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연설 중인 한동훈 후보를 향해 ‘배신자’라 외치며 의자를 집어던지려 하고 있다. 경호원과 국민의힘 당직자들이 일부 사람들의 돌발 행동을 제지하고 나서면서 장내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뉴시스

15일 충남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7·23 당대표 선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후보자 지지자들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연설회장은 지지자들끼리 “배신자”라고 외치고 욕설과 야유를 주고받더니 급기야 의자까지 집어던지는 등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후보 간에 과도한 네거티브 공방을 벌이며 키워온 ‘혐오의 정치’가 폭발하면서 전당대회가 난장판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이날 폭력 사태는 세 번째 연설자로 나선 한동훈 후보가 연설을 시작할 때 격화됐다. 한 후보가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려 하자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청중이 “배신자” “꺼져라”를 반복해서 외쳤다. 이에 한 후보 지지자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양측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한 청중은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들어 던지려다 제지당했다. 연설 도중 이 장면을 목격한 한 후보가 “저에게 배신자라고 외치는 건 좋지만, 다른 분 의견을 묵살하지 말고 다른 분을 폭행하지 말아 달라” “자리에 앉아 달라”고 했지만 과열된 장내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들은 연설회장 밖에서도 욕설을 주고받으며 몸싸움을 벌였다.

한 후보에 앞서 진행된 나경원·원희룡 후보 연설 때도 일부 당원들의 연설 방해 행위가 이어졌다. 일부 청중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등장하면 엄지를 아래로 향하며 야유를 했고, 팔로 ‘X’ 자를 만들어 보였다. 또 상당수 청중은 지지 후보 연설이 끝나면 연설회장을 떠났다. 이 바람에 마지막 순서인 윤상현 후보 연설 때는 객석 대부분이 비었다. 윤 후보는 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나 “후보들이 다른 후보의 의견을 들어줘야 하는데 (자기 연설 끝나고) 나가니까 당원들도 이런다”며 “전당대회 이후 후유증이 걱정된다”고 했다.

이날 연설회에서 발생한 지지자 간 물리적 충돌을 두고 한동훈·원희룡 후보는 장외에서 공방을 벌였다. 한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제가 연설할 때, 일부 원 후보 지지자들이 저를 향해 ‘배신자’라고 구호를 크게 외치며 연설을 방해했다. 의자를 들어 던지기까지 했다”며 “지지자들뿐 아니라, 오늘 연설을 방해하신 그분들과도 함께 가고, 함께 이기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 후보는 페이스북에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타 후보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또한 용납하기 어려운 행태”라고 했다.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연설회 직후 회의를 열고 폭력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각 캠프에 주의와 지지자 관리를 요구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병수 선관위원장은 통화에서 “이번 당대표 선거전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무조건 옳고,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감지된다”며 “민주당의 이른바 ‘개딸 팬덤’과 같은 극단적 팬덤 정치 문화가 국민의힘에도 이식되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했다. 후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이번 전당대회에서 특정 후보의 팬덤 행태가 조성되는 것 같다는 얘기다. 서 위원장은 “지지자들의 잘못된 행태에는 후보들의 책임도 있다고 본다”며 “후보들이 좀 더 절제된 언어를 쓰고 품위를 보여줄 때 지지자들도 차분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6선의 조경태 의원도 통화에서 “전당대회가 이렇게 난장판이 된 건 처음 봤다. 한국 정치가 길을 잃은 것 같다”며 “근본 원인은 후보 간 극한 상호 비방에 있다. 그게 지지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앞선 부산·울산·경남(지난 10일), 대구·경북(지난 12일) 합동연설회에서도 한동훈·원희룡 후보 측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거친 말싸움이 오가면서 ‘이러다 한번 사달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동훈 후보 지지자들은 과거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보기 어려웠던 팬클럽 같은 문화가 있어 한 후보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날 연설회 시작 전 서병수 선관위원장은 ‘한동훈’을 외치는 지지자들에게 “공평하게 다른 후보들에게도,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들이 나와서 말씀을 하실 때에도 여러분 똑같은 그런 환호를 보내주시겠는가”라며 “그래야만 우리가 이 경선이 끝나고 나서도 한마음 한 뜻이 되어 가지고 우리 당의 앞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국민의힘 7·23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윤상현(왼쪽부터)·한동훈·원희룡·나경원 후보가 1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들은 이날 연설회에서도 상대 후보를 향한 공세를 이어 갔다. 이들은 앞선 세 차례 권역별 합동연설회와 두 차례 방송토론회에서도 거친 표현을 쓰며 공방을 벌였다. 원희룡·한동훈 후보는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주의·시정 조치’를 받기도 했다.

나경원 후보는 이날 한동훈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되더라도 대선 출마를 위해 임기(2년) 도중에 사퇴할 것이라고 집중 공격했다. 나 후보는 “(당대표 중도 사퇴로) 1년짜리 당대표를 뽑으면 1년 뒤에는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가, 전당대회 하는가. 지긋지긋하지 않나”라며 “이것은 욕심”이라고 말했다. 나 후보는 원희룡 후보를 겨냥해서는 “갑자기 나온 후보도 마찬가지”라며 “갑자기 나온 후보가 대통령에게 할 말 하겠는가”라고 했다.

원희룡 후보는 ‘제삼자 추천 해병대원 특검법 발의’를 제안한 한 후보를 겨냥해 “특검은 반드시 저지해야만 한다. 특검은 곧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라며 “특검은 우리 당의 분열과 대통령 탄핵을 노리는 거대 야당의 계략이고 덫”이라고 했다. 원 후보는 한 후보를 향해 ‘법무장관 시절 여론조성팀 운영 의혹’을 재차 제기하면서 “실제로 존재한다면 중대 범죄 행위다. 드루킹 사건을 떠올리면 된다”고 했다.

한 후보는 “전당대회는 이견 속에서 정답을 찾아내는 길로 가야 한다”며 “앞으로 근거 없는 마타도어는 최소화하면서 혼탁해지는 것을 막고, 당의 화합을 이끌어 내겠다”고 했다. 한 후보는 연설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 후보가 제기한 의혹에 대해 적극 반박했다. 한 후보는 “누구를 돈 주고 고용하거나 팀을 운영한 적 없다”며 “자기들 같은 줄 아나 봐”라고 했다.

윤상현 후보는 “지금도 횡행하는 계보 정치, 오더 정치, 줄 세우기 이게 바로 우리 당의 썩은 기득권”이라며 “그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당을 좀먹는 좀비 세력임을 여러분 꼭 알아주시기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