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각각 ‘격차 해소’와 ‘성장’을 내걸고 나왔다. 전통적으로 격차 해소는 민주당이, 성장은 국민의힘이 강조해온 어젠다다.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된 한 대표(62.8%)와 이 대표(85.4%)가 진영 내 탄탄한 지지를 바탕으로 중도화를 통한 외연 확장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두 사람이 제시한 정책의 구체성이나 일관성이 부족해 구호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동훈 대표는 19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파이를 키우는 지속 가능한 성장뿐 아니라 어려운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구조적인 이유로 생긴 다양한 격차를 줄이는 노력 역시 똑같은 비중으로 중시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에 격차해소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성장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양극화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국민의힘이 도외시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분배 정의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것이다. 한 대표 측 인사는 “‘성장’과 ‘격차 해소’는 한 대표 정치의 핵심 노선이 될 것”이라며 “전통적 지지층과 중도층을 동시에 공략하려는 전략”이라고 했다.
전날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힘으로 멈춰 선 성장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겠다”며 ‘성장’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날 주재한 첫 최고위원 회의에서도 “AI 시대를 대비한 ‘기본사회’ 비전, 에너지 고속도로 같은 정책도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어 가겠다”며 미래 신성장 산업 정책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당이 그동안 “부자 감세”라고 반대해온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완화 또는 일시 유예 같은 감세론을 편 데 이어 당대표 선출 직후엔 상속세 개편까지 거론했다. 민주당은 상속세 일괄 공제 한도를 현행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높이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한·이 대표의 이런 움직임은 양당의 기존 정책 기조와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차기 대선 도전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전통적 지지층뿐 아니라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 클릭 이동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한 대표는 좌클릭, 이 대표는 우클릭에 나선 것 같다는 얘기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런 움직임을 당 차원의 흐름으로 보기엔 아직 정책 구체성이나 일관성 측면에서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한 대표는 지난달 23일 취임한 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반도체 특별법 추진’ ‘취약 계층에 대한 전기료 지원’ ‘청년 고독사 문제 해결’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일본도(刀) 규제 강화’ 같은 정책에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은 “한 대표가 취임 후 한 달간 청년 고독사, 티메프 사태 등 언론 보도로 알려진 사건·사고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지만 사후적 처방에 치중하는 느낌”이라며 “한동훈표 정책이 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성장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는 그가 여전히 기본소득 정책 등을 추구하는 것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가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민생 회복 지원금 25만원 지급, 반기업적이란 지적이 있는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는 건 이율배반적이란 것이다. 이 대표는 AI와 기본사회를 연결 지으며 “AI 시대에 대비해 기본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지만, AI 산업 지원책이나 기본사회 재원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유권자들은 유력 대선 주자가 성장과 분배를 모두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며 “유력 주자들이 이에 부응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책을 제시하더라도 일관성·구체성을 갖춘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