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국민의힘 이승환 중랑을, 이재영 강동을, 김재섭 도봉갑 당협위원장이 지난 12월 14일 서울 신촌에서 북콘서트를 하고 있다. 3040인 이들은 86 운동권 정치인들이 다음 세대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권에서는 청년 예비주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당초 “86세대 운동권 정치인들이 이념 논쟁에 집중하면서 민생과 멀어졌다”며 86그룹의 퇴진을 주장했던 이들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과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사퇴 등으로 더욱 힘을 받는 중이다. 86그룹의 도덕성 추락, 여당발 인적쇄신이 맞물리며 세대교체 담론이 또다시 총선의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병도 등장했다. ‘올드보이(OB)’의 귀환이다. 김 전 대표 퇴진 이후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을 두고 국민의힘이 혼란을 빚는 사이, 리더십 부재 상황을 지켜보던 OB들이 몸 풀기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OB가 등판하게 되면 청년주자들의 86 퇴진 목소리가 공허해질 가능성도 있다.

송영길 구속에 목소리 커진 청년주자

조국 사태로 촉발된 세대교체론 속에서 치러진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살아남으며 현 야권의 주류이자 주축으로 자리 잡은 86그룹의 대표적 인물은 1963년생으로 연세대 경영학과 81학번인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송 전 대표는 86그룹의 맏형 격이었지만,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11월에는 검찰 수사에 반발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설전을 벌였으나, 한 장관이 NHK(유흥주점) 사건을 재소환하면서 오히려 치부만 드러냈다. 한 장관은 송 전 대표가 “사법고시 합격 하나 했다는 이유로 검사로 갑질하고 지금까지 수많은 증거조작에 휘말려 있다”고 말하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같은 일부 운동권 정치인들이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NHK 다니고, 대우 같은 재벌 뒷돈 받을 때 저는 수사를 엄정히 했었다”고 응수했다. 송 전 대표는 물론 ‘운동권 정치인’을 언급하며 86그룹의 도덕성 문제를 짚어내 흔든 셈이다.

한 장관의 발언 전후로 여권 내 청년주자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김인규 전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행정관과 여명 전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 등 용산 출신 정치 신인을 비롯한 청년주자들은 출사표를 던지며 입 모아 ‘86세대 청산·퇴진’을 외쳤다. ‘동부벨트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영(강동을)·이승환(중랑을)·김재섭(도봉갑) 당협위원장은 86세대 운동권을 정면 비판하는 책을 함께 펴내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12월 14일 합동 북콘서트를 열고 “86세대는 편법과 이념적 선동을 통해 기득권을 지키는 괴물이 됐다”며 “악순환을 끊는 것이 내년 총선의 목표”라고 밝혔다.

지난 12월 19일 송 전 대표의 구속은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윤재옥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12월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송 전 대표 구속에 대해 “586 운동권의 씁쓸한 윤리적 몰락을 목격하게 된다. 부패한 꼰대, 혹은 청렴 의식은 없고 권력욕만 가득한 구태가 오늘 그들의 자화상이 아니겠느냐”며 “그래서 지금 많은 청년들이 586 운동권의 청산을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86그룹을 청산하려면 친일·독재 등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올드라이트나 변절자·배신자 프레임에 갇힌 뉴라이트로는 어렵다. 반면 영라이트나 넥스트라이트, 젊은 세대는 그런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분석했다. 이어 “86그룹 청산의 ‘대상’을 중심으로 보는 게 아니라 청산의 ‘주체’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동부벨트 3인방’ 등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흐름 거스르는 OB들의 귀환

송 전 대표 구속을 계기로 민주당 내부에서도 인적쇄신 목소리가 나왔다. 비명계(비이재명계·혁신계) ‘원칙과 상식’은 입장문을 통해 “송 전 대표 구속을 계기로 민주당의 도덕성 논란이 다시 일고 있는데도 지도부를 비롯해 당내에서는 사과 한마디 없다”며 “윤석열 정권을 심판하려면 먼저 우리 민주당이 도덕성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총선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면서 혁신 요구가 제기되어 온 터다. 여당이 장제원 의원 불출마, 김기현 전 대표 퇴진을 내세워 혁신 의제 선점을 강조하자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인적쇄신의 선빵(선공)은 여당에 뺏겼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여선웅 전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은 “송영길 전 대표가 9번, 이인영 의원이 6번 공천을 받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해 왔지만 세대교체론을 이야기할 때면 동정론 등이 함께 나와 실패했다”며 “현재 그들의 세계관은 국민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86그룹이 자연스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다가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등 이른바 ‘호남 OB’들의 출마 움직임이 잇따르면서 인적쇄신 움직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인적쇄신은 민주당만의 숙제가 아니다. 국민의힘 청년주자들이 ‘86퇴진’을 외치고 있는 반대편에서 OB들의 귀환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와 부산 중·영도구 출마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심재철 전 국회부의장 등의 귀환이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를 이어가는 데다, 여당 지지도도 30% 초중반 박스권에 갇혀 내년 총선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는 탓이다. 당 리더십 부재도 등판의 명분이 된다. 지방 출마를 앞둔 한 여권 인사는 “여권에서 정치 신인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에 신구 조화를 위해 무게감 있는 OB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며 “이준석 전 대표 같은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중재해줄 당내 어른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에서는 OB의 귀환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양지 출마 가능성이 높은 OB들의 등판이 설득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천강정 전 경기 의정부갑 위원장은 “구심점을 잡아주는 차원에서 비대위원장, 공관위원장 선임 등에 목소리를 내주시면 당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직접 출마를 한다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이 있다. 송영길 전 대표부터 86그룹이 물러나는 분위기로까지 몰렸는데, 우리 당에서만 OB가 다시 나온다고 하면 당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명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은 “워낙 지명도가 있으신 분들이니 험지 출마로 결단을 보여주면 좋겠지만, 그런 모습 없이 과거 당신들의 지역구로 나와 한 석을 차지하시는 게 국민의힘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일단 그런 정당을 만들어온 다선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OB들이 공천관리위원회를 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출마는 그들의 자유지만, 당 지도부가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관건이다. 만약 한동훈 장관이 비대위원장이 되면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고강도의 인적 물갈이가 예상되는데, 공천이 가능할 리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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