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살의 유서’ 저자인 탈북자 김은주(37) 작가는 7일 통일부 주최 토론회에서 “‘인간 쓰레기만도 못한 것들’은 강제 북송된 탈북민들에게 퍼붓는 북한 부역자들의 흔한 표현”이라고 했다.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북한 당국자들로부터 듣는 모욕적인 표현을 전날 탈북 외교관 출신의 여당 국회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들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북한에서 온 쓰레기라고 한 것은 제 개인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탈북민 전체, 더 나아가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 전체에 대한 인신공격”이라고 했다.
발단은 태영호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는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이런 것이 바로 공산 전체주의에 맹종하는 것”이라고 한 발언이었다. 그러자 의원석에 앉은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으로 항의하면서 태 의원을 향해 “쓰레기” “부역자” “빨갱이”라고 외쳤다. 정치권과 탈북자 사회에서는 “이른바 진보·좌파 세력이 북한 당국이 쓰는 모멸적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며 탈북자를 비하하는 현실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라는 말이 나왔다.
태 의원은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중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찾아가 자신에게 “쓰레기”라는 막말을 한 박영순 의원의 출당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의 제지로 미리 준비해 간 항의 서한을 전달하지 못했다.
‘쓰레기’는 북한 당국과 선전 매체가 탈북자들을 비난할 때 주로 쓰는 비하적인 표현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6년 귀순한 태 의원을 향해 “인간 쓰레기”라고 했고, 대외 선전 매체 ‘메아리’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태 의원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영입되자 “도저히 인간 부류에 넣을 수 없는 쓰레기”라고 했다.
태 의원은 이날 이 대표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단식 천막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민주당 의원들과 극성 지지자들은 “쇼하지 말고 얼른 가라” “북으로 가라”며 그를 막아섰다. 그러는 사이 천막에 있던 이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은 태 의원을 조롱하는 대화를 주고받았다. 윤호중 의원이 “공천받고 싶어서 저러나”라고 하자, 이 대표는 “충성심을 보여주려고”라고 했다. 김상희 의원은 “하, 진짜 저거 사악해”라고 했다.
양측의 승강이가 계속되자 이 대표는 태 의원을 천막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태 의원은 이 대표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지만, 이 대표는 응하지 않았다. 태 의원이 “악수도 안 되느냐”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감염 위험 때문에 안 된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간 단식장을 찾은 야권 정치인들과는 거의 빼놓지 않고 악수를 했었다.
태 의원은 이 대표에게 “민주당 의원들이 제게 ‘북한에서 온 쓰레기’ 같은 막말을 했다. 어떻게 이런 말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할 수 있느냐”며 “대표께서 책임지고 출당시키고,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는 약 3분 동안 “짧게 짧게 (말하라)”라는 말 외에 아무런 발언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민주당 의원들이 태 의원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내자 “본인은 엄청 억울했던가 보지”라고 했다.
이 대표 옆에 앉은 김상희 의원이 “저런 사람을 공천한 국민의힘이 문제”라며 “누구를 공천해도 찍는 이 풍토도 문제고”라고 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한때 공산당이었던 사람을 국회의원까지 시키면서 한때 공산당이었다고 (홍범도 장군) 파묘를 해? 그러지 않아?”라고 했다.
태 의원은 면담 직후 단식 농성장 옆에 서서 이 대표에게 전달하지 못한 항의 성명을 기자들 앞에서 낭독했다. 태 의원은 박영순 의원의 ‘쓰레기’ 막말을 언급하면서 “북한 김정은 정권이 나에게 한 욕설을 그대로 했다”며 “북한 김정은 정권과 같은 시선으로 탈북민을 바라보고 있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야권 인사들이 탈북자를 비하하는 발언은 과거부터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한 탈북 청년은 2012년 민주당 임수경 의원에게 “대한민국에 왔으면 입 닥치고 조용히 살아. 이 변절자 XX들아”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2020년 태 의원의 대정부 질문에 대해 “변절자의 발악으로 보였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북한 요덕수용소 수감자 출신 탈북자로 북한 인권 단체 ‘노체인’을 이끌고 있는 정광일 대표는 “야권 인사들이 탈북자들에게 북한이 쓰는 ‘변절자’니 ‘쓰레기’ 같은 말을 그대로 쓰는 것을 보면 북한 용어를 학습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했다.
태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쓰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탈북자들을 ‘쓰레기’ ‘변절자’ ‘배신자’라고 모욕하는 운동권 출신 야권 인사들의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