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2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 등 민주당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초부자감세 저지’ 및 ‘민생예산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세금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 치열했던 지난 6월,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증세를 하면서 표를 달라고 말하는 게 가능한가”라고 기자에게 되물은 적이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을 하자마자 정부·여당과 야당은 세금을 놓고 여론전을 시작했다. “세금을 줄여야 한다”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 “감세를 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백가쟁명으로 터져나왔다. 다만 각론에서 구도가 달랐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일관된 감세 입장을 취한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나 종합부동산세(종부세)는 폐지, 상속세도 공제 한도를 확대해 감세 효과를 가져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주당은 그간 이런 시도들을 ‘부자 감세’라 말하며 비판해왔다. 다만 그런 속에서도 여러 의견이 당내에 상존했다. 앞선 의원은 당시 세제 개편 방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느 수준에서 적절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건지 등을 민주당도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겠나. 세금 문제에서 열세에 처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거 전 아닌 후에 나온 ‘감세’ 논의

4월 총선 압승 뒤 민주당의 시선은 지난번 패배한 대선을 복기하고 만회하는 방법으로 향한다.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득표율 차는 0.73%포인트였다. 두 후보 간 득표차는 24만7077표로 무효표 30만7542표보다 적다. 이 차이를 확실히 메우기 위한 카드가 민주당은 필요했다. 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그 단초는 이 전 대표가 직접 제공했다. 8·18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던 지난 7월 10일, 그는 ‘먹사니즘’이란 단어를 끌어올렸다. ‘먹고사는 문제가 유일한 이데올로기’라는 뜻으로 민생·경제 해법을 내놓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법에 필요한 건 ‘실용’이다. 이 전 대표는 출마 선언문에서 “성장의 회복과 지속 성장이 곧 민생이자 ‘먹사니즘’의 핵심이다”라고 했다. 성장은 보수, 분배는 진보라는 기존 구도를 벗어나 보수의 담론이던 ‘성장’을 민주당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으로 실현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등장한 게 감세 기조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유예 뜻을 보였다. 이런 세제 개편은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자산불평등 시정 노력과 비교했을 때 다른 방향으로 가겠다는 걸 뜻했다.

이 전 대표는 감세 기조를 확실하게 굳힌 것으로 보인다. 방송토론회에서도 이를 재확인시켰다. 지난 7월 24일 열린 KBS 민주당 당대표 후보 토론회에서는 “내가 집 한 채 가지고 평생 돈 벌어 가족들과 실제 사는 집인데 그 집이 좀 비싸졌다는 이유로 징벌적 과세를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너무 심하다”며 1가구 실거주 1주택에 대한 종부세 완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금투세’도 유예하자고 했다. “주식시장의 불공정성, 소위 주가조작 문제나 한반도 위기 등으로 인한 손실을 투자자들이 다 안고 있다”며 “상당 기간 (금투세 시행을) 미루는 것을 포함해서, 면세점을 올리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면세점을 올리는 것도 감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현재 5년 동안 연간 5000만원씩, 총 2억5000만원의 수익이 생겨야 세금 대상이 되는 걸 연간 1억원, 5년간 5억원 이상의 수익에 과세하는 식으로 한도를 올리자는 게 이 전 대표의 생각이다.

감세로의 전환 타이밍은 묘하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나올 법한 감세라는 주제가 오히려 선거가 끝난 뒤 나왔다. 한 비명계 인사는 “아무리 대표여도 임기응변식으로 내놓을 수 있는 어젠다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정부 실정을 공격하는 게 중요하니 이념형 정당의 모습을 많이 보였다면 이제는 공격성을 덜어내려는 과정에 들어간 것 같다. 선거에 임박해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게 아니고 치밀하게 따져보고 계획한 것일 테니 효과가 훨씬 클 거다. 시기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지난해 4월 1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종합부동산세 폐지 촉구 집회에서 부동산악법폐지연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주당의 ‘서울 중산층 포섭’ 전략

22대 국회 개원 전후로 민주당 안에서는 감세 관련 발언들이 터져 나왔다. 친명계(친이재명계)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5월 9일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아무리 비싼 집이라도 실거주 1주택이라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라고 했다. 그의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일으켰고 민주당은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확산을 경계했다. 내부의 ‘부자감세’ 비판은 꽤 강고했다. 그런데 그 예민한 부분을 이 전 대표가 그대로 받아들어 정면돌파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전 대표가 현 시점에 들고 나온 감세 이야기는 대권 가도와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다수다. 예를 들어 종부세는 정치적 민감도가 큰 세금이다. 지난 대선이 이를 증명했다. 대선 직후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인 ‘더민초’가 꼽은 패인은 ‘부동산 문제 대처능력의 부족’이었다. 다만 부동산의 어떤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더민초 토론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당시 부동산 때문에 졌는데 왜 졌는지를 두고 생각이 달랐다”고 말했다. “공급 부족이라는 의견도 있었고 세금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집값이 오르는 걸 죄악시하는 메시지들 때문에 자가 소유자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게 문제라는 얘기도 있었다.” 진단이 서로 다르면 당의 통일된 메시지가 나오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 전 대표가 종부세 완화를 언급하며 일종의 정리를 한 셈이 됐다. 결국 ‘세금’ 때문이라고 본 셈이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지역에서 보수 진영 후보의 득표율이 높다는 결과는 지난 대선에서도 도출됐다. 20대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22년 3월 한국리서치가 공개한 ‘세대와 부동산, 그리고 득표율’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기초지자체의 아파트매매실거래(2021년 7월~2022년 2월) 기준 1㎡당 약 606만원(평당 2000만원) 이하인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실거래가가 높을수록 이 전 대표의 득표율이 대체로 상승했다. 반면 1㎡당 606만원 이상(평당 2000만원 이상)인 기초자치단체는 실거래가가 높아질수록 이 전 대표 득표율이 대체로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대에 따라 선호 후보가 뚜렷하게 갈리는 것을 두고 종부세 때문이라는 진단이 적지 않았다. 당시 윤 대통령은 서울 자치구 14곳에서 승리했는데 재산세를 많이 걷는 자치구 상위 순위와 일치했다. 윤 대통령은 이 전 대표보다 서울에서 약 31만표를 더 얻었는데 두 사람의 득표차를 볼 때 서울이라는 전장(戰場)이 결정적이었다.

종부세를 완화하겠다는 건 서울에 내 집을 가진 중산층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의 생각이 투영돼 있다. ‘서울 중산층’ 포섭 전략이다. 종부세 납부 인원은 윤석열 정부 들어서 크게 감소했다. 상향 조정의 결과다. 1주택자의 비과세 기준선인 기본공제액이 12억원으로 상향 조정됐고 부부 공동 소유 주택도 각각 9억원씩 총 18억원까지 공제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인 종부세 납세인원은 41만7000명으로 2022년(120만6000명)과 비교했을 때 80만명 가까이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40여만명이라는 종부세 대상자가 존재한다. 그리고 종부세를 현재 내진 않지만 그 경계선에 있는 중산층 세대도 포섭 대상이다. 그들의 종부세에 대한 저항감을 다독일 필요가 있어서인데 이들의 조세저항을 완화하는 쪽으로 이 전 대표는 방향을 잡았다.

정치적 민감도 커지자 “불만 고려하자”

상속세에 대한 고민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정부는 이미 상속세와 관련해 최고세율 인하(50%→40%)·최저세율(10%) 과표 상한 인상(1억원→2억원) 안을 내놨다. 자녀 공제를 1인당 5억원으로 대폭 높이겠다고도 했다. 정부가 안을 던졌으니 민주당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뜻에 달렸다.

‘상속세’ 문제는 종부세보다 더 까다로운 문제다. 상속세를 건드렸다간 자칫 ‘부의 대물림’을 용인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다만 이 상속세가 ‘부자’들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고민 지점이다. 일단 상속 자산이 늘었다. 상속세는 보통 일괄 공제의 경우 고인의 배우자 5억원, 자녀들 5억원 등 10억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초과분에 대해 과세한다. 1997년 1월 1일부터 적용된 이 기준은 28년째 그대로 적용 중이다.

그 28년 새 자산 가격은 크게 늘었다. 서울 아파트의 중위 매매 가격이 10억원에 육박한다. ‘부자들만 내는 세금’이라고 하기에 대상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국세청의 ‘상속세 결정 현황’에 따르면 2019년에 8357명이 내던 세금이었다. 그런데 2023년에는 1만9944명이나 냈다. 상속세는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 아니라 물려주는 사람, 즉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부과된다. 재산을 물려받은 배우자와 자녀를 합치면 이해관계자가 통계보다 더 많다. 여전히 중산층의 세금인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4년 새 대상자가 두 배 이상 폭증했고, 자산 가격 상승이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인 걸 고려해야 한다. 앞으로 상속세를 내야 할 대상자도, 그 금액도 더 늘어난다는 얘기다.

요즘은 고령사회가 되면서 피상속인의 연령도 점점 높아진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평균 수명이 80세가 넘으니 상속받는 자식들도 50대쯤이 된다. 이들은 민주당의 중요한 지지층인데 상속세가 고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온라인 여론을 보면 20~30대도 상속세에 관심이 많다. 잠재적으로 물려받을 게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있다면 당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투세는 정치적 민감도로 따지면 그 범위가 더욱 넓다. 애초 금투세는 금융소득 과세에 허점이 생겨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기존 양도소득세로는 주식·채권·파생상품 등에서 발생하는 금융투자소득이 서로 다른 체계로 적용받는다. 그래서 이를 한 사람이 얻은 전체 손익을 통틀어 과세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게 도입 취지다.

세금을 새로 만들겠다면 누구나 반응이 차갑다. 금투세를 향한 개미투자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애초 민주당이 금투세를 밀고 나갈 때는 “적용 대상이 투자자 중 1%가 안 된다”는 논리에 기댔다. 하지만 개미들은 금투세를 적용받는 소수의 큰손들이 주식시장을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에 예민하다.

금투세는 잠재적 과세 대상자도 엄청나다. 양적완화로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고 계좌를 트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약 1400만명의 국민들이 금투세의 잠재적 이해관계자가 됐다. ‘불장’이 오면 5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발생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희망 앞에서 금투세는 금기(禁忌)다. 이처럼 주식투자자가 대규모 유권자층이 되자 금투세 자체가 정치적 민감도가 큰 문제가 됐다. 그리고 여기에 이 전 대표는 “그들의 불만을 고려하자”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감세’만으로 끝날 시리즈 아냐

감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민주당의 정체성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전 대표의 방향 전환은 민주당의 전통 가치와 부딪힌다. 격차 해소, 불평등 개선 등을 내세웠던 이전과는 다른 행보다. 반면 이 대표 측은 그렇게 다른 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실에 맞는 미세조정을 할 뿐이라는 논리다. 이런 미세조정만으로도 정치적 효용을 느낄 수 있다. 종부세나 상속세, 금투세 등의 적용선을 상향 조정해도 중산층, 그리고 꽤 많은 유권자를 품을 수 있다.

‘우클릭’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한 당내 불만은 이 대표 입장에서 양가적 의미를 갖는다. ‘균열’로 보일 수도, ‘토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 ‘세금 문제’를 이 전 대표가 대선 전략에 활용하는 걸 불편해하는 쪽은 보호하려는 대상이 누구냐란 걸 묻는다. 당 대표 경쟁자인 김두관 후보는 “이 후보가 보호하려는 사람은 용산이나 국민의힘에서 보호하고 있는데, 굳이 우리 민주당 당대표 하시겠다는 분이 그렇게 (주장)하시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공격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 전 대표의 금투세 시행 유예론에 관해 “그건 후보 개인의 입장이다”라며 선을 그어버렸다.

다만 이런 이견의 충돌이 이 전 대표의 리더십에 상처를 낼 수 있을까. 앞선 비명계 인사는 “이견은 있어도 균열은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 전 대표가 우클릭 주장한 게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후보 때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주장했다가 친문 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된 적이 있다. 그때도 진성준 의원이 반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재명 ‘일극체제’다. 당의 주류도 달라졌다. 비슷한 의견에 다른 분위기가 될 것이다.”

당내에서는 이 전 대표의 실용 기조가 ‘감세’만으로 끝난 거라 보지 않는 분위기다. ‘이념’과 ‘전투성’을 덜어내는 작업들이 계속될 거라고 본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이 전 대표가 이후에 내놓을 또 다른 제안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의 새로운 노선을 증명하기 위해 이 전 대표 측이 일관된 방향성과 논리 구조를 갖춘 시리즈를 준비했을 거다. 세금 문제 하나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성장을 강조하는 민주당이 원전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다면 결정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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