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7일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을 방문해 상인들과 대화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대구에 오니 힘이 납니다.”

“여러분들의 지지로 제가 국정을 맡게 됐습니다.”

지난 11월 7일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은 칠성종합시장 상인들의 손을 맞잡았다. 취임 이후 처음 찾은 칠성시장이라지만, 전통시장 방문 자체는 영남 지역으로만 여섯번째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은 부산 자갈치시장, 거제 전통시장에 한 차례씩 들렀고, 대구 전통시장에만 4번째 방문했다. 영남이 아닌 다른 지역 전통시장 방문은 충청북도 청주 한 곳뿐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칠성시장 방문은 최근 ‘어려운 현장을 직접 찾아 경청하겠다’고 밝혔던 민생 살피기의 일환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영남 중진의원 험지 출마론 등으로 여권에 대한 TK 민심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구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고 보수 통합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보수의 성지인 서문시장을 놔두고 비교적 작은 규모의 칠성시장을 향한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칠성시장 방문은 보수 정당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19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방문 이후 두 번째다. 문 전 대통령이 칠성시장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서문시장 홀대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동안 보수 진영 대통령은 모두 정치적 고비나 새 출발을 앞두고 대구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서문시장으로 향했었다. 이미 3차례나 방문해 유별나게 보이는 ‘서문시장 사랑’을 희석시키기 위해 TK 방문 효과를 내면서도 의도적으로 규모가 작은 칠성시장을 방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대구고등검찰청에서 근무하던 과거를 언급하며 대구가 정치적 고향임을 강조했었다. 대구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윤 대통령은 박근혜 정권 시절 좌천되어 검사로서의 마지막 또한 대구에서 보냈다. 이번에도 윤 대통령은 칠성시장 야채가게에서 청도 한재 미나리를 구입하며 “옛날에 대구 근무할 때 한재 미나리 먹으러 거기까지 갔었다”고 언급했다. 소머리곰탕과 뭉티기(대구식 생고기)를 먹는 자리에서도 윤 대통령은 “예전에 대구 근무할 때 대구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오늘 소곰탕을 먹는다고 해서 아침을 적게 먹었더니 배가 고팠다”고 농담을 건네며 참석자들과 식사를 시작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동석한 양금희 국민의힘 대구시당의원이 ‘대구의 어떤 식당을 갔더니 대통령님이 앉았던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 다녀가신 자리라고 써붙여 놨더라’고 하자, 대통령은 ‘아마 40년 넘게 다녔던 국밥집인가 보다’ 하면서 다 같이 웃었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1시간여 동안의 짧은 오찬 일정이었지만 윤 대통령의 발길이 닿는 칠성시장 골목마다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시장 곳곳을 다니며 미나리와 전통과자, 배추 등 다양한 제품을 구매하고 상인들을 격려했다. 윤 대통령에게 미나리 4만9000원어치를 판매하고 5만원을 받았다는 A씨는 기자에게 “원산지를 묻기에 ‘청도 한재’라고 답하자 친환경 미나리인 것을 아시더라”고 대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한 상인은 “흙을 만져 시커멓고 차가운 손이었는데 악수를 해 주셔서 눈물이 날 뻔했다”고 감회를 전했다. 이어 “고추 튀각을 2만원어치 가져가시곤 3만원을 건네셨다”며 대통령에게 받은 온누리상품권을 자랑스레 꺼내 보였다. 윤 대통령에게 전통과자를 판매했다는 B씨는 “과자를 맛보고 옛날 생각이 난다며 파래, 생강, 자색고구마 과자 등 총 10만원어치를 사가셨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채소가게에서 쌈배추 한 박스를 사며 “김장철이 언제냐”고 묻고 배추, 무 수급처를 물으며 어려움을 살피기도 했다.

“대통령이 필요할 때만 와도 상관없다”

윤 대통령을 목격하고 인사를 나눈 고령층 상인들 대부분은 ‘환영한다’는 반응이었다. 윤 대통령의 방문으로 오전부터 1차선 도로를 펜스로 막고 통제해 손님이 줄고 장사에 차질을 빚었음에도 “오늘은 아예 장사할 생각도 안 했다” “언제 대통령 얼굴을 보겠나”라며 반기는 모양새였다. 시장에서 족발집을 하는 상인(60대)은 “대구 시민은 윤석열이면 다 좋아한다”며 “민심 살피는 게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야채가게 상인(60대)은 “대통령에게 다가가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었다”며 “팬이다”라고 기뻐했다. 과일가게 상인 고모씨(70대)는 “언제 와도 대환영”이라며 “총선이든 뭐든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 필요할 때만 와도 상관없다”고 했다. 한 상인(70대)은 이날 대통령에게 건네기 위해 준비했으나 차마 전달하지 못한 대형 꽃다발을 가게 내부에 그대로 걸어두기도 했다.

11월 첫째 주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4%로 전주 직전 조사보다 1%포인트 소폭 올랐다. 그러나 지역별로 살펴보면 긍정 평가가 가장 우세한 대구·경북의 경우에도 긍정 48%, 부정 41%이었다. ‘보수의 텃밭’인 이곳에서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의 긍정 평가율이 50%를 밑도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날 기자가 만난 시장 상인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거와 달리 대통령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죠. 경제가 제일 문제예요.”칠성시장에서 30년 이상 자리를 지켰다는 강냉이집 상인(60대)은 “원래는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실망이 좀 있다. 옛날만큼 장사가 안된다. 그런데 오늘은 통행을 통제해 손님이 더 안왔다. 찍어줘도 찍어줄 때뿐이지…. 대구를 오셔야 할 상황이 없는데 총선에 필요해서 오신 것 같다”라고 했다.

원래는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한 과일가게 상인(49)은 “오늘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서 온 게 아니라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져서 온 것 같다. 전라도 사람이면 민주당을 뽑았을 때 그 지역에 뭔가 발전이 되는데 영남은 뽑아줘도 뭐가 없다”라며 “칠성시장에서 장사한 이래 경찰 인력이 가장 많이 동원됐다. 과잉 경호 같다. 오늘 아침부터 펜스를 치고 통제를 하더니 떠난 뒤에는 도로에 케이블타이가 잔뜩 떨어져 있었다. 대통령이 떠나고 나서야 마수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밝힌 한 대구 시민은 “운전하다가 대통령 차가 지나가는 걸 봤다. 보수 대통령이니 원래 같으면 주변에 ‘대통령 봤다’고 자랑을 했을 텐데, 오늘은 왜 하필 이쪽이냐고 생각하며 교통 통제에 불만이 들었다”고 했다.

“강서에서 져서 온 것 아닌가”

무당층이라고 밝힌 건어물가게 상인(50)은 “대통령이면 임금이고 우리나라 얼굴인데 쫓아낼 순 없지 않냐”며 “나는 대구 토박이지만 과거 조국을 대통령 후보로 지지하고 문재인에 투표하는 등 원래 민주당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이 반성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국힘이 맞다고도 생각하지 않아 무당층이 됐다. 지금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7개월 만에 대구를 찾은 윤 대통령은 칠성시장 방문 외에도 1개의 공개일정과 1개의 비공개 일정을 소화했다. 칠성종합시장 방문 전인 오전에는 보수관변단체인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 참석해 “가짜뉴스 추방 등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를 적극 지지, 응원한다”고 밝혔다. 시장 방문 이후에는 비공개 일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아 유재하 변호사 등과 “박정희 대통령의 배울 점을 국정에 반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경제, 민생 대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건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제4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인사를 나눈 지 겨우 12일 만이다.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방문했을 때는 박 전 대통령이 집안에서 맞았으나 이번에는 현관 계단 아래까지 내려와 지지자들에 인사를 하고 윤 대통령을 맞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박 전 대통령이 윤 대통령이 온다고 해 잔디를 깨끗이 정리했다” “박 전 대통령은 차와 과일을 냈는데, 윤 대통령이 차 중에서도 밀크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홍차와 우유를 미리 준비했다. 홍차의 농도도 윤 대통령의 선호를 미리 파악해 맞췄다. 과일은 윤 대통령이 좋아하는 감과 배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등 대담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하며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친분을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당시 주재한 수출진흥회의 자료를 읽어보니 놀라웠다”며 여러 차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언급했다.

한편 윤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한 지난 11월 7일 부인 김건희 여사는 호남을 훑었다. 특히 전라남도 순천시 전통시장인 풍덕도 아랫장을 돌며 수산물, 건어물 가게와 노점 등에 들러 제철 농산물과 반건조 생선 등을 구매하고 장사에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이후 전라남도 고흥으로 이동해 국립소록도병원을 찾아 한센인을 위로하고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을 격려했다.

“행보 유연해져… 다음에는 호남 갈지도”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 대해 “이준석 전 대표가 TK 신당을 만든다고 하니 마지막 남은 대구 민심까지 잃을까 걱정이 돼 부랴부랴 내려간 것”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난 것도 박근혜 키즈였던 이준석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구체적 일정을 보면 “유연함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가 보인다”고 풀이했다. “대통령은 우리 편과 남의 편을 명확하게 구별할 줄 안다. 검사시절부터 취득한 논리인데,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에도 일관됐었다. 예컨대 이태원 참사 1주기에도 불구하고 유가족을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은 검사와 다르다. 국민 모두가 다 우리 편이다. 그래서 본질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최근에는 이전보다는 다소 유연하게 대응하는 언행이 많아졌다. 대구를 가더라도 보수의 성지인 서문시장이 아닌 칠성시장을 간다거나, 김건희 여사를 순천에 보낸다거나 하는 식이다. 어쩌면 그다음 행보는 광주 등 영남 외의 지역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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