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가 대표직 사퇴 전인 지난 11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떠나는 윤석열 대통령을 환송하기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 갔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가 당대표직에서 전격 사퇴한 지 이틀이 지난 15일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표의 ‘정치적 선택’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표 사퇴라는 충격적 사건에도 당이 조용한 건 일련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인요한 혁신위원회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요구받아 왔다. 일부 여권 인사 사이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네덜란드 순방 직전 김 전 대표에게 ‘당대표직은 유지하되 불출마하는 게 어떻겠냐’는 취지로 설득했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결국 대표직을 사퇴하고 총선 출마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한 여권 인사는 “김 전 대표가 버티자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 전 대표를 설득한 시점은 이미 당내에서 ‘총선 위기론’이 확산해 김 전 대표 체제가 더는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당대표직 유지·지역구 불출마’ 요구가 김 전 대표에게는 ‘둘 다 내려놓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김 전 대표로선 불출마 결정은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 측 인사는 “불출마하면 언론에서 ‘대표직도 던지라’고 하지 않았겠느냐”며 “다만 대표 사퇴는 당을 버리는 일인데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 /대통령실

거취 결정을 앞두고 잠행하던 김 전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 무소속 이상민 의원과 연달아 만난 것도 당대표로서 끝까지 본인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됐다. 여권 관계자는 “거취를 둘러싼 압박에 내몰린 김 전 대표가 이 전 대표와 이른바 ‘제2의 울산 회동’을 성사시켜 대표직을 계속 유지하려 했거나, 떠밀리는 모양새로 나가지 않기 위해 사퇴 시점을 늦추려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울산 회동’은 지난 대선 캠페인 때인 2021년 12월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 전 대표가 윤석열 대선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만남을 울산에서 주선해 둘의 극적 화해를 끌어낸 일을 말한다.

실제로 김 전 대표는 지난 13일 오전 11시 서울 모처에서 이 전 대표와 만나 신당 창당을 만류하면서 “내년 총선 때 수도권 격전지에 출마해 수도권 선거를 지휘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는 그날 정오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상민 의원과 점심을 함께하며 국민의힘 입당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날 오찬은 김 전 대표가 2시간 전 급하게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직을 포기할 생각이었다면 잡기 어려운 일정이라는 평가다.

김 전 대표는 이 전 대표, 이 의원과 회동 이후에는 나경원 전 의원도 만났다. 여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와 나 전 의원 둘 다 윤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친윤 진영의 공격을 받고 직위에서 물러난 공통점이 있다”며 “김 전 대표가 이들의 경험을 들어보려 했던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이 전 대표를 만나고 5시간 후 회동 사실이 공개되자 기자회견도 없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퇴문을 배포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네덜란드 순방 중인 윤 대통령이 김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의논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한 당직자는 “김 전 대표는 당과 대통령, 본인 모두 연착륙할 방법을 찾으며 막판까지 거취를 표명할 최적의 시점을 고민했던 것 같다”며 “그 와중에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으니 급하게 입장을 페이스북으로 사퇴문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