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준비위원장을 지낸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정보화의 뼈대를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내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고 고 박세일 사회복지수석비서관과 더불어 세계화·정보화를 추진했다.
대통령 취임사는 새 정권의 철학과 국정 방향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새 대통령의 ‘첫 단추’다. 취임사 준비 과정에서 당선인은 참모들과 토론하며 ‘자신이 꿈꾸는 나라’의 청사진을 만들게 된다. 지난 6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이 교수는 윤 대통령 취임사를 준비하며 생각했던 것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윤 대통령을 위한 조언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 “그분은 본인의 생각을 친절하게 표현하는 데 굉장히 인색하다”며 “‘내가 지금 불법으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들 이러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수석들을 그렇게 자주 만나는 것 같지 않다”며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별거 아닌 일을 해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끌다가 일을 키운 경우가 많다” “소극적으로 일하는 인사를 많이 기용한 것 같다”는 비판도 했다. 조언으로는 “참모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하고, 비서관급 인사는 수석에게, 1급 이하 (각부 공무원) 인사는 장관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 취임사에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윤 대통령의 생각은 어떠했나. "윤석열 대통령 취임 시기에 우리나라는 굉장한 위기였다. 온 국민이 힘을 합해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 는 과도한 이념정책과 재정지출로 인해 국가와 기업의 부채가 너무나 늘어났다. 그 결과 생산성은 떨어지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중 복합위기 속에 민생은 피폐해졌다. 탈원전정책으로 에너지 위기까지 왔다. 이 위기에 대응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중심의 원칙 위에서 나라가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당장 문재인 정부가 빠졌던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재정지출을 줄이고 물가를 낮춰야 한다는 방침을 피력하였다."
- 윤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자유'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유의 영역이 많이 침해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공정'이다. 우리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자유를 신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자유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바탕 위에서 자유를 어떻게 공정하게 배분하느냐를 정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그 배분의 방법을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이 '법'이다. 법의 지배가 곧 법치이다."
- 법치가 민주주의와 충돌하는 지점도 있나. "민주주의란 다수결이 아니라 법치이다. '반지성주의'란 법치가 아닌 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을 말한다. '이념에 의해' 경제정책을 다루고, 탈원전 정책을 하고, 안보와 우리나라의 외교까지도 한 문재인 정권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마당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윤 대통령은 '전임 정권에 화살을 돌리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정권을 인수했으므로 앞으로 해나갈 일을 이야기해야지 전임 정권에 책임을 묻지 말라고 했다."
- 윤 대통령은 본인이 보수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보수냐 진보냐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유냐, 진실을 묵살하고 권력의 쟁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반지성주의'냐를 가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 경제가 굉장히 힘든데 이제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해야지 이념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듯했다."
- 윤 대통령 자신이 직접 취임사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과정은 어떠했나. "애초에 4가지 버전으로 취임사를 준비해서 드렸다. 우리가 지금 복합위기에 처해 있으니 앞으로 2년 동안 어려운 상황을 국민들이 힘을 합쳐 잘 극복해 달라고 호소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보기에 그것은 전 정권을 탓하는 것으로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직접 집필하겠다고 했다. 취임사에서 자유라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취임사 대부분은 본인이 직접 집필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 가장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분은 본인의 생각을 친절하게 표현하는 데 굉장히 인색하다. 법률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지금 불법으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들 이러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전임 정권이 불법으로 했던 일이 있지만, 그걸 파헤치지 않고 참고 있었는데 '왜 저 사람들은 나한테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공격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 윤 대통령에게 조언해 줄 것은 없나. "과거 김영삼 대통령을 모셨을 때, 수석은 매일 만나는 사이니까 생각이 다른 일까지도 자연스럽게 토론했다. 김 대통령은 수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수석 하다가 장관으로 가라고 하면 섭섭하게 생각한 분들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김 대통령처럼 수석들을 그렇게 자주 만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 사정을 알 수 없지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지난 총선에서 특정 방송사의 악의적인 보도가 많았다. 김영삼 대통령 같으면 즉시 보고받고 정정보도를 요구했을 것이다. 현 정부에선 별거 아닌 일을 해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끌다가 일을 키운 경우가 많다. 또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일하는 인사를 많이 기용한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인사를 잘하려면 '신상필벌'해야 한다.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마음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 보수층에서 윤석열 정부의 정체성을 걱정한다. 윤석열 정부가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정체성은 무엇일까. "야당에서 '국정기조'를 바꾸라고 하는데, 절대 바꾸면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성장의 기반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GDP 11위까지 상승하다가 뒷걸음쳐서 14위까지 떨어뜨린 장본인이다. 윤 대통령은 국가부채 증가율도 떨어뜨리고 경제 성장률도 조금씩 높이고 있다. 경제위기로부터 탈출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13조원을 들여서 1인당 25만원씩을 풀라는 요구에 절대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그리고 참모들과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추진력 있게 강력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비서관급 인사는 수석에게 다 맡겨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은 철저히 수석에게 맡겼다. 장관과 차관은 대통령실이 하더라도 1급 이하 인사는 장관에게 맡겨야 한다. 인사권이 없으면 장관이 힘이 없다. 대통령은 사람들을 가리지 말고 폭넓게 만나야 한다. 대통령이 직접 만나서 국민과 소통하는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 대선, 총선 등 주요 선거를 거칠 때마다 포퓰리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소위 '퍼주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인데, 지나친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보수의 포퓰리즘은 선거에 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측면이 있다.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 물가가 올라서 힘들다고 한다. 과거 정부에서 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이 상승하고 부채가 늘어나서 힘든 측면이 큰데 윤석열 정부를 탓한다. 국민들에게 포퓰리즘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설득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적폐청산을 반복적으로 외쳐대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