’들에 의해 처음 기획된 것은 통상 2013년 12월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때부터 사업 구상을 정교하게 짠 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측과 공모해 거액의 돈을 손에 쥐었다.
대장동 사건은 크게 두 가지 갈래로 나눠지는데 하나는 이재명 시장이 업자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고, 다른 하나는 거물 법조인들이 대장동 일당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전자에 대한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검찰은 대장동 일당과 각종 의혹으로 얽힌 인사 중 한 명인 박영수 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 특별검사(특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박 전 특검을 비롯해 대장동 의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법조인들이 왜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됐는지를 쫓다 보면 대장동 프로젝트가 기획될 무렵 박 전 특검이 처한 상황에 초점이 모아진다. 박 전 특검은 2010년 검사복을 벗고 직접 ‘산호’라는 이름의 로펌을 개업했는데 당시 산호에서 일했던 K변호사가 박 전 특검의 의뢰인과 했던 통화를 들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통화는 대장동 시행사 대표인 김만배가 2021년 11월 구속된 이후 이뤄진 것인데 통화에서 K변호사는 이런 얘기를 한다.
“당시 (박 전 특검이) 300만원에서 500만원씩 (자문료를) 받던 거래처 20군데 있던 게 다 떨어져 나간 상황이었다. ○○(법무법인 산호에서 박영수 비서로 근무한 여직원)도 (그렇게) 얘기했고, 나도 보고 있잖아. 그래서 쉬려고 했던 상황에서 (영수형은) 그걸(대장동 사업) 만들고 있었던 거야. 특검 되기 6개월 전에. 1500이면 엄청 센 거야. (김만배에게) 그걸 받으면서 뭔 짓 했다는 거는 뻔한 거 아니냐. 끈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이 통화 내용에 따르면 2016년 박영수가 특검으로 임명되기 전인 2014~ 2015년은 박 전 특검의 거래처들이 고정 자문료 지불을 중단한 시점이다.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돈이지만 박 전 특검 입장에서는 매월 들어오던 고정 수입이 끊겼기 때문에 새로운 수익 창출이 필요한 때였다.그런 상황에서 박 전 특검은 대장동 프로젝트의 주범인 김만배로부터 월 1500만원에 이르는 자문료를 받기 시작했고, 결국 대장동 프로젝트에 올라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박 전 특검의 경제적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증언은 김만배의 진술에서도 확인된다. 박 전 특검의 딸은 화천대유에 근무하며 받은 임금 외에 김만배로부터 대여금 명목으로 11억원을 받았고 화천대유에서 분양받은 대장동 아파트로 8억~9억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또 퇴직금으로 받기로 한 5억원 등 김만배로부터 약 25억원의 수익을 얻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만배는 검찰 진술에서 박 전 특검의 딸에게 11억원을 빌려준 이유에 대해 “제가 보니 이전에는 박영수에게 보조를 받아 생활을 하여 생활 수준이 꽤 높았던 것 같다. 그런데 박영수가 특검을 맡게 되면서 수입이 많이 줄어들어 더 이상 생활비를 보전해주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힘이 들어 돈을 차용하게 된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비단 김씨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박 전 특검과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그가 딸을 각별하게 챙겼다고 입을 모은다.
대장동 프로젝트에 참여한 박영수·김만배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황들은 박 전 특검이 개인 로펌을 차린 시점부터 드러난다.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약 30년 동안 검찰에 몸담았던 박 영수 전 검사장은 개인 로펌을 차린 후 대법관이 된 박상옥 변호사,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지낸 이재순 변호사 등을 영입하며 관공서에 버금가는 로펌으로 키웠다. 당시 산호는 서초동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펌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서초역 사거리 인근 빌딩 4층에 위치했던 산호를 제 집 드나들 듯 오갔던 인물 중 하나가 대장동 사건 주범인 ‘머니투데이’ 법조기자 김만배였다. 법조 출입기자들이 서초동 법원, 검찰청, 변호사 사무실을 오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특정 로펌에 매일같이 얼굴을 비추는 건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니다. 기삿거리를 찾기 위해 친한 법조인들과 어울리는 것도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의 흔한 풍경이지만, 박 전 특검과 김만배의 관계는 유독 주변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박영수의 로펌 ‘산호’, 김만배 출입처였다
서울 강남 일대에서 부동산 시행업을 하며 박 전 특검과 막역하게 지내던 김대근 ‘시선RDI’ 대표는 지금도 두 사람의 관계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대표는 주간조선에 “박영수가 김만배에게 법원 가서 누구 만나고 오라고 하거나 서류 심부름 같은 걸 자주 시켰다”면서 “박영수가 (검찰에) 전화하면 김만배가 가서 일을 보고 오곤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박 전 특검과 골프연습장을 자주 다녔는데 어느 날 박 전 특검이 김 대표의 골프채가 좋아 보인다는 말을 건네자 옆에서 그걸 듣고 있던 김만배가 다음 날 김 대표를 찾아와 “그 골프채 영수형 드리자”고 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별 생각 없이 골프채를 김만배에게 줬는데, 골프채에 각인돼 있던 내 이름까지 지워다가 박영수에게 그 골프채를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해당 골프채는 당시 300만원 상당이었다. 김 대표는 또 “박영수가 내 사건 변호인이라 2011년 5월 소송할 때부터 거의 매일 산호에 갔는데 김만배도 매일 왔다”면서 “박영수와 김만배가 비밀 얘기를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특히 “내가 소송을 하고 있을 때 판사한테 로비를 해주겠다고 돈을 달라고 해서 (김만배에게) 4000만원을 줬었다”면서 “박영수한테 (김만배에게 돈을) 줘도 되냐고 물어보면 ‘만배가 일 좀 할 거다. 소송 관련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니 도와주라’고 했다”고 말했다.
박영수ㆍ권순일은 원팀이었나
김대근 대표는 그 무렵 자신이 직접 시행하고 100%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강남 바로세움3차(현 에이프로스퀘어) 빌딩의 소유권 분쟁으로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시행사 시선RDI와 시공사(두산중공업), 신탁사(한국자산신탁)가 1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소유권 다툼인데, 2014년 시행사의 패소로 일단락됐다가 재심을 거쳐 재재심까지 진행되고 있는 희대의 부동산 사건이다. 김 대표가 박 전 특검과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바로 이 사건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시 산호를 운영하던 박 전 특검이 “내 이름으로 처음으로 하는 법무법인이라 비용이 많이 필요한데 네가 자문료를 내주면 내가 너의 사업을 돕겠다”고 해 매달 300만원씩 자문료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또 박 전 특검이 즐겨 다니던 강남 술집 술값도 500만~1000만원씩 선불로 달아놓을 만큼 둘의 관계가 밀접했다고 설명했다. 술집 5곳 정도에 1억원 상당의 술값을 대신 지불했다고 한다. 박 전 특검은 2010년 7월 7일에 열린 바로세움3차 빌딩 상량식에 참석해 둘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김 대표는 방송과 유튜브 등에 출연해서도 박영수 스폰서 관련 내용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 전 특검은 바로세움3차 소유권 분쟁 관련 최초심에서 시행사 측 변호인을 맡았다. 김 대표와 막역한 사이였고, 바로세움3차 상량식에 참석할 만큼 이 사건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변호사였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박 전 특검이 소송을 맡는 조건으로 “딸에게 1층 상가 점포 하나 주라며 수임료 외 부동산을 요구했고, 성공보수로는 50억~100억원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전 특검은 1심 패배 이후 항소도 하지 않고 갑자기 입장을 바꿔 민·형사 소송에서 손을 뗐다. 김 대표는 박 전 특검이 당시 “무시할 수 없는 후배들이 중립에 서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면서 더 이상 소송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고 했다. 김 대표에게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소극적 입장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박 전 특검이 정작 자신의 로펌 변호사들에게는 ‘김 대표를 도와주지 말라’는 다소 강압적인 주문을 했던 정황도 있다. 산호에서 일했던 K변호사는 김 대표에게 “영수형이 대근이 사건(바로세움3차) 도와주지 말라고 해서 아무도 못 도와줬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 전 특검이 운영하던 산호는 내부 와해로 3년여 만에 폐업했다. 이후 박 전 특검은 2014년 2월부터 법무법인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 대표변호사로서 고문 역할을 했다. 박 전 특검이 김대근 대표의 변호인을 사임한 이후 2014년 12월 시행사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하는데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권순일 전 대법관이다. 당시 권 전 대법관이 대법원에 올라온 시행사 사건 주심이었다. 권 전 대법관 역시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대장동 시행사 고문을 맡아 매달 1500만원의 보수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 내용을 보면 2014년은 대장동 일당이 대장동 사업을 설계한 시점으로 알려졌는데, 공교롭게도 이해 박영수와 권순일이 이 시행사 사건에 함께 등장한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2012년 8월부터 2014년 8월까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재직한 뒤 2014년 9월 대법관에 임명됐다. 2012년 12월부터 2년 동안 계류된 사건을 대법관 임명 3개월 만에 주심으로서 기각 판결을 내린 것이다. 대법관 3개월 만에 특정 사건 주심이 된 것, 그리고 2년 동안 계류된 사건을 3개월 만에 파악해서 판결을 내렸다는 점 등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상고심의 경우 상고 사유가 타당하지 않으면 3개월 안에 심리불속행으로 기각 처리하는 게 통상적이다. 이 사건이 상고심에서 2년 동안 계류됐던 것 자체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한 이유다. 바로세움3차 사건은 시행사가 관련 법안(민사소송법 451조 제1항 제4호)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신청 제청을 한 상태로, 관련 내용은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세움3차 사건은 ‘대장동 축소판’
바로세움3차 사건은 대장동 사건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린다. 거물급 법조인들이 관련돼 있다는 의미에서다. 바로세움3차 사건은 시공사였던 두산중공업이 1200억원 상당의 시행사(시선RDI) 채무를 대위변제하고 1순위 우선수익자를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결국 주심이었던 권 대법관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두산중공업의 손을 들어주며 2014년 시행사가 패소했지만, 2019년 재심이 열리기까지 다수의 핵심 증거들이 나왔다. 이후 재심도 기각됐지만 또다시 재재심이 열려 상고심 중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아직도 다투는 쟁점들을 여러 가지다. 상가 오피스 같은 집합건물의 소유권 이전 시 필수 요건인 관할 구청의 검인을 받지 않았고, 소유권 이전 등기가 처리된 시각이 공무원 퇴근 이후인 18시 43분인 점, 관할 구청이 해당 건물과 토지대장에서 원소유주의 이름을 삭제한 것, 건물의 대지권과 소유권이 동시에 처리되지 않아 거래를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등기 상황에서 공매 처분된 점 등이 핵심 쟁점이다.
한편 박 전 특검은 지난 7월 11일 이른바 ‘가짜 수산업자’ 관련 사건 첫 재판에서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탁금지법 위반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김동현)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청탁금지법 위반 재판 첫 공판에서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라 공공 업무를 위탁·위임받은 민간인인 ‘공무수행 사인(私人)’”이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해 1회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 합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하는데, 특검은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박 전 특검은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고급 외제차를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박 전 특검은 일단 구속은 면했지만 앞으로 검찰 수사는 대장동 일당을 비롯한 민간업자들과의 ‘약속’에 따른 박 전 특검 딸의 금전적 이득에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에 힘을 싣고 수사력을 쏟고 있는 가운데 박 전 특검 주장대로 사인 신분이 얼마나 인정될지 주목된다.
주간조선은 박 전 특검에게 김만배씨로부터 매월 자문료를 받은 경위와 시행사 대표로부터 술값 등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지만 마감 시간까지 답이 없었다. K변호사한테도 녹취록에 나오는 사실과 관련해 자세한 설명을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