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곳은 부산이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로 인해 부산의 민심이 요동치면서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까지 부산 민심 잡기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엑스포 유치 실패 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6일 박형준 부산광역시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국내 대기업 총수들을 대동하고 부산 국제시장 일원인 부평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먹방’을 연출했다. 이에 뒤질세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12월 13일 부산에서 현장 최고위원회 회의를 주재했다. 여기에 친윤(親尹) 핵심인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이 지난 12월 12일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등 이른바 ‘낙동강 전선’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역 불출마 ‘무주공산’ 지역구
가장 관심이 가는 지역은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낙동강변의 사상구다. 지역구 지지자를 중심으로 관광버스 92대를 동원할 정도로 막강한 위세를 자랑한 3선의 장제원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사상에는 권력공백이 생긴 상태다. 장 의원은 지난 12월 15일 사상구청에서 마지막 의정보고회를 열고 눈물을 떨구기도 했는데, 당시 모여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반면 국민의힘 내에서는 장 의원의 공백을 메울 만한 인물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장 의원의 눈치만 보느라 아직까지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도 없다.(이하 12월 20일 기준) 국민의힘 내외부에서는 장 의원의 불출마로 자칫 사상을 민주당에 넘겨줄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사상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옛 지역구기도 하다.
실제로 민주당에서는 벌써 3명이나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문 전 대통령의 옛 지역구를 되찾을 기세다. 이 중 배재정 전 민주당 의원(비례)은 일찌감치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사상 탈환을 공언 중이다. 부산일보 기자 출신으로 지난 19대 총선 때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사상 지역구를 물려받아 출마했으나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 장제원 의원에게 연거푸 패한 바 있다. 배 전 의원은 예비후보 등록에 앞선 지난 11월 12일에는 출판기념회도 열었는데,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멘토인 송기인 신부가 직접 다녀갔다.
부산의 원도심인 중구·영도구도 관심 지역이다. 중구·영도구는 현역 황보승희 의원(초선)이 사생활 문제로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역시 진공상태가 됐다. 검사 출신으로 서희건설 이봉관 회장의 맏사위인 박성근 국무총리비서실장의 출마가 거론되지만 지금까지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은 이재균 전 의원뿐이다. 국토해양부 2차관 출신 이재균 전 의원은 중구와 선거구가 통합되기 전 영도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민주당에서는 이 지역에서 네 차례나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비오 전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표밭을 갈고 있다. 영도경찰서장을 지내고 민주당 ‘인재영입 3호’로 영입된 류삼영 전 총경의 출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이 지역 최대 변수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의 출마 여부다. 김무성 전 대표는 6선 국회의원 중 중구·영도구에서 두 번 당선됐는데, 최근 “지역민들로부터 출마 요구를 받고 있다”며 출마를 시사하고 있다.
해운대구갑도 현역 3선 의원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돌연 서울 종로구 출마를 선언하면서 권력공백이 생겼다. 해운대 신시가지를 끼고 있어 ‘부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해운대구갑은 전통적으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해 민주당에는 ‘험지’로 꼽힌다. 민주당에서는 홍순헌 전 해운대구청장이 하태경 의원의 공백을 노리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국민의힘에서는 해운대구 자문변호사를 지낸 박지형 변호사와 부산시 투자유치협력관으로 있는 전성하 셀라스타 대표가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다.
선거구 조정 및 민주당 지역구
남구갑과 남구을은 선거구 조정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지역구다. 국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지난 12월 5일 부산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18개로 현재와 같이 유지하되, 남구갑과 남구을을 하나로 통합하고, 북구·강서구갑과 북구·강서구을 선거구를 각각 북구갑, 북구을, 강서구 3곳으로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같은 안이 국회에서 확정되면 지역구가 합쳐지는 남구갑과 남구을은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남구갑은 친윤계 소장파 의원인 박수영 의원(초선)이 있고, 남구을은 부산지역 민주당 ‘터줏대감’인 박재호 의원(재선)이 있어 이들 현역 의원이 각각 재공천을 받아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역 의원 재공천이 유력한 까닭에 박수영 의원의 지역구인 남구갑에는 국민의힘 예비후보가 없고, 박재호 의원의 지역구인 남구을에는 민주당 예비후보가 아직까지 없다.
반대로 선거구가 2개에서 3개로 쪼개지는 북구·강서구갑과 북구·강서구을은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낙동강 동서 양안에 걸친 북구·강서구갑은 사실상 북구만 속해 있고, 북구·강서구을은 북구 일부 지역과 강서구 전 지역을 포함한다. 북구·강서구갑은 민주당 전재수 의원(재선), 북구·강서구을은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3선)이 현역이다.
이 중 사실상 북구만 속한 북구·강서구갑이 북구갑과 북구을로 나누어질 예정이라, 현역 재선 의원인 전재수 의원이 유리한 지역구를 골라 재공천받을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이에 북구·강서구갑에 도전장을 내민 예비후보는 아직까지 한 명도 없다.
다만 경기도 성남 분당을 출마를 공언해온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최근 “지역구를 당에 백지위임하겠다”고 말해 전재수 의원과 리턴매치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박민식 장관은 북구·강서구갑에서 재선 의원을 지냈고, 전재수 의원과 4차례 맞붙어 2승2패의 기록을 갖고 있다. 다만 선거구가 분리되면 정면대결이 무산될 수도 있다.
북구·강서구을을 지역구로 하는 김도읍 의원은 조금 계산이 복잡하다. 지역구가 북구 일부와 강서구 전 지역으로 구성돼 있는데, 북구 혹은 강서구 중 하나를 택해 공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면 이 지역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퇴 직후 시장 권한대행을 지낸 변성완 전 부시장이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상태다. 변성완 전 시장 권한대행은 지난 지방선거 때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박형준 시장과 맞붙은 적이 있어 예비후보 치고는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4선에 도전하는 김도읍 의원으로서는 변성완 전 시장 권한대행과 정면승부를 벌일지, 아니면 정면대결을 피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 이 같은 고민은 변성완 전 시장 권한대행 역시 마찬가지다. 변성완 전 시장 권한대행은 “아직 선거구 획정이 확정된 내용이 아니라 현 단계에서 어디를 선택하겠다고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김도읍 의원 측은 “획정위 권고안에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고 여야 협의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아직 선거구 분리는 고민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선거구가 유지될 수도 있는 만큼 다른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사하구갑의 최인호 의원(재선)은 민주당의 ‘부산 갈매기’ 3인방 중 한 명이지만, 지역구 조정을 앞둔 박재호 의원이나 전재수 의원과 달리 선거구 조정으로 인한 고민은 없다. 부산에 걸린 18개 의석 중 민주당 현역 의원이 3명에 불과한 만큼, 재공천을 받아 3선 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에서는 지난 두 차례 총선에서 최인호 의원과 맞붙었던 김척수 사하구갑 당협위원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설욕을 다짐 중이다. 지난 총선 때 김척수 후보는 0.87%포인트, 700표 차로 석패한 바 있다. 다만 국민의힘에서 사하구갑 탈환을 위해 사하 대동고를 나온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등 장관급 인사를 공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최인호 의원은 현역 재선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지난 12월 12일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표 단속에 나선 상태다. 현역 의원은 정치신인에 비해 선거법의 제약이 덜한 일종의 ‘현역 프리미엄’으로 예비후보 등록을 서두를 이유가 없는데 분명 이례적이다. 최인호 의원은 “사하구민들을 현장에서 하루라도 더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각오로 일찍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고 등록 이유를 밝혔다.
국민의힘 최다선 5선 지역구
국민의힘 최다선인 5선 서병수 의원과 조경태 의원이 있는 부산진구갑이나 사하구을도 관심이다. 서병수 의원이나 조경태 의원 모두 국민의힘 내 친윤 주류와는 거리가 있지만, 인요한 혁신위원회가 불출마 또는 험지출마를 주장한 ‘친윤 핵심과 당 지도부, 영남 중진’의 요구 조건 중 하나에 해당한다.
그중 서병수 의원은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를 촉구한 직후 친윤계 초선 의원들로부터 “5선 서병수 의원은 총선 승리를 위해 무엇을 기여할지 결단하라”는 요구를 받는 중이다. 게다가 여당 내에서는 서 의원의 동생인 서범수 의원(초선·울산 울주군)도 영남 지역 현역 국회의원이란 점을 들어 “형제 중 한 명이 희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해운대구·기장군갑(현재는 분구)에서 4선 의원을 지내고 부산시장까지 지낸 서병수 의원으로서는 지난 총선 때 부산진구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민주당 후보로 나선 김영춘 전 의원을 물리치고 5선 고지에 오른 터라 또다시 지역구를 옮기기가 여의치 않다. 게다가 이미 한 차례 부산시장을 지낸 터라 총선에 불출마하고 부산시장에 재도전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미디어법률단장으로 있는 원영섭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 조직부총장과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측근인 이수원 전 국회의장비서실장 등이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맞선 민주당에서는 서은숙 전 부산진구청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표밭을 다지고 있다.
조경태 의원 역시 혁신위가 내건 조건 가운데 ‘영남 중진’에 해당한다. 조경태 의원은 사하구에서만 7번 출마해 두 차례 낙선한 뒤 내리 5선 의원을 지낸 사하구의 ‘터줏대감’이다. 그중 세 번은 열린우리당 등 민주당 계열로 배지를 달았고, 두 번은 새누리당 등 국민의힘 계열로 당선됐다. ‘도합 5선’이 아닌 ‘내리 5선’이란 점에서 지역 경쟁력은 막강하다는 평가다. 서병수 의원과 달리 부산시장 등 다른 공직을 맡은 적도 없어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다 해도 차기 부산시장을 노려볼 여지도 있다는 평가다.
조 의원의 지역구인 사하구을에는 5선 현역이 버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 정당을 막론하고 예비후보가 몰리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무소속까지 합쳐 지금까지 등록한 예비후보만 6명에 달하는 등 문전성시다. 아직 예비후보 등록은 안 했지만 민주당이 ‘인재영입 2호’로 발표한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 전무도 “다대포를 e스포츠의 성지로 만들겠다”며 사하구을 지역구 출마의사를 피력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뉴시티특위 위원장을 맡은 직후 민주당 김포 지역구 의원들로부터 “김포에서 화끈하게 붙자”는 요구를 받은 조경태 의원은 “저는 부산을 사랑하고, 사하를 사랑한다”는 말로 재출마를 공언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