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정치가 싫다. 그럼에도 일단은 국회로 가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법적 한계에 부딪혔다. 아무리 (법을) 개정해달라고 해도 국회의원들은 정치인이라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관심이 없더라.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나의 분노를 어떻게든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2월 10일 서울 서초구에서 만난 이수정(59)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내년 총선 출마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회가 발표한 1호 영입인재인 그는 지난 12월 13일 수원정 지역구에 출마를 공식화했다. 당 지도부와 중진 의원들의 희생을 요구한 인요한 혁신위원회는 응답을 듣지 못한 채 활동을 조기 종료했지만 정치 신인인 이 교수는 “혁신위가 생각하는 게 맞다는 걸 저는 몸을 던져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를 ‘용감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수원정은) 험지가 맞지만 용기를 가져볼 생각이다. 용감한 선택을 하면 후회가 안 될 것이다.” 용기를 이야기하는 이 교수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 어떻게 수원정에 출마할 결심을 했나. "지역구가 강남이나 서초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제게 지역구 출마 제안이 올 때부터 제 직장이 있는 곳(수원 경기대학교)으로 제한해서 얘기하더라. 지역구가 학교 정문 앞과 후문 앞이 서로 다르다. 이철규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이 경기지방경찰청장 출신이어서 그런지 후문 앞 수원정에 출마하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경기대 후문 앞에 경기남부경찰청도 있다. 후문으로 출퇴근을 하지만 사지(死地)인 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 수원정은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3선을 한 지역구다. 처음에는 제가 아는 지역이라 오케이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가족들은 국회의원 하지 말라고 반대했다. 남편은 몸무게 10㎏을 빼면 해도 된다는, 도저히 실현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들과 딸은 자신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고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다. 언론에 보도된 후에는 반응이 세 가지로 갈렸다. 극소수는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줬다. 국민의힘에 계신 분들은 '죄송하다'는 전화를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네가 미쳤구나' '명복을 빈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명복을 빌 만한 일을 내가 벌였구나 새삼 깨닫고 있다."
- 왜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인가. "사소한 불법에도 관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약자는 보호받을 수 없다. 전자감독법 도입에 3년이 걸렸는데 지금은 이거 말고 재범률을 떨어뜨리는 형사 정책이 없다. 그때 조두순의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다 진보 인사였다. 나영이의 피해를 인권침해라고 해야지, 조두순의 인권을 침해하니까 전자발찌 하지 말자는 게 말이 되나. '기만적이다' '위선적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후 역시 (민주당이) 위선적이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건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 때문이다. 조어로 피해자를 격하시키는 걸 보면서 분노했다. '설치는 암컷'도 그렇다. 머릿속에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이 원래 설치는 암컷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설치는 암컷이라는 용어가 나온 거다. 저는 25년 동안 '설치는 암탉'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다. 제가 강간범 인터뷰한다고 하면 교도관들이 '암탉이 말이야' '집안이 망한다' 이런 대응을 했다. (민주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여성에게 모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민주당에서 제안이 온 적은 없나. "21대 총선 때 '위성정당 비례로 오시라.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제안받았다.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런지 좋은 제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안 갔다. 만약 제가 제안을 수락했다면 국회에 들어갈 수 있는 순번이었다."
-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조기 해산했다. "혁신위가 미완의 실패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저는 인요한 혁신위가 국민의힘을 크게 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내년 총선에서 회복 불가능한 결과를 맞았을 수 있다. 혁신위 덕분에 변화의 기회는 왔다. 혁신위가 스타트를 끊어줬다. 국민의힘은 이제 어떻게 바꿀지를 결정하면 된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나. 혁신위가 생각하는 게 맞다는 걸 그냥 저는 몸뚱아리를 던져서 보여줬다. 험지 출마라는 방식으로. 정치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없었기도 했다."
- 혁신위 활동에 아쉬움은 없었나. "성급한 건 있었다. 혁신위가 그렇게 빨리 결과를 얻기를 원했다면 그건 기대를 잘못한 거다. 예를 들어 제가 25년 동안 교수를 했는데 갑자기 사표 쓰라고 하면 멘붕(멘탈 붕괴)이지 않겠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타임라인은 정해져 있다. 4월 총선 전까지는 결정을 해야 하니까 12월이나 1월에는 변화가 오지 않겠나. 변화를 강제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당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요한 혁신위의 주류 희생안은 혁신위가 조기 종료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친윤(친윤석열계) 핵심으로 꼽히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최근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 의원은 지난 12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의 성공보다 절박한 게 어디 있겠나. 총선 승리가 윤석열 정부 성공의 최소 조건”이라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밝혔다.
- 국민의힘은 총선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까. "(지난 대선 때의) 여성가족부 폐지는 정말 잘못된 선거 전략이었다. 많은 여성 유권자에게 적대감을 느끼게 했다. 인구의 절반이 여자다. 이들을 적대시하는 선거 전략을 가진 정당을 여성들이 어떻게 뽑겠나. 전략이 잘못된 이유는 전략을 세우는 사람들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사람을 다양화하지 않으면 그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협소한 전략으로는 유권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저만 해도 그들과 함께한 사람이 아니고 생각이 같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국민의힘에 많이 들어올 수 있으면 저절로 변화가 도모될 것이다. 최소한 얘기할 수 있는 건 우리 같은 '노땅'들은 잘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전문가들이 많이 유입됐으면 좋겠다. 특히 국민의힘 1호 영입인재 중 한 명인 윤도현 SOL(자립준비청년 지원) 대표가 꼭 국회에 진출했으면 한다."
- 정치 신인이 보는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인이라고 평범한 사람과 섞이지 않는 게 싫다. 저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퇴근 후 혼자 마트에 가서 저녁거리를 잔뜩 사들고 종이봉투를 가슴에 안고 가는 영상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정치가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통할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정치는 기본적으로 '봉사'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봉사도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해야 하지 않겠나. 결국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어디 있는지 열심히 찾아다녀야 한다."
- 국회에 들어가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우선 인신매매 방지법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이들이 성매매를 하고, 임신을 해서 낳은 영아도 온라인을 통해 사고파는 세상이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출생은 했는데 출생신고가 안 돼 증발한 아이들이 2000명 정도다. 태어난 사람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인구가 줄어든다고 얘기하면 뭐 하나. 가정폭력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도 있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 보호가 목적이다. 폭력이 있는데 보호할 가정이 뭐가 있겠나. 피해자가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행법으로 커버할 수 없는 범죄가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법이 필요한데 연세 많으신 권력자들은 현실을 모른다. 그래서 나라도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25년 동안 대학 제자들과 함께 수없이 얘기한 리스트가 있다. 살펴볼 게 너무 많다."
- 수원정 지역에 필요한 것은. "학교 앞이 원래는 다 논밭이었는데 광교신도시가 들어오면서 발전했다. 신도시에 살면서 구도심권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데 신도시와 구도심권을 잇는 도로가 늘 막힌다. 수원을 거점으로 경기 남부권을 도는 지하철이 없다. 서울·경기권 학생들이 학교를 오려면 수원역에서 1시간 동안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지각을 많이 한다. 서울의 지하철을 연장하거나 장기 목표로 경기 서남권의 순환 지하철을 만들어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도시가 생기면서 들어온 직장인의 아이들이 학령기라서 좋은 중·고등학교에 대한 니즈도 굉장히 높다."
- 수원에서 범죄가 많이 일어나나. "신도시 지역은 CCTV가 많이 생겨 굉장히 안전해졌다. 하지만 구도심권은 좀 더 열악해졌을 거다. 최근에 수원정 지역구 제일 남쪽 지대에 가봤는데 옛날에는 뉴코아쇼핑센터가 있어서 굉장히 번화한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다 떠나고 모텔이나 술집이 즐비해서 밤에는 위험하겠더라. 아동·청소년 성매매나 마약 등이 그런 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일어난다. 오원춘 사건도 수원역 인근에서 일어났다. 여러 번 가봤는데 불법 주차 때문에 순찰차도 못 들어가는 곳이다. 차량 위로 올라가서 전봇대 타고 연립주택 2층 베란다로 그냥 들어갈 수 있다. 그때 '여기서 범죄가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범죄학자는 '범죄는 당연히 일어나지만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게 형사 정책이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결국 환경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안 가보면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새로운 입주민이 들어오면 바뀌겠지만 외면된 지역들이 단기적으로는 크게 위험할 수 있기에 이런 부분을 챙길 생각이다."
- 범죄심리학과 정치의 공통점이 있을까. "범죄가 꼭 블루칼라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뒤에 어떤 뜻이 숨어있는지, 입을 통해 나오는 말 뒤에는 어떤 사실이 숨겨져 있는지 분석하는 게 우리 직업이다. 유달리 제가 의심이 많아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정치인들이 실행 의지가 없는 메시지를 던지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정치인의 메시지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근시안적인 시각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장기적으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 정치 롤모델이 있다면. "국가청소년위원장이셨고 아동·청소년 업무를 많이 하신 최영희 전 민주당 의원을 존경한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지역구로 다 가져가면서 아동·청소년 예산이 다 깎인 적이 있다. 근데 이분이 1인 시위를 해서 아동·청소년 예산을 다시 살려냈다. 그 예산으로 해바라기센터(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 등 지원기관)도 많이 생겼다. 해바라기센터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최영희 의원이 합의해서 탄생했다. 고통받는 국민들에게는 여야가 따로 없다. 저도 (국회에 들어가면) 최영희 의원이 예산 투쟁을 하던 그 모습과 다르지 않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