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8월 10일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에 있는 ‘펀치볼 묘지’로 불리는 국립태평양기념묘지를 방문해 클라크 라프너 미 태평양 육군사령관(소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 사진은 펀치볼 묘지 관리소에 전시되어 있었으나 그동안 한국 언론 등에 한 번도 공개된 바 없다. photo 이서영 주호놀룰루 총영사 제공

‘US UNKNOWN, KOREA’.

짙푸른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미국 하와이주 오아후섬 사화산(死火山) 중턱에 조성된 묘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힌 석판 수백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묘지 또 다른 편에 있는 석판들을 보고 비로소 이 문구가 의미하는 것을 이해했다. ‘무명의 미군용사, 한국전 참전’.

이 석판은 다름 아닌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무명용사의 묘비였다. 묘비가 위치한 곳은 미국 국립태평양기념묘지(National Memorial Cemetery of the Pacific). 높이 150m의 원뿔 모양 사화산인 펀치볼 분화구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펀치볼 묘지’라고 불리는 이 국립묘지는 미군에 복무했던 용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 국립묘지에는 제1·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전쟁까지 참전 전몰용사 6만3000명이 묻혀있고, 6·25 참전용사들도 1만명이 잠들어 있다.

펀치볼 묘지의 묘비는 일반 묘비의 비석처럼 세로로 곧추서 있지 않고 바닥에 눕혀 있다. 이런 모양으로 묘비를 만든 이유는 2차대전과 6·25전쟁 전후로 묘지가 조성되면서 밀려드는 전사자 시체를 다 감당할 수 없어서라고 한다. 비를 세우는 것보다 바닥에 눕히는 것이 조성비용이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묘지 측은 지금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묘를 조성한다.

펀치볼 국립묘지는 한·미동맹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미군 용사들뿐만 아니라 무명의 한국군인들도 여전히 이곳에 묻혀 있다. 지금도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이 전 세계를 돌며 가져온 유해들을 우선 이곳에 묻는다. 이후 한 구 한 구 신원확인 작업을 거쳐 확인된 유해는 고향으로 돌려보낸다. 지난 7월 26일 밤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돌아온 6·25전쟁 국군전사자 7위의 유해도 미국이 이곳 하와이에 DPAA에 보관하고 있었다.

펀치볼 국립묘지 전경. 정면에 보이는 흰색 국기게양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4년 방문해 사진을 촬영했던 곳이다. 당시만 해도 묘지에 이렇다 할 시설이 없었으나, 현재는 6·25전쟁을 비롯한 여러 전쟁 관련 기록들이 묘지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photo 박혁진

한·미동맹의 상징적 장소, 펀치볼 국립묘지

이곳에 보관 중인 6·25 참전용사 유해들은 6·25전쟁 당시 및 이후 미군이 직접 수습했거나 북한이 1990~1994년 함경남도 장진, 평안북도 운산 등에서 발굴해 미국으로 송환한 유해(1995년 208상자, 2018년 55상자 송환), 1996~2005년 미군과 북한군이 공동 발굴해 미국으로 송환한 유해 등이다. 이곳의 유해들을 대상으로 한·미가 공동감식 작업을 벌여 일단 국군전사자로 판단된 유해 7위를 지난 7월 한국으로 보낸 것이다. 당시 유해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서 DPAA로부터 인수해 우리 공군 특별수송기(KC-330)로 봉환했다. 이런 한·미 간에 특별한 사연이 담긴 국립묘지이기에 하와이를 방문한 역대 대통령들은 우선 펀치볼 국립묘지에 방문해 헌화하며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현재까지 여러 전직 대통령이 펀치볼 국립묘지에 방문했는데, 국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은 이명박·문재인 두 전직 대통령뿐이다. 그런데 정작 펀치볼 국립묘지 측에서는 국내에는 남아있지 않은 1954년 8월 10일 이승만 전 대통령 방문 사진을 관리사무소 한편에 전시해놓고, 한·미동맹의 상징처럼 보존해왔다는 사실이 최근 새롭게 밝혀졌다.

이서영 주호놀룰루 총영사가 발견해 ‘주간조선’에 건넨 이 사진에는 이 전 대통령이 1954년 미국을 국빈방문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귀국길에 펀치볼 국립묘지를 방문한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9월 7일 미국 하와이주 진주만에 있는 USS미주리호 선상에서 열린 한·미 친선행사에서 한 공군사관생도가 6·25참전 용사에게 기념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photo 박혁진

미공개 1954년 이승만 방문 사진

당시 기록을 찾아보면 이 전 대통령은 미국 본토 순방을 마치고 1954년 8월 9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0여명의 한인 동포들과 펠릭스 스텀프 태평양함대 사령관 등의 환대를 받고, 진주만(Pearl Harbor)에 있는 마칼라파 영빈관에 투숙했다. 다음날 이 전 대통령 일행은 사무엘 킹 하와이 주지사를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킹 주지사에게 이상범 화백의 ‘아침’이라는 한국화를 선물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킹 주지사에게 그림을 선물하는 장면도 자료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그동안 이 전 대통령 하와이 순방 관련 사진으로 공개된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 주지사와 만나고 하와이의 신문사 두 곳을 방문한 후 펀치볼 국립묘지를 전격 방문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을 영접한 인사는 클라크 라프너 미 육군 태평양 육군 사령관(소장)이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 10군단 참모장이었고, 이후 한국에서 미 2사단을 지휘한 바 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사진을 보면 이 전 대통령과 라프너 사령관은 펀치볼 국립묘지 입구에 있는 국기게양대에서 헌병의 경례를 받으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 속 국기게양대 뒤편은 국립묘지를 조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듯 이렇다 할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 70년이 지난 지금은 묘지 뒤편에 ‘레이디 콜롬비아 여신상(Lady Columbia)’을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그리고 베트남전쟁까지 20세기 미군이 참전한 주요 전투 과정 및 전쟁 피해 상황 등이 그려진 조형물과 벽이 설치돼 있다.

이서영 호놀룰루 총영사는 이 사진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이 정전협정 체결 다음해인 1954년 국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아이젠하워 대통령 등을 만나고, 귀국길에 이곳을 찾아 미군 참전용사들에게 헌화하며 직접 고마움을 표했다는 것은 이 전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라프너 사령관의 사진이 국립묘지 한편에 전시되고 있었다는 것은 미국 역시 한국과의 동맹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영사는 “지금껏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이 사진은 한·미동맹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서 대단히 가치가 있는 사료”라고 평가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보여주는 사진”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언급했듯이 올해는 미주 한인 이주 120주년이 되는 해다. 1902년 인천 제물포에서 하와이주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이민을 떠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이민이다. 이날 이민자 121명은 일본을 거쳐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했고, 최종적으로 102명이 정착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하와이는 한·미동맹과 그 뿌리가 되는 독립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한 장소로 꼽힌다. 이주노동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며 15~20달러의 월급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10달러, 어떤 사람들은 2~3달러씩을 독립운동자금으로 냈다는 사료가 남아 있다. 이 돈의 상당수가 상하이임시정부로 넘어가 독립운동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당시 하와이에서 상하이임시정부로 넘어간 독립운동자금이 총 200만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오아후섬에 있는 민간묘지에 가면 지금도 독립운동을 했던 지사들의 묘비를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하와이 한·미동맹재단 김동균 회장은 “하와이 교민들은 이곳이 미국 이민의 시작점, 첫 해외 이민의 시작점이라는 데 많은 자긍심을 갖고 있다”며 “뿐만 아니라 많은 동포들이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참여한 데 대해서도 자긍심이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하와이를 빼놓고 독립운동이나 한·미동맹을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와이는 한·미동맹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하다. 현재 하와이에는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 태평양 육해공군 사령관 각 3명 등 모두 4명의 4성 장군이 보직되어 근무하고 있다. 육군 소장 출신으로 워싱턴의 주미대사관 국방무관을 지낸 이서영 총영사에 설명에 따르면 미국의 4성 장군 40명 중에 4명을 한곳에 배치한 곳은 펜타곤을 제외하고는 호놀룰루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만큼 하와이를 미국이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총영사는 “전시에 대한민국에서의 전투작전 수행은 한미연합사가 담당하지만, 미군 증원 전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증원 전력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령부가 바로 하와이에 있는 인도태평양사령부”라며 “하와이는 한국의 안보와 한·미동맹을 지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라고 설명했다. 이 총영사는 “하와이에 있는 인도태평양 사령부와 각 구성군 사령부는 한·미동맹의 과거와 현재이자 미래에 있어서도 중요하다”며 “한·미동맹은 통일의 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와이 한인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미동맹의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인지 한국 교민들이나 관광객들에 대한 하와이 사람들의 대우는 매우 좋다고 한다. 최근 오아후 이웃섬인 마우이 지역에서 산불피해가 나자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 국가 중 가장 먼저 200만달러를 쾌척한 것도 하와이에서는 큰 뉴스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최근 하와이 곳곳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정부와 군, 민간 차원의 교류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9월 6일에는 공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 150명과 육군사관학교 생도 50명이 하와이를 찾아 한·미동맹 관련 장소들을 방문하며 동맹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프로그램들에 참여했다.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은 9월 7일 USS미주리호 선상에서 인도태평양함대 몇몇 장성들과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초청하는 한·미 친선의 밤을 갖기도 했다. USS미주리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맥아더 사령관이 일본으로부터 항복 문서에 서명을 받은 조인식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육사 생도들은 펀치볼 국립묘지와 애리조나 메모리얼 등 2차 세계대전 및 한·미동맹 관련 장소들을 견학하기도 했다. 하와이 주호놀룰루 총영사관에서 만난 육군사관학교 이승민 생도는 “펀치볼 국립묘지에서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을 보면서 우리가 이분들 희생의 중요성을 너무 잊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게 쉽지 않은데, 우리도 나서서 도우면서 더 강한 동맹을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생도 대표이기도 한 이승민 생도는 이날 건배제의를 통해 “다가올 한·미동맹 100주년은 우리들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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