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신년을 맞아 전국을 순회하면서 가는 곳마다 그 지역과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부모 고향과 옛 거주지뿐만 아니라 검사 시절 좌천당했던 지역, 정치를 결심한 곳까지 인연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는 “한 위원장이 ‘강남 8학군’ 출신에서 ‘팔도 사나이’로 이미지를 바꾸려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한 위원장은 지난 10일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아 “(검사 시절) 지난 민주당 정권에서 네 번 좌천을 당했는데, 그 처음이 바로 부산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산이었기 때문에 그 시절이 참 좋았다”며 “그때 저녁마다 송정 바닷길을 산책했고, 서면 기타 학원에서 기타 배웠고,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고 했다. 좌천 자체는 시련이었지만, 부산에서 생활하며 위로받고 극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11일 부산 마지막 일정인 현장 비상대책위원 회의에서 “우리 국민의힘은 부산에 더 잘하겠다”며 서울과 부산의 ‘격차 해소’를 약속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4일 충북도당 신년 인사회에서는 “세 번째 좌천당한 지역이 충북 진천이었다”며 “매일 저녁 혼자 책 한 권 들고 가던 케이크집이 있다. 진천에서 보낸 시절이 화양연화 같았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검사 한동훈’을 수차례 좌천시킨 게 결과적으로 ‘정치인 한동훈’의 지역 연고를 전국으로 확대시켜 줬다”며 “추 전 장관이 이른바 ‘추·윤 갈등’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시켜준 데 이어 한 위원장의 체급도 키워준 것”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은 부모 고향과 유년 시절 거주지, 군 복무 지역 등 전통적인 지연도 내세우고 있다. 지난 8일 강원도당 신년 인사회에서는 “아버지는 춘천 소양로에서 사시며 춘천고를 다니셨고, 어머니는 홍천 사람으로 역시 춘천여고를 다니셨다”며 “저는 군 생활 3년을 모두 강릉에 있는 18전투비행단에서 했다”고 했다. 지난 4일 방문한 충북 청주에서는 유년 시절 청주 성안나 유치원과 청주 운호초를 다녔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대구를 방문해서는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11월 동대구역에서 시민들과 만나며 정치를 결심하게 됐다”면서 “대구는 저의 정치적 출생지 같은 곳”이라고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기성 정치인 못지않게 지역 연고를 중시하는 언어를 쓰면서 이른바 ‘여의도 사투리’ 상급자가 됐다”며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가 차별화한 비전과 정책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의 최대 강점인 ‘신선함’도 한계에 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 위원장의 ‘계산된’ 패션도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제다. 한 위원장은 지난 10일 저녁 부산 자갈치시장과 비프(BIFF·부산국제영화제)광장을 찾으면서 ‘1992′라고 적힌 회색 티셔츠를 입었는데, 이후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해당 제품이 실시간 판매 1위에 올랐다. 1992년은 부산 연고 프로야구팀인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로, 한 위원장이 부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 위해 입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한 위원장은 검사 시절부터 줄곧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데 당내 의원들 사이에서는 “한 위원장이 술자리를 안 하니 자연스럽게 안면을 틀 기회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부산 첫날 일정을 마친 지난 10일 밤 장동혁 사무총장, 김형동 비대위원장 비서실장, 부산 지역 일부 의원들은 부산 방문에 동행한 인사들과 비프광장 인근의 한 식당에 모였는데, 한 위원장은 부산 영도에 잡아둔 호텔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한 위원장과 좀 더 소통하고 싶었던 일부 정치인들은 11일 아침 호텔 식당을 찾아 1시간가량 한 위원장을 기다렸지만, 한 위원장은 조식을 먹지 않고 방에 머물다 오전 9시 30분쯤 현장 비상대책위원 회의를 주재하러 바로 떠났다. 기다리던 인사들은 호텔 로비에서 짧게 한 위원장과 인사만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김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