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7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가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전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말은 이랬다. “내 처지와 상황이 그렇다.” 이 문장 하나에서 한 대표가 갖는 딜레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난 9월 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가진 회담에서 한 대표는 “채상병 특검법을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처지가 녹록지 않다는 이 말은 꽤 화제가 됐다.

민주당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한 대표가 바뀌지 않은 건 ‘내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는 말밖에 없다.” 이미 여러 부분에서 호기로웠던 출마 때와 달리 지금은 꽤나 물러섰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뒤 잠깐 일선에서 물러난 한 대표가 당대표에 나오겠다며 전당대회를 앞두고 복귀했을 때 내놓은 카드가 ‘채상병 3자 특검법’이다. 다만 제3자 특검법은 양면이 존재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아 내부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특검법은 한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제3자 특검법을 두고 의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단계까지 한 대표가 밀어붙였다면 승부수가 됐겠지만 지금은 의원들이 고민도 할 이유가 없으니 그냥 어떻게 되나 관람객처럼 지켜보는 상황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발의한다고 해도 여기에 이름을 올려 기록을 남길 의원이 얼마나 될지도 미지수다”고 말했다.

윤석열과 다른 검증의 시간들

한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지지율이다. 정치 초년생에다 아직 검증을 완벽하게 거치지 않았지만 그는 보수 정당 내에서 이재명 대표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윤 대통령과의 충돌 속에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압승했던 원동력도 이 ‘경쟁력’에 있다. 그런데 최근의 행보가 박한 평가를 받으며 경쟁력 이반 추이가 보인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8월 31일~9월 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03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42.1%, 국민의힘 한 대표 20.9%로 집계됐다. 문제는 추세다. 한 대표는 당대표가 된 지난 7월 23일 조사에서 11.6%포인트(이재명 38.5%, 한동훈 26.9%) 격차를 보였지만 이번에는 21.2%포인트로 두 배 가까이 격차가 벌어졌다.

‘처지 발언’의 원인이 된 채상병 특검법은 한 대표가 강조한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층)’ 확대 전략의 일환이었다. 여론조사에서 다수인 특검 요구 민심을 수용해 용산과 차별화하는 효과를 노렸다. 하지만 이미 후퇴를 넘어 철회까지 언급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특검법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친윤계, 윤 대통령 지지층과 정면충돌을 불사하기엔 한 대표의 정치력은 꽤 허약하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야기한 특검법 발의를 이제 와서 물리는 것도 쉽지 않다. 당내 반대를 뚫는다는 건 정치력 검증의 장이다. 당내 설득도 못하는 ‘대권 주자’ 이미지라도 덧씌워지면 치명적이다.

후보 경쟁력은 보수 정당에서 그립감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정치 초년생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빠르게 장악했던 것도 높은 지지율이 밑천이 됐다. 검사 선후배 사이, 그리고 함께 일도 많이 했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비슷한 듯 보여도 놓인 처지가 다르다. 윤 대통령은 대선이 1년이 채 안 남은 기간 동안 급부상했고 실력 검증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정면돌파가 가능했다. 반면 대선까지 한참 남은 한 대표는 이런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정치력 검증이 훨씬 까다롭게 들어가는 중이다.

한 친한계 관계자는 “한 대표가 타이밍상 이득을 못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정권 탈환을 위해 보수성향의 지지자가 결집할 수 있었다. 보수가 당시 총선, 지선 합쳐서 이겨본 역사가 없던 때였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탄핵당하며 허무하게 정권을 뺏긴 지지자들은 차기 후보를 찾아야 했다. 최대 숙원이 정권교체인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도 후보 때 미흡했고 구설에도 휩싸이지 않았나. 사실 한 대표가 당시 윤 대통령보다는 좀 더 스마트하다고 보는데 지지층의 간절함이 윤 대통령을 밀어올렸다. 현 여당 대표인 한 대표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이반세가 강할 때 여당이 강한 후보를 지니고 있는 건 위안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박근혜’란 존재가 그랬다. 여당 내 반(反)여당의 포지션이 가능했다. 한 대표 역시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면서 반여당은 아니지만 비(非)야당인 표를 끌어오며 외연 확장을 도모하려고 했다. 반면 지금처럼 지지율이 하락 추세일 경우 차별화는 동력을 잃는다. 게다가 지금은 한 대표 외에 여러 주자가 외부에서 대기 중이다. 현재 지지율은 낮더라도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홍준표 대구시장이 있다. 대체 선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대표 인기 아닌 보수진영 복원력이 문제”

한 대표 체제가 허약하다는 징후를 당내 중진들에게서 찾기도 한다. “전당대회 때 영남권 중진들이 원희룡 후보를 돕다가 분위기가 안 좋자 관망세로 돌아섰다. 그 관망하던 중진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여의도 정치는 초선이나 재선이 아닌 중진들이 굴리는데 이들의 협조 없이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때문에 한 대표 체제가 김기현 지도부보다 허약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친윤 의원들의 영향력이 감소한 건 사실인데, 그 감소가 한 대표 측의 영향력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TK지역 의원실 관계자)

중진들 중 일부는 한 대표의 정치를 ‘개인플레이’라며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가 있다. 한 대표의 처지가 나아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시선이다. 임기 반환점도 안 지나서 등장한 미래권력이 현직 대통령하고 차별화한다는 건 결국 현직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의미하는데 그걸 받아들일 의원이 있을까. 이 때문에 한 대표가 요구받을 수 있는 건 차별화가 아닌 대통령과의 협력일 수 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는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의원들 중 보수 진영이 망가져가는데 당대표의 인기만 치솟는 걸 누가 바라겠는가. 한 대표로는 보수 결집이 안된다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 대표가 계속 대통령과 척을 지면 자칫 여권이 공멸할 수도 있고 지지율이 더 떨어지면 정말 탄핵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당 내부나 강경 보수 지지자들 사이에는 실제로 있더라. 그런 점에서 의원들 이익에 부합하는 건 한 대표 지지율이 아니라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 상승일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대표에 대한 기대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 정치인 한동훈이 만들어내는 과업에 달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과업의 상당수는 현재 권력과 다른 길을 걸어달라는 요청이다. 그런데 반대로 지금의 환경은 한 대표가 과업을 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 대표가 당의 혁신이라는 과업을 미루는 대신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건 그를 바라보던 지지자들의 바람과는 반대되는 방향이라서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목표가 부딪치면서 한 대표는 지금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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