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은 경기 성남시 HD현대 아산홀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화했다. photo 뉴시스

“한국은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 유럽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들 수 있다.” 지난해 11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로스 다우서트는 한국을 인구감소 문제에 있어서 두드러진 사례연구 대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런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는 한 세대의 200명 인구가 다음 세대에는 70명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두 세대가 지나면 200명이던 인구는 25명 이하로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비관적 전망이 한국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진단을 덧붙였다.

0.72명.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올해는 그보다도 낮은 0.6명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022년 평균 출산율은 1.51명이다. 한국 다음으로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스페인인데, 그래도 1.16명이나 된다. 우리가 기록한 출산율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보여주는 통계다.

인구 전문가들 “고민 흔적은 엿보인다”

지난 6월 19일 정부발 저출생 대책이 쏟아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저출생 문제 극복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인구감소 문제를 두고 ‘비상사태’라는 표현이 등장했던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이를 정부가 공식화했다는 게 달랐다. 이날 정부는 4개 분야에 걸쳐 여러 대책을 내놨는데 가짓수만 대략 60여개였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 150만원→250만원 △유치원·어린이집 12시간까지 이용 △아이 낳으면 주택 특별공급 청약 기회 추가 △자녀 세액공제 확대 등이 담겼다. 인구전략기획부도 신설하기로 했다. 육아휴직을 지금보다 부담 없이 쓰게 해 일과 가정을 양립하고, 결혼해 출산하는 부부의 주거 안정을 위해 대출과 집 장만을 도우며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돌봄의 부족한 부분들을 메우자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날의 대책이 88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나온 최종안이라고 했다. 고칠 만큼 고치고 심사숙고해 내놨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도 “노력한 흔적은 있다”는 평가가 들린다. 민주당의 한 전문위원은 “쭉 읽어보면 지난 정부에서 기시감 있는 대책들이지만 그래도 고민은 많이 한 것 같다. 그간 백화점식 대책들과 비교하면 가짓수가 줄었는데 나름 선택과 집중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인구학 관련 전문가는 이번 발표를 두고 두 가지가 눈에 띈다고 했다. “하나는 절박함, 또 다른 하나는 책임성이다. 상대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제일 약했던 부분이다. 삶의 질이 나아지면 아이도 자연스레 낳을 것이라는 생각 대신 핵심적인 부분을 이제는 정부가 쥐고 가겠다는 걸 강조했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말이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도 비슷한 견해다. “이전에는 이것저것 나열하고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을 담으면서 책임도 지지 않았다. 부처 사업들을 막 올리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업들을 갖다 붙였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의 관념적인 이야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노인복지를 두고 저출산 정책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노인이 편안해야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생각들이 정책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나마 이렇게 정리된 데는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존재가 컸다는 평가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통관료 출신인 주 부위원장은 추진력이 좋다는 평가가 빠지지 않는다. 저출생 대책은 전 부처의 이해관계가 결집하는 자리다. 육아휴직은 고용노동부, 돌봄 정책은 보건복지부, 주거지원 대책은 국토교통부 등과 얽혀 있다. 중층적인 이해관계나 이견을 조정하고 망라하기 위해서는 갈등 사안을 조정하는 역량이 필요한데, 주 부위원장이 과거 요직에 거론될 때마다 적시되는 장점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대로 정부가 상당히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강하게 추진하려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반면 ‘비상사태’라는 표현에 어울릴 만한 대책을 내놓은 건지를 묻는다면 미적지근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비상상황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전격적인 대책들이 등장하지 못했다는 시선이 많다. 이번 발표 내용을 보면 인구 정책을 대하는 현 정부의 강조점을 알 수 있다. ‘결혼한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주겠다’는 기조가 강하다. 재원 투자도 그쪽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있다.

비상을 선언했지만 비상하지 않은 대책

이인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장은 이번 대책을 이렇게 평가한다. “결혼할 마음도 있고 애를 낳을 마음이 있던 사람들한테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겠지만 결혼을 안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결혼과 출산 의향에 영향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비상’이라고 말하지만 그에 비해 정책은 그렇게 비상사태인 느낌이 아니다.”

그는 육아휴직 급여 인상 부분을 예시로 든다. 이번에 최대 월 150만원에서 250만원까지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 원장은 그 돈이 충분치 않다고 본다. “한 명 낳을 때도 그렇지만 한 명 더 낳을 땐 더 부족하다. 예를 들어 중견기업 정도를 다니는 사람이 애를 낳아서 생활을 하고 집 대출도 갚아야 한다면 기회비용을 생각할 때 그것 가지고 생활이 되겠나. 그래서 상한선을 풀고 시장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부분이 필요했는데 잘 안됐다. 많이 노력했으나 파격적이지는 않았다.”

이번 대책의 약한 고리 중 하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주요 계층이 누구냐는 부분이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대책은 지금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교적 빠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단 결혼은 했고 안정적인 일자리도 있는데 살짝 목돈이 부족하거나, 육아휴직을 쓰려고 생각해도 소득 대체가 그만큼 잘 안되는, 그런 출산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주 크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중요하지만 이번 대책은 딱 거기까지만 초점을 맞췄다.”

지금 우리나라의 소득 상위계층 혼인율과 출산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좋고, 집이 없더라도 안정적인 직장과 어느 정도의 비축 자금이 있다면 결혼과 출산을 좀 더 수월하게 생각하는 게 현 상황이다. 이 교수는 이번 대책이 “중산층 이상이 돼야 실질적인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형태”라고 말한다. “주거 지원도 주택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한테 영향을 준다. 육아휴직도 일자리 질이 좋아야 쓸 수 있는 제도다. 모아둔 돈이 있고 일자리가 안정적이어서 대출할 여력이 있어야 혜택을 볼 만한 정책이다.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등을 위해서 무언가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 같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은 이들에게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지적도 있다. 혼인신고 특별세액공제 같은 결혼 인센티브 제도를 제시했지만 큰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 저출생의 원인보다 선행하는 건 혼인율의 저하다. 기혼인구가 아이를 낳아도 막상 새로운 기혼 부부가 증가하지 않으면 대책의 효과는 반감된다. 그런 점에서 일부 전문가는 정책 수혜의 범위가 좁은 것을 문제 삼는다.

결혼과 출산은 비용의 문제다.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고, 아이 낳을 생각을 할 수 있다. 결혼 뒤에도 집 문제에 생활비, 교육비가 걱정될수록 출산은 후순위로 밀린다. 이런 조건들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보다 덜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정부 혜택이 돌아간다면? 결혼 단계부터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의문에 이번 대책은 충분한 해답이 되지 못한다.

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의 상관관계

혼인과 출산에서 개인의 경제적 조건을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반성은 필요하다. 다만 이런 요건 이외에도 출생률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소들이 존재한다. 육아휴직을 더 편하게 쓰고, 주택 대출을 좀 더 쉽게 받게 해주고, 돌봄 공백을 메우는 정책 사업만으로는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이상림 책임연구원은 “지금부터라도 구조적인 개혁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육 개혁이 있어야 사교육비를 낮출 수 있고 그래야 양육비 지원이 효과를 볼 수 있다. 양육비 지원을 해봤자 사교육비로 흘러가면 헛수고다. 주택 자금 지원을 해주고 대출을 수월하게 해줘도 집값이 오르면 끝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잡을 수 있는 방안들, 그런 거버넌스 체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익명의 한 국회입법조사처 연구관은 “지방의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을 보면 전남이나 충북이 서울이나 경기보다 높다. 그런데 그런 지방에는 결혼이나 출산 대책의 대상자인 젊은층이 갈수록 줄어든다. 지역을 이탈하는 젊은층을 막기 위한 대책 그 자체가 저출생을 완화하는 해법이 될 수 있지만 정부의 저출생 대책에 그런 큰 그림은 들어있지 않다. 출산율 감소와 지역의 인구 감소는 별개의 문제 같지만 서로 얽혀 돌아간다.”

지역의 인구감소는 결국 빠져나간 이들이 수도권으로 몰려들어서 생긴 일이다. 이 때문에 수도권 집중은 인구감소 문제를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는다. 왜 이런 인과가 만들어질까.

고우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연구교수의 박사논문은 ‘인구 밀도’와 ‘인구의 편중 분포’에 초점을 둬 저출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초저출산에 근접한 53개 국가 및 지역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인구 편중도(偏重度), 즉 가장 큰 도시의 인구 비중이 16.2% 이상일 경우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합계출산율을 하락시키는 정도가 더욱 크게 나타났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4년 5월 기준 서울 거주 인구는 국내 인구의 18.28%를 차지한다. 인천과 경기를 합친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50.78%에 달한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좁은 공간에 몰아넣어 경쟁할수록 개인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 먼저다. 다른 문제들은 뒤로 밀린다. “좋은 일자리, 좋은 대학이 다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 젊은 인구들이 많으니 경쟁이 치열한 장소가 된다. 사람이 많아지니 집값도 내려갈 수 없다. 결혼과 출산은 집과 직장이 동시에 해결돼야 하는데 이런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많지 않게 된다. 그럼 지방은? 수도권 집중화가 심해질수록 지방에도 질 좋은 일자리가 없다. 젊은층이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불안정한 일자리 때문에 저출생 문제에 직면한다. 이게 가속화돼서 더 많은 인구들이 서울로 온다면 수도권의 저출생은 더 심각해진다. 어느 쪽도 인구를 유지 못하는 결과가 기다린다.” (김정석 동국대 교수·한국인구학회장)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인구 미래 공존’이라는 책에서 “젊은 사람이 도시로 모이는 건 어디에나 있는 일인데 왜 우리나라만 심각한 저출산을 경험할까”라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도시가 얼마나 있는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처럼 0점대의 합계출산율을 보인 또 다른 곳은 홍콩·마카오·싱가포르인데 여기는 도시국가다. 조 교수는 “한국이 도시국가는 아니지만 청년들이 갈 곳이 이 나라에 한 곳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들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한은이 제시한 해법 “지역 거점도시 만들자”

정부도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안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은 한 심포지엄에서 보고서를 통해 “수도권으로의 집중이 국가 전체의 출산율을 낮추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은은 “청년층이 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지역의 출산율이 자연스레 급감하고 청년층이 모여든 수도권의 출산율도 다른 지역보다 낮다”면서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적자본 투자로 출산이 지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학자들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은은 인구 감소분도 추산했는데 수도권에서 청년 유입으로 증가한 출생아 수는 2만5000명, 비수도권의 출생아 수 감소는 3만1000명으로 추정했다. 전국적으로 6000명의 손실이 발생하며 여기에 서울 등에서 인구밀도가 오르면서 추가적으로 생기는 출생아 수의 손실도 4800명 정도라고 봤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으로 지역 거점도시 육성을 제안했다. 서울 등 수도권 외에도 청년들이 갈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한은의 아이디어다.

지난 6월 19일 대통령실이 낸 보도자료에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간단하게 언급돼 있다. “대통령은 저출생 문제는 수도권 집중, 우리 사회의 높은 불안과 경쟁 압력 등 사회 구조적, 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3대 핵심 분야에만 집중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난제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지역균형발전정책과 고용, 연금, 교육, 의료개혁을 포함한 구조개혁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인구비상사태’ 대책에서 드러난 관점은 저출산 대응에만 힘을 줬을 뿐, 인구의 사회적 이동 문제 해결은 뒤로 미뤄둔 상태다.

이처럼 인구문제는 여러 문제가 뒤섞여 복잡하게 다가온다. 얽힌 실타래를 풀려고 하면 반작용도 우려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를 풀기 위해 서울의 유명 대학이나 대기업을 지방에 보낸다는 걸 반길 서울 시민은 없다. 수도권 인구를 줄이겠다고 나서면 이곳에 주택을 소유한 자가 소유자들이 반발할지 모른다. 그래서 인구감소를 둘러싼 해법은 ‘정책의 문제’지만 ‘정치의 문제’다.

이번 윤 대통령의 인구비상사태 선포는 비상한 각오는 있었지만 ‘인구의 재생산’,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절반의 대책이 돼 버렸다. 또 다른 절반의 해법이 나와야 한다. 지난 6월 25일 한국경제연구원과 한국노동연구원이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주형환 부위원장은 “연말까지 총체적인 플랜을 더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 계획에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를 꾀할 묘책이 포함될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