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내년 4월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이 들썩인다. 한 장관은 그간 끊이지 않는 출마설에 선을 그어 왔지만, 최근 미묘한 태도변화를 보이면서 총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됐다. 한 장관은 대구, 대전, 울산 등 연이어 지역 현장을 방문하면서 지지자들과 소통하고, 반복적인 총선 출마 질문에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배우자인 진은정 변호사가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역시 출마설에 불을 지폈다.
정치권에서는 한 장관 등판론을 두고 셈법이 분주하다. 한 장관은 남다른 대야 전투력과 이른바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활용법에 따라 여당을 승리로 이끌 적임자이지만, ‘윤 정부 황태자’ 꼬리표로 중도층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동훈 만나러 전주서 3시간 운전해 왔다”
“만약에 여의도에서 일하는 300명만 쓰는 고유의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요. 저는 나머지 5000만이 쓰는 언어를 쓰겠습니다.” 지난 11월 21일 대전을 찾은 한 장관은 본인의 화법이 ‘여의도 문법’과 다르다는 평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총선 출마나 개각에 대한 질문에는 “저는 제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개각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며 말을 아꼈지만, 정치 경험이 없어 여의도 문법을 모른다는 지적에는 ‘국민의 문법’을 언급하며 맞받아친 것. 정치권에서는 이 발언으로 한 장관이 사실상 출사표를 던졌다고 봤다.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는 동시에, 기존 정치인과의 차별화를 부각한 답변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날 한 장관의 CBT 대전센터·카이스트 방문 일정에는 20~30명가량의 지지자들이 동행했다.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한 장관의 공식 일정을 확인하고 한 장관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찾아온 이들이다. 지지자들은 한 장관이 센터 앞에 도착하자 연신 “한동훈”을 연호했다. 일부 지지자들은 ‘한동훈 파이팅’이라고 적힌 빨간 팻말을 흔들며 한 장관을 응원했고, 한 장관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사인지를 준비해온 팬도 있었다. 지지자들은 한 장관이 센터에 입장하자 건물 밖에서 한 줄로 서서 그를 기다렸다. 일부 보수성향 유튜버들은 행사 내내 한 장관을 따라다니며 실시간 방송을 송출하기도 했다.
CBT 대전센터 건물 앞에서 만난 한 40대 부부는 유튜브 방송을 통해 한 장관이 센터 내부를 둘러보는 모습을 시청하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장관을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전주에서 3시간을 운전해왔다던 부부는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는데, 다행히 일찍 도착해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었다. 준비해온 꽃도 드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좋았다”며 한 장관을 만난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 장관이 좌천됐을 때 사법연수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는 한 여성 지지자는 “(한 장관이) 과거 운동권들이 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민생에 관한 일을 하시지 않느냐”며 “다른 것도 다 멋있지만, 일을 완벽하게 잘한다. 우리는 한동훈 대통령까지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한 장관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팬덤이 형성된 유일한 여권 인사로 꼽힌다. 공식 팬클럽 ‘위드후니’에는 1만3600여명에 달하는 회원이 모여 있다. 전문가들은 한 장관이 기존 정치인과는 다른, ‘검사 출신 엘리트’라는 차별화된 이미지로 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팬덤을 형성하게 됐다고 분석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장관은 586운동권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형성했다. 586그룹은 이데올로기적이고 추상적이다. 반면 한 장관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검사 생활을 통해 민생 현장에 있었던 만큼 사회와 국민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봤다. 이어 “한 장관이 대선 주자 가운데 가장 젊은 만큼, 한 장관의 팬덤 역시 기존 정치 팬덤에 비해 젊다”며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팬덤과 비교했을 때에는 더 합리적이고, 여성까지 포용한다는 점에서 범주가 다르다”고 평가했다.
이날 대전에서 한 장관 역시 지지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화답했다. 스무 명가량의 지지자들에게 20분가량 시간을 할애해 한 사람 한 사람의 요청을 들어줬다. 이 같은 한 장관의 모습은 ‘한동훈 총선 등판론’이 구체화된 지난 대구 방문도 연상케 했다. 한 장관은 지난 11월 17일 법무부 연계기관을 방문한다는 목적으로 대구로 향했지만, 시민들이 몰려들자 기차 예매시간을 3시간 늦추면서까지 지지자들의 요청에 응했다. 한 장관이 “평소 대구 시민들을 대단히 깊이 존경해왔다”며 대구 시민에 찬사를 보낸 것 또한 관심을 모았다. 이에 강선우 민주당 대변인은 “보란 듯이 ‘보수의 심장’ 대구를 찾아 공개 행보를 펼쳤다. 총선을 향한 들뜬 속내를 숨기지 못하는 듯했다”고 논평했다.
한 장관의 전국구 행보가 연말 개각 논의와 맞물리면서 서초동에서는 후임 법무부 장관 인선설까지 돌았다. 대통령실이 한 장관 후임자 검증에 들어갔다는 말이 나오면서, 박성재 전 서울고검장 등 일부 후보군의 실명도 거론됐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한 장관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인 내년 1월 11일 전까지 공직을 내려놔야 하기 때문. 다만 12월 초 예정된 개각에서 한 장관은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에서는 한 장관이 이민청 설립 등 이민 정책에 힘을 싣고 있는 만큼, 법무부 현안을 마무리한 이후 몸값을 높이다가 막판 출마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장관은 카이스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12월 내에 외국인 과학기술 인재들에 대한 비자 정책 특혜 계획을 공식 발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동훈 활용법’ 힘 받는 시나리오는
한동훈 장관의 총선 출마설이 유력해지자 여권에서는 ‘한동훈 총선 활용법’을 두고 다양한 방안이 거론된다. 비례대표 출마설, 종로 출마설, 자객 공천설 등이다. 반면 올해 초중반 용산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국무총리설은 힘을 잃었다. 당초 한 장관이 내각에 남아 국무총리를 맡고, 향후 대선 직행코스를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었지만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로 ‘수도권 위기론’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당내 분위기가 급변한 데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도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탓이다. 최근에는 당 지도부가 이미 윤 대통령에게 한 장관 차출을 요청했다는 보도와 함께, 법무부 참모진들이 한 장관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재명 대항마설’도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일찌감치 등판하면서 희미해지는 모습이다. 지난 대선 때부터 ‘대장동 1타 강사’를 자처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상대로 공세를 펼쳤던 원 장관은 최근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히며 이 대표와의 맞대결을 예고했다. 원 장관은 주변에 “만약 출마하면 가장 어려운 지역에서 가장 센 상대와 붙고 싶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 21일에는 해당 발언의 취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국민과 당을 위해 필요로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도전과 희생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답하면서 ‘명룡대전’ 성사 가능성을 끌어올렸다.
비례대표 출마설은 한 장관을 비례대표에 배치하고 선거대책본부장 같은 직책을 맡겨 나머지 총선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전국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한 장관의 지명도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장관이 비례대표라는 양지에 배치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만약 한 장관이 비례로 나가거나 대구에서 나가게 되면 우리 당이 일종의 태자당(중국 혁명 원로나 고위 관료의 자제들로 이뤄진 집단)이 돼버린다”고 우려했다. 보수성향이 짙어 안정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강남권 출마설 역시 같은 이유로 비판의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한 장관의 비례대표 출마설에 대해 “명분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한 장관은 아주 좋은 곳도, 아주 험지를 갈 수도 없다”며 “한동훈·원희룡 장관 정도가 나가려면 선거에 의미 있는 지역, 즉 ‘승률이 40% 정도였는데 이 사람들이 들어가면 이길 수 있다’ 싶은 지역에 가면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 장관의 강남권 출마설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대표는 “국민의힘이 그간 강남을 소홀히 했다. 강남에 대권 주자를 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아무나 내세웠다”고 말했다. 또 ‘강남우파’의 상징적 인물인 한 장관이 강남에서 소구력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종로 출마설은 한 장관을 상징성 높은 ‘정치 1번지’에 출마시켜 수도권 선거 돌풍을 일으켜야 한다는 방안이다. 한 장관이 종로에 출마할 경우 현재 거론되는 민주당 후보들을 안정적으로 제칠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데다, 한 장관 입장에서도 당선 시 단번에 차기 대권 잠룡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러나 종로 지역구는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지역이다. 민주당 의석수를 가져올 수 있는 지역이 아닌 데다, 최 의원의 재당선 가능성도 있다. 최 의원 역시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종로를 지켜야겠다”며 재선 도전 의지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3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박진 외교부 장관 이후 10년 만에 종로를 국민의힘에 안겨준 바 있다.
“파급력 클 것” vs “제2의 황교안 불과”
인물난에 시달리던 여권에서는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데다, 막강한 대야 전투력을 지닌 ‘조선제일검’의 등판을 환영하고 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지난 11월 20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한 장관이)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정된다면 참 좋은 일”이라며 “이민정책위원으로서 이민정책 토론할 때 많이 봤는데 아주 합리적인 분이고, 저보다 젊지만 제가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22일에는 OBS 뉴스에 출연해 “빨리 당에 와서 도와야 한다. 한 장관에게 도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장예찬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한 장관 총선 출마에 대해 “총선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맞는 것 같다. 다른 어떤 영입 인재나 정치적 호응보다 (파급력이) 훨씬 클 거라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총선 승리에 외연 확장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윤 정부 2인자로 꼽히는 한 장관의 등판이 중도층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 평가가 높아진 만큼 한 장관이 ‘윤 대통령 최측근’ 꼬리표를 떼지 않고 당내에서 입지를 키울 경우 외려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는 지난 11월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통령 부정평가가 상당히 고착화돼 가는 분위기에서 (한 장관이) 윤 대통령의 황태자 또는 후계자 이미지로 선거에 진입하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당에서는 한 장관이 반짝 관심을 받고 있지만, 정작 총선 등판 파급력은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한 장관은 아직까지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며 “지금은 한 장관이 국무위원이라는 메리트를 누리고 있지만, 총선에 나오게 되면 여러 예비 후보 중 한 명이고, 당선되더라도 국회의원 300명 중 한 명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당에서 자리를 맡게 된다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으로서 개인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당 내부에서 여러 의견을 조율해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황교안 전 총리를 기억하면 된다. 황 전 총리도 처음에는 중도보수를 이야기하다가 어려워지니까 태극기 극우로 확 돌아서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