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당원존에서 열린 원외 친명 단체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출범식에서 참석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photo 더민주전국혁신회의

최근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비대위 전환, 신당 논의가 가속화됨에도 불구하고 친명 인사들의 행보는 굳건한 모양새다. 특히 원외에선 반명(반이재명) 노선에 더 강경히 대응하며, 내년 총선까지 이재명 대표를 앞세워 “갈 길 가겠다”는 의지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셈법이 복잡해진 당내 분위기와는 결이 전혀 다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대표가 이대로 당권을 포기하면 자기들 총선 길도 어려워지니 더 강하게 밀어붙이라는 건데, 당내에서도 부담을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본선 경쟁력과는 별개로 ‘친명’ 활동만을 앞세운 총선 출마 인사들이 자천타천으로 유력 후보 리스트에 오르고 있는데, 지도부 입장에서 난감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혁신회의서 파생된 각종 친명 단체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앞서 주도하는 곳은 다름 아닌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이하 혁신회의)다. 혁신회의는 지난 6월 4일 시민정치운동단체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큰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당 외곽에서 활동한 지 벌써 반년 가까이 된 곳이다. 출범 당시 “내년 총선만을 염두에 둔 일시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의 혁신과 정치개혁, 사회개혁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대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시민정치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혁신회의의 한 관계자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내년 대선을 바라보며 당 혁신에 기여해 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혁신회의에는 민주당 소속 광역·기초의원, 당직자, 당원, 일반 시민 등 총 200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 17개 시도 중 인천과 세종을 제외한 15곳에 광역조직까지 두고 있다. 이들은 이상민 의원 탈당과 이낙연 전 대표의 창당 시사 등으로 당 분열 조짐이 일던 지난 11월 말까지도 서울·경기·전북·충북·대전·충남 등에서 지역별 출범식을 이어가며 세를 과시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혁신회의는 외견상 앞서의 설명처럼 당 혁신을 목표하는 듯하지만, 모든 활동 내용은 이 대표 지원에 맞춰져 있다. 지난 9월 이 대표가 단식농성을 벌이던 당시 지역별로 릴레이 단식을 진행하는 데 이어,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 관련 배임 등 혐의로 검찰과 법원을 오갈 때엔 현장 지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가결됐을 당시엔 구속영장 실질심사 탄원 서명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 대표를 포함한 원내 친명계가 강조해온 대의원제 폐지 등의 정당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것 또한 이들의 주된 활동이다.

그렇다 보니 당내 비주류 의원 모임 ‘원칙과 상식’과는 대척점에 서서 날 선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신당 창당을 공식화한 이낙연 전 대표에 대해선 지난 12월 14일 논평을 통해 ‘노회한 정치인’이라며 다음과 같이 일갈하기도 했다. “이낙연 전 대표가 당장은 부인하겠지만, 보수정당 입당은 절대 없다던 안철수 의원의 모습과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노회한 정치인의 노욕은 민주적 절차에 대한 정당성도, 민심과 당심에 대한 두려움도 모두 잊게 하고 있다”….

혁신회의는 최근 의원 대표단 형식으로 민주당의 강득구·김용민·민형배·양이원영·이동주 의원 등까지 끌어들였는데, 당내 이낙연 신당 반대 서명운동을 주도한 의원 명단과도 겹친다. 당내에선 사실상 친명 운동이 외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온다. 현재 이 반대 서명에는 지난 12월 18일 기준 117명이 참여했다.

혁신회의가 개딸 등 이 대표 지지층과 다른 점은 결국 총선에 직접 출마 혹은 지원한다는 점에 있다. 민주당 관계자들 설명에 따르면, 혁신회의 소속 구성원 명단은 외부에서 확인이 어려우나 약 40~50명이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혁신회의 공동대표직을 맡고 있는 강위원 더광주연구원장이다. 강 원장은 현재 이재명 당대표 특보 직함도 갖고 있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역임 시절엔 경기도농수산진흥원장직 등도 맡았다. 대표 원외 친명계 인사다. 그는 지난 10월 15일 출판기념회를 열고는 광주 서구갑 출마를 선언했다. 혁신회의 상임대표인 김우영 전 강원도당위원장은 서울 은평을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는데, 당으로부터 “자신이 총괄하던 강원도를 버리고 은평을에 출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혁신회의의 오성규 전 서울시청 비서실장, 이헌욱 전 경기도시공사 사장, 오광영 전 대전시의원, 이정락 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 부위원장 등 전·현직 당 관계자나 이 대표와 연관 있는 인사들이 출마를 준비 중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홀로서기 어려운 사람끼리 삼사오오 모여 혁신회의 단체에 들어가 직함을 파고는 총선에 나가는 것”이라며 “일단 자신들이 부각되는 게 중요하다 보니 당 안팎의 상황은 안중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친명 경쟁’ 지원하는 김어준

혁신회의 규모가 커지자, 최근에는 일부 구성원끼리 따로 일종의 결사체 내지 모임을 만들어 친명 경쟁에 나서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출범한 ‘퇴진과 혁신’ 그리고 ‘혁신의길’ ‘풀뿌리연대’ 등이 그 일례다. 퇴진과 혁신은 내년 총선 출마를 계획한 정치신인 18명 등 대표 원외 친명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 중 일부는 혁신회의 소속이다 보니, 혁신회의 내부에선 또 다른 조직을 형성한 것에 반감도 표한 것으로 알려진다. 혁신회의 관계자는 “구성원들이 따로 조직을 만들거나 출마하는 것을 두고 이래라저래라 할 순 없다”며 “우리와 퇴진과 혁신은 별개”라고 설명했다. 퇴진과 혁신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에 맞서서 잘 싸울 수 있는 출마자끼리 뭉쳐보자는 취지에서 발족했다”고 말했다.

퇴진과 혁신의 경우 ‘윤석열 정권의 퇴진과 기득권 혁파를 위해 투쟁하는 정치신인 모임’의 줄임말이기도 하지만, 정치권에선 민주당 비주류 모임 ‘원칙과 상식’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평도 많다. 퇴진과 혁신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가 강조해온 권리당원 권리 확대, 대의원제 권리 축소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어찌 됐건 친명색을 앞세우고 있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한 풀뿌리연대는 지자체장 출신 인사들이 조직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 외곽에서 이들이 이 대표를 지원한다면, 이들은 다시 친명 성향 방송인 김어준씨로부터 지원받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씨가 운영하는 여론조사업체 ‘여론조사꽃’에선 매주 윤석열 대통령 및 여야 지지율 조사 외에도 특정 지역구만을 대상으로 민주당 후보 선호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대부분의 조사 대상은 앞서 단체들에 소속된 친명계 원외 인사가 출마한 지역이나 민주당의 비주류 의원이 현역으로 있는 지역 등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친명 인사들에게 유리하게 나오고 있다.

지난 11월 15~16일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지역 민주당 후보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혁신회의의 공동 상임대표인 황명선 전 논산시장 지지율이 37.7%로 지역구 현역인 김종민 의원(17.1%)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10월 11~12일 실시한 경기 성남 중원구 조사에선 퇴진과 혁신 소속의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 지지율이 14.6%를 기록하며, 현역인 윤영찬 의원(12.2%)보다 앞섰다. 9월 6~7일 실시한 대전 유성을 지역 조사에선 현역인 이상민 의원 지지율이 13.4%에 그치며 혁신회의 소속 허태정 전 대전시장 28.5%, 퇴진과 혁신 소속 이경 전 상근부대변인 20.3%보다 뒤지는 결과가 나왔다.

일련의 조사는 통신 3사 제공 무선가상번호 활용 CATI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응답률은 각각 12%, 10.1%, 17%이다.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는 ±4.3%p이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아직 총선이 임박하지 않다 보니 여론조사꽃처럼 특정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만을 두고 조사하는 여론조사기관은 극히 드문 상황이다. 친명계에선 각자의 최근 경력 외에도 이 여론조사 결과를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아 총선을 준비하는 모양새다.

이에 대해 민주당 한 중진의원은 “총선 공천룰이 정해졌다 해도 이런 식의 ‘장난질’이 계속되면 공정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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