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일 제21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망포역 사거리에서 선거운동원들이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기 수원은 5개 지역구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 국민의힘으로서는 험지 중 험지다. 국민의힘으로서는 이곳에서 추락한 이유를 알아야 탈환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초 수원은 토호세력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남경필 전 경기지사의 아성으로 보수 지지세가 상당한 곳이었다. 원래부터 국민의힘이 해볼 만한 곳이라는 평가가 높았다. 이곳은 수원 원주민이 전체 120만 인구의 10~15%로 수원이 고향인 유권자가 상당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정치를 하려면 연고가 중요하다. 다른 지역보다 일단 “(수원 소재)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냐”를 크게 묻는 경향이 있다.

“끝까지 지역을 지킨 정치인이 없었다”

최근 수원에서 만난 국민의힘 소속 한 지역 정치인은 이곳에서 국민의힘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끝까지 흥화진을 지킨 ‘양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탄하며 “끝까지 지역을 지킨 정치인은 없고 유불리에 따라 이곳저곳을 옮기는 모습만 계속돼 패배감만 가득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복수의 지역 정치인들 의견을 정리하면 “지난 12년간 지역을 지킨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총선 후보가 됐다가 낙선할 경우 자신의 지역을 지키지 않고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끝까지 남아서 4년 후 다시 도전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기에 “5곳 당협위원장이 서로 뭉쳐서 전략을 짠 경험이 없고, 각자 자기 선거만 치른 곳”이라는 내부 평가도 있다.

국민의힘의 추락은 남경필 전 지사의 갑작스러운 정계 은퇴가 결정적이었다. ‘포스트 남경필’을 세우지 못한 것이 뼈아프다는 지적이 아직도 나온다. 수원 전체를 아우르는 큰 정치인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 전 지사에 대한 불만도 여전하다. 남경필계의 존재가 희미할 정도로 후배 정치인을 키우는 데 인색했다는 것이다. 과거 남경필 측근 그룹 가운데 당협위원장급은 한규택 당협위원장(수원을)이 유일하다.

포스트 남경필을 노리고 정미경·김용남 전 의원 등이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정미경 전 의원의 경우 수원 권선구에서 당선(18대)되고, 다음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갔다가 낙선했다. 그 후 보궐선거(19대)에서 다시 당선되었으나 수원무(20대)에서 낙선하고 2018년 수원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 다시 수원을(21대)에 도전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기왕 수원을에 터를 잡았으면 다시 도전하면 좋겠지만 이번 총선은 서울 양천갑에 도전한다.

남 전 지사의 수원병을 19대 보궐선거로 물려받았던 김용남 전 의원의 경우 수원병에서 잇달아 낙선(20·21대)하고 작년 수원시장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특히 수원시장 선거가 뼈아프다. 현 이재준 수원시장은 민선 최초로 지역 토박이 출신이 아닌 시장으로 불린다. 김용남 전 의원은 수원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나온 후 사법시험에 합격해 수원지검 부장검사까지 지내 ‘수원 천재’로 불리던 인물이다. 거기에 대선 이후 국민의힘 바람까지 불었는데도 승리하지 못했다.

여기에 “김용남은 선거 때만 나타난다”는 지역의 시선도 부담이다. 이번 선거에서 김 전 의원은 수원병 출마가 예상된다. 당세가 좋아 승산이 있고 토박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다만 현 이혜련 당협위원장을 실질적으로 세운 사람이 김 전 의원이라는 사실을 두고 지역에서는 말이 나온다. “진작에 출마 의사가 있었으면 자신이 당협위원장을 해도 됐는데, 그간 허수아비를 앉혀 놓은 셈”이라는 비판이다.

이와 관련해, 이혜련 위원장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수원병을 되찾기 위해 뛰고 있다”며 “나는 정당한 절차와 경쟁을 거쳐 당협위원장에 임명되었다” 고 말했다.

‘포스트 남경필’ 구심점이 없었다

이렇게 국민의힘은 남경필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민주당은 수원 출신 김진표 국회의장(수원무)을 배출했다. 보수층에도 어필하는 합리적인 이미지가 있고 “실제 점잖은 성향”이라는 평가가 많다. 박광온 전 원내대표(수원정) 역시 친명계로 분류되지 않을뿐더러 합리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번에는 공천이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박 의원은 민주당에서 가장 오른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5선 김진표 국회의장의 경우 진작에 불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수원 구원투수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영입했다. 지난 12월 13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1호 인재로 영입된 이 교수는 수원정 지역구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 교수는 이날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수원정 지역구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뒤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출마의 변에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지역사회의 어려운 분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볼 생각이다. 가장 우선에 두는 목표는 바로 약자 보호이다. 피해자 보호, 아동·청소년 보호. 그것들을 빼고는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들다”며 “출생과 육아, 그리고는 사회생활 복귀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그래서 더 이상은 ‘암컷’이란 천대도 받지 아니하고 경력이 단절될 필요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오랜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가 높은 이 교수는 이곳에 터 잡은 경기대 교수라는 인연이 있다. 바로 이날 홍종기 국민의힘 수원정 당협위원장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날 홍 위원장의 선언으로 지역에서 받은 충격은 크다. 그나마 홍 위원장은 “당협위원장으로 4년을 지킨 유일한 사람”이라고 평가받아왔기 때문이다. 낙선 후 당협위원장을 계속 맡아 두 번 연속 총선에 도전하는 유일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좌절됐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원정은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수원에서 유일하게 국민의힘이 승리한 곳이다. 삼성그룹 변호사를 지낸 홍종기 위원장의 ‘삼성고등학교’ 유치 공약에 대해서는 나름 지역에서 기대가 컸다고 한다.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해 보면 “당에서 이수정을 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겨낼 재간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경선시켜달라고 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다고 보았다”는 것이 불출마의 이유다. 지역에서는 “(지금껏 총선 전에 갑자기 후보가 나타났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이렇게 되었네”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이수정 교수에 대해서는 페미니즘 성향이 보수층에 미칠 영향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 지역에 속한 영통구는 평균 연령이 38.7세로 유달리 젊은 유권자가 많다. “박광온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패를 너무 일찍 보였다”는 우려도 있다.

이수정 구원투수 카드 통할까?

이제 전국적 관심 지역으로 부상한 경기 수원정은 광교를 품고 있는 곳으로, “판교보다 급이 높은 지역이 광교”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준강남이라는 프라이드도 강하다. 서울 강남 지역의 경우 선거에서 마이크 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데 이런 점도 비슷하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 경기지사 선거에 적극 뛰었던 한 지역 정치인은 “김은혜 후보가 늦은 저녁에 아파트 대단지 쪽으로 마이크를 들더라”며 “역효과가 날 텐데 싶어 걱정되었는데 실제로 이곳에서 졌다”고 했다.

수원은 원래 조선시대부터 과거를 보러온 선비들이 거쳐 갔던 교통 요충지다. 지금도 군 공항 이전, 지하철 3호선·신분당선·인동선 연장 등의 교통 관련 이슈가 많다. 또 삼성전자 본사가 있으나 공장을 지을 수가 없어 실질적인 일자리 창출이 적다는 불만도 많다. 경기도의 ‘중심’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삶의 질이 한 단계 더 올라가면 좋겠다는 욕구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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