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 처리수 방류와 관련해 정치권의 관심은 윤석열 대통령과 여야(與野) 정당들의 지지율 흐름이었다. 특히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지지율이 순식간에 반토막 났던 여권(與圈)으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갤럽 조사(8월 25일 발표)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4%로 한 달 전 조사와 비교하면 1%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갤럽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34%)이 민주당(32%)에 비해 2%포인트 높았다. 케이스탯·엠브레인·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의 8월 31일 발표에선 윤 대통령 지지율이 33%였다. NBS 조사도 윤 대통령 지지율이 7월 말에 비해 1%포인트 하락했고 올해 초부터 30%대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 이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32%, 민주당 28%로 지난해 12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앞선 이후 우세가 지속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리얼미터 조사(8월 28일 발표)에선 37.6%였고, 조원씨앤아이 조사(8월 30일 발표)도 38.1%로 각각 직전 조사보다 2%포인트가량씩 올랐다. 민주당은 지난 6월부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해 정부가 앞장서서 중단시키라며 서울과 부산, 인천 등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고 여론전에 당력을 쏟고 있지만 윤 대통령과 여야 지지율에 미치는 충격파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광우병’ 땐 지지율 반토막,‘오염수’는 미미
최근 여론의 흐름은 2008년 광우병 파동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3월 2일 갤럽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52%였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문제를 포함한 한·미 FTA 추진 소식의 영향으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3월 29일 갤럽 조사에서 38%로 하락했다. 이후 4월 18일에 한·미 쇠고기 협상이 체결되고 4월 29일 광우병 위험을 허위·과장한 MBC PD수첩이 방영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시작됐다. 5월 2일부터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시작됐고, 5월 31일 갤럽 조사에서 이 대통령 지지율은 21%까지 추락했다.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도 이명박 정부 출범 때만 해도 지지율이 50%를 훌쩍 넘었지만 20%대로 주저앉았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촛불시위가 100회로 막을 내린 이후인 8월 23일 갤럽 조사에서도 24%에 그쳤고 그해 연말에 가서야 30%대를 회복했다.
최근엔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크게 요동치지 않고 있지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15년 전 광우병 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크다. 2008년 5월 한국갤럽 조사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우리나라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감이 66%로 다수였다. 일부 조사에서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응답이 70% 이상에 달했다. 최근에도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해 “우리나라 수산물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 광우병 파동 때와 비슷하다. 8월 말 NBS 조사에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인체와 환경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해로울 것’(74%)이 ‘해롭지 않을 것’(21%)을 압도했다.
그래도 주요 여론조사에서 야당 지지율이 급등하지 않고 여당의 우세가 지속되는 것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때와는 다른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수산물 등 먹거리 불안감 때문에 원전 오염수가 꺼림칙하고 뿌리 깊은 반일 정서도 있어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는 반대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이 문제가 우리 정부의 책임이라는 야당의 공세에는 동의하지 않는 국민도 많다”고 했다. 광우병 우려가 컸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주체가 우리 정부였던 2008년과 원전 오염수의 방류 주체가 일본 정부인 최근과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학 대 괴담’ 프레임 효과 보나?
정부와 여당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서 과학적 결론이 도출된 만큼 민주당이 괴담 선동을 멈춰야 한다”며 ‘과학 대(對) 괴담’ 프레임으로 맞선 것도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있다. 과거 광우병 파동이나 사드 전자파 사태와는 다르게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야당의 공세가 잘 먹히지 않는 분위기란 것이다. 이상일 케이스탯리서치 부대표는 “민주당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정부와 여당에 대한 공격의 소재로 삼고 있지만, 일본 오염수 반대 민심이 야당에 대한 지지로 모일 것으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라고 했다. 그는 “광우병과 사드 전자파 등 과거 야당의 주장이 모두 진실이 아니었다는 ‘학습 효과’도 일본 오염수 관련 공세가 잘 안 먹히는 원인 중 하나”라고도 했다.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일본을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핵폐수’ ‘방사능 테러’ ‘태평양전쟁’ 등 국민 불안감을 증폭시키며 비과학적 ‘괴담 정치’로 공포감을 조장하고 있는 민주당도 무책임하다고 보는 국민이 많다는 견해다.
민주당이 집권 여당일 때와 말이 달라진 것도 영향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IAEA 기준에 맞는 절차에 따라서 (방류가) 된다면 굳이 반대할 거는 없다”(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일본의 주권적 영토 내 사항”(강경화 외교부 장관)이란 입장을 보였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입장이 달라진 것은 야당의 주장을 신뢰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현 정부 들어 여야가 끊임없이 강하게 충돌하며 형성된 견고한 진영 대결 속에서 야당의 오염수 공세도 지지층 결집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7월 초 코리아정보리서치 조사에선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더라도 국산 수산물을 소비할 의향’을 물어본 질문에 ‘먹겠다’(54.3%)가 ‘먹지 않겠다‘(42.4%)보다 높았다. 일본 오염수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수산물 소비 의향이 높은 것은 국민의힘 지지자의 대다수(88.3%)가 수산물을 ‘먹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는 대다수(75.8%)가 ‘먹지 않겠다’고 답해서 지지 정당별로 일본 오염수 관련 여론이 극명하게 갈려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오염수 문제는 이미 여야 지지율에 녹아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상당 기간 지속된 문제”라며 “여야 간 ‘강대강(强對强)’ 대결 속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역시 각자 지지층에만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일본 오염수의 실질적 피해를 예단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중도층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며 “야당이 ‘공포 마케팅’에 화력을 지나치게 집중한다면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는 중도층에서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