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9일 부산 동구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2030부산세계박람회 성공유치 시민 응원전에서 부산의 2030 엑스포 유치가 무산되자 시민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photo 연합

부산 엑스포 유치 시도가 불발된 뒤 지난 12월 4일 찾은 부산에서 여야 정치권의 입장은 두 갈래로 갈렸다. 여당 관계자들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모두가 한목소리를 낸 만큼 총선과는 별개다”라고 말한 반면 야당 관계자들은 “엑스포 결과가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영남권은 본래 보수 강세 지역이지만 부산 표심의 향방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는 평가도 많다. 정치 지형이 좌우로 오가며 바뀌는 ‘스윙스테이트(경합지역)’이기 때문이다. 지역 정가는 실망한 PK(부산·울산·경남) 민심이 내년 총선에서 어디로 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부산에선 전체 18석 중 국민의힘이 15석, 민주당이 3석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의석수로만 보면 보수 텃밭으로 보이지만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을 살펴보면 평균 40%를 웃돈다. 국민의힘 당선자와의 득표율 차가 3.2%포인트인 지역구도 있다. 민주당은 엑스포 유치 불발 전부터 내년 총선에서 6~9석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최대 목표 의석인 9석은 부산 전체 의석 중 절반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부산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기승전 엑스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엑스포에 올인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에 엑스포 유치에 성공한다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상승하고 총선에도 여당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동래구에 거주하는 한 40대 주민은 “엑스포가 유치됐다면 여당과 대통령 지지도가 높아졌을 것”이라며 “엑스포 결과가 국민의힘에 불리하게 작동한다기보다는 (유치에 성공했다면) 국민의힘이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못 그랬다”고 말했다.

“박빙이라고 봤는데 충격적 결과”

엑스포 유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지역 정치인조차도 ‘119표 대 29표’라는 결과는 예상 못했다는 입장이다. 부산동구의회 2030부산월드엑스포유치특별위원장인 김미연 국민의힘 구의원은 “저희는 박빙이라고 보고 있었는데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만큼 실망감이 컸다”면서도 “엑스포 결과가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희용 부산시의회 의원(국민의힘, 부산진구1)은 총선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표심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덕도신공항과 북항 재개발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며 “부산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은 상황에서 이 두 가지가 잘 추진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힘을 선택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한 국민의힘 부산시당 관계자는 “지역에서는 사실 엑스포가 어떤 건지 잘 모른다는 의견들도 좀 있었다”며 “엑스포 실패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시민들도 있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크게 신경을 안 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산 지역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엑스포 유치 불발 후폭풍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민주당의 시선은 다르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부산 북·강서구갑)은 주간조선에 “처음에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여야가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총선과 무관하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영향이 있을지 없을지 두고 봐야 할 일”이라며 “부산 시민들이 화가 엄청 났고 격앙된 분위기”라고 했다. 그는 “정부와 여당이 될 것처럼 얘기를 했기 때문에 60~70표만 받았어도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됐나 보다 이해할 텐데 29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지역 정가 관계자는 “엑스포 때문에 민주당이 몇 석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 이어져온 과정에서 엑스포 결과가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photo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산업은행 이전 반대하는 민주당 안 찍는다”

이런 설왕설래 속에 2030, 4050, 6070 등 연령대별로 나눠 지역 주민들의 생각도 들어봤다. 동구에 사는 70대 주민은 “대통령이 열심히 했는데 안 찍어주는 걸 어떻게 하겠느냐”며 “엑스포 안 됐다고 (여당에 표 안 주는 건) 그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일이 총선이라면 어느 당을 찍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국민의힘”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부산 시민으로서 산업은행 오는 걸 반대하는 민주당 때문에라도 국민의힘 찍어요. 부산에선 민주당 놈들 나쁘다 카지. 지금 엑스포 안 된 상황에서 산업은행이라도 꼭 와야 하는데. 그것까지 안 되면 부산 발전할 기회가 없지. 서울만 사람 사는 곳이가. 하나라도 와야지, 지방에.”

동구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최모(62)씨는 부산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했다. “우리는 동구 쪽이니까 코앞에 현장이 되는데, 됐으면 하는 기대심리는 엄청 높았죠. 엑스포가 유치된다면 일이 얼마나 빨리 진행됐겠습니까. 인구도 그만큼 유입이 되는 거고. 근데 기대심리하고 현실하고는 또 다른 거 아닙니까. 노력을 등한시했으면 욕을 당연히 먹어야죠. 근데 그 과정에서 유치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는 것 자체는 높게 평가를 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 생각해요.”

60대 이상은 ‘정부·여당이 엑스포 유치를 위해 열심히 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분위기는 제법 싸늘했다. 동구에 위치한 시장 상인인 40대 주민은 엑스포 유치가 불발되면서 마음이 많이 안 좋다고 말했다. 엑스포 결과는 그의 표심까지도 바꿔놓았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시장 발전이라든지 뭐 여러 가지로 발전이 안 될 것 같으니까. 저번에는 국민의힘 찍었는데 그때 봐서 (결정하겠지만) 이번에는 안 찍지.”

2030 사이에선 “온라인에 공유된 발표 자료를 보고 화가 났다”는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나왔다. 사하구 주민인 황모(29)씨는 “주변에 많은 청년들이 엑스포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최종 프레젠테이션(PT) 영상을 보고는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 하며 분노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 성향이 보수에 가깝다고 소개한 안모(27)씨도 “유치를 간절히 원한다는 국가에서 만든 발표 자료의 수준이 이 정도라니 업체에 돈을 주고 만든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며 “대학생에게 돈을 주고 시켜도 이것보다는 잘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세금이 낭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역에서는 내년 총선에서 표심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한영 부산경제정의실천연합(부산경실련) 사무처장은 “다른 지역은 몰라도 부산에서 엑스포 결과가 총선에 영향을 안 준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라며 “정부·여당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엑스포에 올인하면서 예산이 여기에만 집중된다든지 하는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를 두고 현 정권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내년 4월이면 윤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되기 때문에 정권 심판까지는 아니어도 정권 견제 심리가 우세할 것”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1월 27일부터 12월 1일까지 5일간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7명을 대상으로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를 조사한 결과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37.6%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에서 실시한 윤 대통령 지지율은 11월 2주 차 34.7%에서 11월 3주 차 35.6%, 11월 4주 차 38.1%로 상승세를 이어갔지만 이번 조사에서 3주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PK 지지율은 44.2%로 전주(47.3%) 대비 3.1%포인트 떨어졌다. 엑스포 유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지지율이 올랐다가 무산에 따른 여파로 낮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엑스포 불발을 대하는 여야의 묘수는?

전통적으로 보수 강세 지역이던 부산에서 민주당이 약진한 것은 2016년 20대 총선 때다. 그동안 지역구 의석을 거의 확보하지 못했던 민주당은 당시 전체 18석 중 5석을 가져갔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에선 부산 표심이 민주당에 쏠리며 기초자치단체장 16석 중 13석을, 시의회 47석 중 41석을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부산·울산의 시장직과 경남도지사 자리도 모두 민주당이 차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PK 출신 민주당 대통령’을 배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 의석은 3석으로 줄어들었고 국민의힘이 15석을 확보했다. 2022년 6월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부산시장부터 기초단체장 16석 모두 국민의힘이 싹쓸이했다. 이처럼 조금만 못해도, 혹은 조금만 잘해도 판세가 뒤집히는 상황은 여야 모두가 PK에 공을 들이게 하는 유인이다. 국민의힘은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영남권에서 의석을 빼앗기는 것이 치명적이고, 민주당은 과거 성공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반선호 부산시의원(민주당, 비례대표)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이 확 뒤집어졌다. 부산 시민들은 이 경험을 통해 언제든지 (투표를 통해) 권력을 줬다가 다시 가져올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누군가 실수를 하거나 누가 좀 더 잘하면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는 곳이 부산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엑스포 책임론을 들고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도한영 사무처장은 “잼버리 사태도 있었고 정부의 대외적인 신뢰도가 추락했기 때문에 민주당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선에서 문제제기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는데 외교력이나 정보력 측면에서 무능함을 강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도 엑스포 유치 과정에 함께했던 만큼, 수위 조절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형욱 민주당 부산시당 수석대변인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당장은 실망감이 크기 때문에 엑스포 관련해서 언급을 많이 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며 “상처가 덧날 수 있으니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순 없다”며 “정부가 막판 역전 가능성이 있다고 하고, 대통령도 해외로 움직이지 않았나. 최소한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 판단해서 기대감이 컸는데 29표를 받았으니 당연히 질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으로 민주당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12월 4일 국회를 방문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위한 법률 개정안의 연내 통과를 촉구하는 서한을 민주당 이재명 대표실과 홍익표 원내대표실에 전달했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은 지난해 5월 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됐고, 올해 5월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산은 본점 위치를 서울로 정한 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12월 6일 부산을 찾아 상심한 부산 시민들을 격려·위로하고 부산 중심 남부권 개발 약속을 재확인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부산을 직접 찾은 건 여권이 PK 민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부산 글로벌 허브 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PK 민심을 잡는 국민의힘의 전략은 부산 발전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인 셈이다.

민주당 “부산 8석은 해볼 만하다”

엑스포 불발이 어느 당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두고 봐야 할 부분이다. 민주당은 총선을 앞두고 부산을 비롯한 PK지역을 전략지구로 규정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역대 총선의 흐름을 보면 부산의 민주당 득표율이 계속 상승했고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43%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 국회의원이 있는 3곳은 수성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박빙 지역 5군데 정도까지 해서 8석은 해볼 만한 지역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 수석대변인은 “최근 민주당의 자체 조사 결과를 비롯해 여러 가지 여론조사의 흐름을 보면 부산이 스윙스테이트로 변하고 있다”며 “이에 중앙당에서도 굉장히 관심 있게 PK 민심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부울경 지역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재수 의원은 “신도시가 많은 기장군을 비롯해 북·강서구을, 사상구, 사하구 등 원도심 빼고는 좀 괜찮지 않을까 한다”며 “낙선하긴 했지만 민주당 후보의 득표율이 좋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의석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진갑 지역위원장인 서은숙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최고위원)을 비롯해 변성완 민주당 북·강서구을 지역위원장 등의 당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한편 지역 정가에서는 민주당의 수도권 의석과 부산 의석이 반비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의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2020년 21대 총선 때 (수도권에서) 103석을 가져갔는데 부산에선 3석이었다”며 “2016년 20대 총선과 비교하면 수도권 의석은 21석 늘어난 반면, 부산 의석은 3석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8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로 부산 해운대을 지역구에 당선된 윤준호 당시 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수치다. 그는 “이 결과만 봐도 부산과 수도권 의석이 비례해서 같이 올라간다고 보긴 어렵다”며 “오히려 서울·경기에서 민주당 분위기가 좋으면 부산은 조금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전 한국선거학회 회장)는 “PK와 TK(대구·경북)는 다르다”며 “PK에는 보수만 있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곳으로서 진보 성향도 같이 혼재돼 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부산이 지나치게 엑스포 유치에만 집중하다 보니까 다른 어젠다가 보이지 않았다”며 “박형준 시장의 그런 (전략이 유권자 표심에) 네거티브한 영향을 주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도 많고, 지금 가덕도신공항 등을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무조건 여당에 불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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