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27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과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상계동은 이 전 대표의 고향이자 세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지역구다. 기자회견이 열리는 동안 식당 앞에는 지지자들이 모여 ‘이준석이 가는 길에 동참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이준석”을 연호했다. 이 전 대표가 탈당한 이날은 2011년 12월 27일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비대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지 12년이 되는 날이다.
이 전 대표는 “저는 오늘 국민의힘을 탈당한다”며 “동시에 국민의힘에 제가 가지고 있던 모든 정치적 자산을 포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의 영광과 유산에 미련을 둔 사람은 선명한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 변화’와 ‘당정 관계 재정립’ 등을 요구하면서 연말까지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탈당 후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예고했었다. 하지만 그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자 총선을 105일 앞두고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당초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을 예약해뒀지만 전날 회견 장소를 이곳으로 바꿔 ‘나 홀로 탈당 선언’을 했다. 그와 정치적 노선을 함께해온 허은아 의원과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등이 “개별적으로 거취 표명을 하자”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 측 인사는 “이른바 ‘천아용인’ 중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잔류하기로 했지만, 허 의원·천 위원장·이기인 경기도의원 등은 조만간 순차적으로 합류 의사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전날 취임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겨냥한 듯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왜 적장을 쓰러뜨리기 위한 칼잡이의 아집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야 하느냐”며 “이제 검투사의 검술을 즐기러 콜로세움으로 가는 발길을 멈춰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공용어는 미래여야 한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여의도 사투리’가 아니라 5000만명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고, 전날 비대위원장직 수락 연설에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수차례 거론하며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이번 주 중 가칭 ‘개혁신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절차를 마치는 대로 온라인으로 당원 가입 신청을 받아 창당 조건인 5곳 이상 광역 시도에서 1000명 이상씩을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이 전 대표는 탈당 후 10~15일 이내에 창당 절차를 마친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18일부터 인터넷 ‘구글 폼’을 통해 지지자 연락망을 취합했는데, 한 달 사이 6만명가량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표는 다른 제3지대 신당 등과 연대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최근에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가리지 않고, 여러 인사와 교류하며 국가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분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적어도 총선 전 재결합 시나리오는 부정하겠다”고 했다. 총선 막판에 국민의힘에 극적으로 재합류하는 식의 정치적 이벤트는 없다는 것이다. 한 위원장도 당분간은 이 전 대표와 접촉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이 전 대표님의 그동안 활동에 대해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뜻하는바 이루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총선 전망을 상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신당이라는 일종의 ‘방공호’를 만들어 놓고 총선 뒤 국민의힘을 수습하거나 대체할 세력이 되려고 구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문 말미에 “앞으로 저만의 NeXTSTEP 을 걷겠다”고 썼는데, ‘NeXTSTEP’은 스티브 잡스가 자기가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 만든 회사 ‘NeXT’의 운영체제(OS) 명칭이다. 이후 애플은 NeXT를 통째로 사들이면서 흡수했고, 잡스는 다시 애플로 복귀했다. 이 전 대표도 결국 잡스처럼 자기가 초대 당대표를 했던 국민의힘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