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면담을 하고 있다./뉴스1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지난달 30일 공식 요구한 ‘당 지도부·중진·친윤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혁신안에 대해 김기현 대표가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정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인 위원장은 당시 “4일까지 답을 달라”며 지도부에 최후통첩을 했다. 이에 따라 혁신위는 조기 종료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당초 혁신위는 4일 최고위원 회의에서 ‘당 지도부·중진·친윤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 혁신안에 대해 취지를 설명하고 의결을 요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이날 혁신위에 “활동이 종료되면 그때 최종안을 다 모아서 최고위에 보고해 달라”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이날 혁신위를 향해 “다소 궤도 이탈 조짐도 좀 보인다”고 했다. 혁신위 관계자는 “혁신안을 받을 생각이 없으니 보고하러 오지도 말라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당내에서는 “김 대표가 인 위원장의 요구를 최종 거부하면 인 위원장이 ‘김 대표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혁신위를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부 혁신위원은 “사실상 김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을 마지막 혁신 안건으로 낼 수도 있다”고 했다. 인 위원장과 혁신위원들은 김 대표의 최종 입장이 나오면 회의를 소집해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혁신위는 일단 오는 7일 전체회의를 잡아 놓은 상태다. 이때 당 지도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함께 혁신위 조기 종료를 의결할 수도 있다.

인요한(왼쪽)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다른 참석자의 말을 듣고 있다. 오른쪽은 김기현 대표가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이덕훈 기자

김 대표와 인 위원장은 지난 30일 인 위원장의 ‘공관위원장직 추천’ 발언을 계기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인 위원장은 당시 “4일까지 답을 달라”며 “(혁신안을 안 받을 경우) 나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다.

혁신위 관계자는 “인 위원장 입장에서는 ‘김 대표가 혁신위에 전권을 준다고 했는데 가장 핵심적인 안건은 받으려 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그 혁신안을 실현하겠다’는 취지로 공관위원장직 추천을 요구한 것”이라며 “그런데 김 대표는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느냐’며 인 위원장을 자리를 탐하는 사람으로 폄하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 측 인사는 “민주당의 ‘방송통신위원장·검사 탄핵’과 ‘쌍특검법’ 강행 처리 추진 등으로 국회 상황이 엄중한 시기에 ‘나한테 자리를 주지 않으면 지도 체제를 흔들겠다’는 식의 거래를 하려 드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 대표는 인 위원장의 ‘불출마·험지 출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시점에 거취를 밝히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다. 불출마·험지 출마는 내년 4·10 총선이 임박했을 때 쓸 승부수이기 때문에 미리 소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 위원장은 희생하는 모습을 먼저 보이지 않으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으니 하루라도 빨리 당 주류가 거취에 대해 결정해 달라는 입장이다.

김 대표 측 인사는 “당장 4일 불출마를 선언하면 며칠만 지나도 ‘내년도 예산안’ ‘쌍특검법’ 처리 등 여야 대치로 국민들 머릿속에서 다 잊히고 말 것”이라며 “혁신위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는다고 욕을 먹더라도 원래 계획대로 천천히 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했다.

김 대표가 혁신위의 최종 요구에 어떤 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향후 리더십에 큰 변화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지도부 인사는 “4일 있을 개각에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포함돼 당으로 복귀한다”며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당의 ‘얼굴’을 바꾸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혁신위 요구와 무관하게 내년 초에 자기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힐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윤 핵심과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는 당장 불출마나 험지 출마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친윤 핵심 의원은 “수도권 험지에서 경쟁력 있는 인사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데, 어느 누가 선뜻 험지로 나서겠느냐”고 했다.

그래픽=정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