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모습일까, 2016년의 모습일까. 2024년 4월에 펼쳐질 총선은 과거 두 차례 총선 중 하나의 모습으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일단 여야 모두 시끄러웠던 공천이 마무리돼 간다. 본격적인 총선 모드로 전환할 차례다. 여당은 상대적으로 조용했지만 ‘현역 불패’에 ‘혁신 부재’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반대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당화 논란에 경선 불공정 시비까지 겹치면서 점수를 많이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여론조사 추세에 대한 해석은 상반된다. 민주당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권심판론이 여전히 우세하다”는 반론도 들린다. 다만 확실한 건 야당 압승을 예측했던 전문가들은 현저하게 줄었다. 4월 10일에 있을 투표 결과는 어떨까.
2012년 모델과 2016년 모델 사이
민주당의 한 전략통은 “총선은 대선과 달리 회고적 투표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대선은 후보들 중 미래에 가장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 표를 주지만 총선은 다르다는 얘기다. 정부나 여당에 대한 평가가 반영되고 그래서 ‘중간평가’ ‘정권심판’이라는 말이 늘 따라붙는다. 유권자 표심을 예측할 때 대통령 지지율이 중요한 가늠자가 되는 이유다.
그동안 치러진 5차례 총선을 보면 여당이 4번 이겼고 야당이 1번 이겼다. 의외로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유일하게 야당이 이겼던 때가 2016년 20대 총선이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승리는 의외로 여겨졌는데 당시 여야의 공천 과정을 톺아보면 누가 더 실점하느냐를 두고 다투는 모양새였다는 점에서 지금과 닮은 점이 있다.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진박 감별사 논란에 휩싸였고 김무성 당시 대표는 ‘옥새 들고 나르샤’라는 밈을 유행시키면서 당 주류들을 중심으로 단행된 공천 파동에 대항했다.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친문 사당화 논란 속에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탈당이 이어졌고 그렇게 국민의당이 분당하며 호남에 거점을 만들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이런 와중에도 여당은 압도적 우세를 이어갔다. 총선을 한 달 정도 남기고 실시됐던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은 39.0%를 얻어 민주당(23.0%)을 오차범위 밖에서 크게 앞섰다. 그런데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선거 전날까지 과반의석을 장담하던 여당은 충격에 빠졌다. 민주당이 123석으로 1당, 새누리당은 122석의 2당으로 밀렸다. 여론조사가 반영하지 못한 정권심판론이 민심에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와 달랐던 2016년 모델
앞선 전략통은 “우리 입장에서는 2016년 모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구도도 비슷하다. 다만 공천주도세력에서 차이가 있다. 2016년에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외부에서 들어와 상징적인 몇 명을 날리며 컷오프 자체에 큰 변화를 줬고 외부 영입에서도 중도확장성을 노리고 민주당 색깔이 덜 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컷오프된 사람도, 영입한 사람도 그때와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에서 컷오프된 사람은 이해찬·정청래·강기정·전병헌 의원 등이었다. 당 주류가 탈락한 것으로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컸다. 당시 민주당으로 영입된 인물은 양향자·조응천 의원 등이다. 외부에서 들어온 비주류가 주류를 쳐내고 비주류 색깔의 인사를 영입했던 과정은 결과적으로 선거라는 큰 그림에는 도움이 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이라면 2016년이 아닌 152석 과반 승리를 거두었던 2012년 모델을 원한다. 이때도 현재와 구도 면에서 닮은 부분이 많다. 이명박 정부가 4년이 지난 시점이라 대통령 지지율이 30%를 넘지 못하고 고전하던 때였다. 현재 30%대에 머문 윤 대통령 지지율보다 이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았고 사실상 레임덕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2011년 10월 26일 열렸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하며 총선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출범하며 미래권력에 힘을 실었다.
비대위는 일단 당명부터 새누리당으로 바꾸었고 민주당이 주장할 법한 ‘경제민주화’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중도 확장성을 꾀한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에 나서면서 반등을 꾀했다. 민주연구원이 2020년 총선을 앞두고 펴낸 보고서에서는 2012년 총선 패배를 이렇게 진단한다. “야권이 총선에서 처음으로 후보단일화를 통해 일대일 구도를 완성해 이명박 정권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MB의 과거정당, 한나라당이 아니라 박근혜의 ‘미래’정당, 새누리당으로 변신하면서 과거지향적인 중간평가였던 총선이 ‘미래 대 과거’의 구도로 전환됐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미래지향적인 의제와 정책으로 당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정권심판론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만 의존하는 과거형 전략으로 ‘과거세력’처럼 비친 측면이 있었다.”
어느 한쪽을 향한 응징투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총선이 2012년과 매우 닮은 것 같다. 정권심판론을 주장해 왔지만 막상 정권심판 민심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던 한계가 드러난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사건의 흐름이 닮았다. 2012년 총선을 앞둔 2011년 12월 미래 권력(박근혜 비대위)이 등장하게 된 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참패였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수도권 위기론이 현실화하자 한동훈 비대위가 출범한 국민의힘의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당은 정권심판론에 기대어왔지만 이를 지속시킬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 등 민생을 둘러싼 의제 설정에도 여당에 밀리고 있다. 2012년 민심은 국정운영의 대안 세력으로 야당이 아닌 여당 내 미래권력을 택했다. 다만 ‘박근혜 역할론’과 ‘한동훈 역할론’을 등치할 수 있느냐는 변수다. 한 위원장이 ‘윤석열 아바타’라는 평가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이 있지만, 표심이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분리해 생각하는지는 미지수다.
2016년 총선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기저에는 ‘정권심판론’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깔려 있다. “2016년의 경우 정당지지율에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그래도 1당이 되지 않았냐”는 기대다. 현 시점 정당지지율 경쟁에서는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고 있으니 그때보다 상황이 훨씬 좋다는 게 민주당의 바람이다. 다만 당시 여당이 패배한 결정적 원인이 됐던 공천 파동, 그로 인한 보수의 분열이 이번에는 생기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반발해 투표장에 많이 나왔던 2030세대가 4월 총선 때도 나와 야당에 표를 던질 거라는 보장도 없는 상태다.
4월 10일 총선이 2012년 모델일지 2016년 모델일지, 아니면 그 사이의 어디쯤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2012년보다 개혁성이 부족한 여당이 이긴다면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이다지도 컸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2016년보다 문제가 더 많아 보였던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현 정부에 대한 분노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어느 한쪽에 대한 응징투표란 점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