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의힘 신임 당 지도부 만찬에 앞서 한동훈 당대표(왼쪽)와 이동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한 달 동안 제가 많이 참았다. 여러 가지 생각을 했기 때문인데, 그때그때 어떤 정치 공방에 불씨를 계속 살려가서 그 온도를 높여 가는 것보다 금투세 폐지 논의 같은 민생을 여야 정치에 전장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정치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8월 23일 청년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 수료식에 참석해 취임 한 달 소회를 이렇게 전했다. 취임 이후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해 최대한 정쟁을 자제했다며 야권을 겨냥한 셈이다. 실제로 그의 한 달은 민생 정책 드라이브에 집중됐다. 그는 여름철 취약계층 전기료 감면부터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 난임 지원 사각지대 해소 등 민생 이슈가 터져 나올 때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먹사니즘’에 대항해 ‘격차해소’도 꺼내들었다.

그러나 취임 한 달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세 번째 갈등을 빚으며 당내 입지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2026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을 대통령실로부터 거부당한 탓이다. 그 여파로 8월 30일 예정됐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찬도 추석 이후로 연기됐다. 한 대표는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이후 당직 인선으로 친정체제를 구축하고, 최근 친윤(친윤석열)계로 분류된 의원들과 접촉을 늘리며 당내 외연확장을 시도했으나 이번 ‘윤·한 갈등’으로 다시 아쉬운 당 장악력을 드러내게 됐다.

‘채상병 특검’으로는 당 장악력 의심

한 대표는 취임 이후 대야 관계에서 변화를 시도했다. 특유의 톡 쏘는 직설적 화법을 자제하고 “정치를 복원해보려고 한다”며 연임에 성공한 이 대표와 여야 대표 회담을 추진했다. 비록 생중계 회담을 제안하는 등 형식에 있어 야당과 줄다리기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여야 모두 회담이 반드시 성사될 것이란 관측에는 이견이 없었다. 당초 지난 8월 25일 회담이 예정됐던 만큼 8월 23일께부터 양측이 줄다리기를 멈추고 회담을 준비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이 대표의 코로나19 확진으로 회담이 연기되면서 여야 대표 회담은 잠시 길을 잃었다. 한 대표가 민주당이 ‘채상병 제3자 특검법’ 발의 시한으로 제시한 지난 8월 26일 “정 급하면 민주당이 제3자 추천 특검법을 새로 발의하라”고 말한 데 대해 민주당이 여야 대표 회담의 불확실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8월 28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동훈 대표가 두 달 전에 말한 특검을 취임하고 나서 한 달 만에 엎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당에선 대표 회담에 회의감을 가지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양측은 진통 끝에 지난 8월 29일 오는 9월 1일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더불어 한 대표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공언했던 ‘채상병 제3자 특검법’을 내놓지 못하면서 야당으로부터 당 장악력을 의심받기도 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 대표가 특검법 발의를 위해 필요한 10명의 의원을 모으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며 “한 대표를 믿고 자기 정치생명을 걸 수 있는 의원들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민주당은 내부에서 여러 이견이 있어도 단일한 입장을 내놓고 있는데, 한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단일한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의정 갈등’이 ‘윤·한 갈등’ 되나

채상병 특검으로 대야 관계 변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당정 갈등의 불씨도 재점화했다. 한 대표가 지난 8월 25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정부 측에 ‘2026년 증원은 미루자’는 중재안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로부터 거부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한 대표는 추석 전 의정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보인다. 한 친한(친한동훈)계 인사는 “채상병 특검은 받아서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중간에 제보 공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한 대표가 밀어붙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다만 채상병 특검 건은 경찰 수사 결과가 나와 한풀 꺾였다”며 “진짜 큰 문제는 대통령실과 충돌하고 있는 의정 갈등”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의료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을 잡지 못한다. 추석 때 사고라도 나면 그 공분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전했다.

의정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중재안이 되레 당정 갈등의 불씨가 되면서 한 대표의 당내 외연확장은 요원해진 모습이다. 최근 한 대표는 당직 유임 문제를 놓고 껄끄러웠던 친윤(친윤석열)계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을 비롯해 전대 때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최고위원 등과도 개별적으로 식사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9월 초 ‘윤심’을 앞세워 당선됐던 전임 당대표인 김기현 의원과의 회동 일정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한 대표와 친윤계의 화합 무드 역시 유지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앞서 한 대표와 일대일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진 한 친윤계 의원은 “이미 몇 주 지난 이야기”라며 “인사를 나눈 것이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8월 28일 브리핑을 열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또 한 대표가 제안한 중재안에 대해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추경호 원내대표 역시 같은 날 “정부의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당도 함께할 생각”이라며 한 대표와 이견을 보였다. 이에 한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이 제안했다가 거부당한 증원 유예안을 언급하면서 “더 좋은 대안이 있다면 더 좋겠다. 국민 건강에 대해 큰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팬덤만으로는 대권 도전 한계

한 대표가 공개적으로 용산을 향해 ‘대안을 제시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표가 당정 갈등을 직접 공개하면서 지지층과 ‘팬덤’을 자극하면, 한 대표의 강성 팬덤이 한 대표의 소신을 지지하고 윤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지지층을 더욱 응집시키고, 단기간에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한 대표의 팬카페 ‘위드후니’ 회원들은 한 대표의 유예안 중재와 관련해 “용산 불통을 혼내 달라” “최악의 대통령”이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비판하고 나섰다. 또 “한 대표님을 응원해야 한다”며 취임 100일이 되기 전 책임당원 100만명을 달성하기 위한 책임당원 가입 권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 대표가 팬덤만으로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한 대표 강성 팬덤이 정점식 전 정책위의장에게 문자 폭탄과 소셜미디어(SNS) 댓글 테러를 하는 등 ‘개딸’(개혁의딸·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데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팬덤이 있어 한 대표에 대해 기대를 건 것은 아니다. 정치는 팬덤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내 정치에서 팬덤은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정치인에게 희망을 가져서라기보다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정권이 상대 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을 하는 것이다. 만약 지금 국민의힘만 잘했더라면 이재명 대표는 (개딸 때문에) 벌써 힘들어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지금 한 대표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취임 한 달을 맞이했다. 의대 증원 유예안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한마디로 거부해버렸다. 집권당 대표로서 문제 해소에 실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