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이제 의대 증원이 마무리된 만큼 개혁의 본질인 ‘지역·필수 의료 살리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의료 개혁을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의정(醫政) 갈등 중재안으로 제안한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에 대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도 해석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정 브리핑에서 “지역·필수 의료 체계를 강화하는 의료 개혁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역에 차별 없이 공정하게 보장하기 위한 개혁”이라며 이를 위해 5년간 재정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전공의에게 과도하게 의존했던 상급종합병원 구조를 전환해 전문의, 진료 지원(PA) 간호사가 의료 서비스의 중심이 되도록 바꿔나가겠다”면서 ‘의학 교육·수련 선진화’ ‘지역 의료 인프라 강화’ ‘공정한 보상 체계 확립’ ‘의료 사고 안전망 구축’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이은 기자회견에서 의정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된 ‘의대 증원’ 관련 질문에 “의료인을 더 양성하는 문제는 최소 10년에서 15년이 걸리는 일”이라며 “부득이하게 이제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의사 단체들이) 증원 문제에 대해 뭔가 답을 내놓으면 저희는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겠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그게 없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하고 오히려 줄이라고 한다”며 “국민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가가,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지역 응급실 의사 부족’에 대해서는 “의료 개혁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그랬다”며 “그분들에 대한 처우가 좋지 않다. 그 처우를 (의료 개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추석 연휴 의료 대란 위기설’과 관련한 질문에는 “의료 현장을 한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특히 지역의 종합병원 등을 가 보시라”며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 진료 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 의료 공백 우려를 제기하지만, 실제 의료 현장은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동훈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저는 국민 여론과 민심을 다양하게 들어본 결과, 현 상황이 대안과 중재가 필요할 정도로 응급실이나 수술실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같은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25일 정부와 대통령실 측에 의대 증원 유예를 제안했지만 대통령실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대표는 오후 연찬회에서도 기자들과 만나 “당국 판단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분들도 대단히 많지 않은가”라며 “그런 면에서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그렇지만 제 말이 무조건 옳다는 말씀은 아니고 더 좋은 방안이나 돌파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정부가 의대 증원과 간호법 제정 등을 통해 의료 영리화를 꾀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값싸고 질 좋던 한국의 현 의료 시스템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이날 인천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 연찬회에 불참했다. 윤 대통령이 정기국회 전 열리는 여당 연찬회에 불참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30일로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도 추석 이후로 연기한다고 전날 밝혔었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낸 중재안이 의료 개혁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1박 2일로 진행되는 연찬회 첫날인 이날 오후에는 이주호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참석해 1시간 20분 동안 의료 개혁과 관련한 정부 계획을 설명했다. 장상윤 사회수석은 “우리가 만약 과학적 근거 없이 의료계에 굴복해서 의대 정원을 다시 변경하거나 뒤집는다면, 이걸 지켜보고 계신 국민들이 굉장히 실망하고 반대를 많이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한 대표는 ‘비공개 외부 일정’이 있다며 정부 설명이 있기 2시간여 전 연찬회장을 떠났다가 저녁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