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별세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호남대 객원교수로 활동하던 2001년 4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자택 서가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는 모습. 당시 남 전 장관이 살던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은 서재와 주거 공간이 따로 없을 정도로 손발이 닿는 곳마다 책 천지였다.

남재희(南載熙·90) 전 노동부 장관이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언론계를 거쳐 정치권에 몸담았던 고인은 보수 진영에 있으면서도 진보 진영 인사들과 교류하기에 애쓴 ‘체제 내 리버럴(liberal)’이란 평을 들었다. 그는 자기를 “시대의 조정자”라고 했다.

고인은 193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2년 서울대 의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2년 다니다 중퇴하고 1954년 법대에 다시 들어갔다. 대학 시절 이승만 당시 대통령 양아들 이강석의 서울대 법학과 부정 편입학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1958년 한국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1962~1972년 조선일보 문화부장·정치부장·편집부국장·논설위원을, 1972~1977년 서울신문 편집국장·이사·주필을 지냈다. 1978년 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13대까지 4선을 했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했고, 민정당 정책위 의장을 두 번 지내는 등 전두환 정권의 핵심 정책 참모로 꼽혔다. 1993년 김영삼 정부 때 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다.

고인은 1985년 당시 5공(共) 정권이 대학 탄압 내용을 담은 ‘학원 안정법’을 추진하자 반대 의견을 냈다. 당시 그의 두 딸이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권이란 점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자리에서 군부 실세들과 여당 의원 간에 시비가 붙었고, 고인이 술잔을 집어던졌다가 폭행당한 일화도 있다. 당시 사건이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군부 정권에서 군인에게 저항한 의원’이란 평을 들었다.

노태우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격인 민주화합추진위원회(민화위)에서는 국민 통합 분과를 맡았고, 여기서 ‘광주 사태’라 부르던 5·18 명칭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부르자고 제안해 관철했다. 당시 야당은 ‘5·18 광주 민주화 투쟁’이라는 표현을 주장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故)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뉴스1

고인은 1993~1994년 노동부 장관 재임 시절 노동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근로자의 날’을 종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바꿨다. 당시 노동계에선 명칭도 ‘노동절’로 바꾸자고 했지만 보수 진영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근로자의 날’을 유지하기로 했다. 1994년 현대중공업 파업 당시엔 ‘특단 조치’를 강조하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향해 “각하, 안 됩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원만히 해결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고인은 공권력 사용을 자제하며 현대중공업 노사의 타협을 이끌었다. 노동부 장관 재임 당시 복수 노조를 지지하고 전투적 노동운동계 인사들과 자주 만나면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념 공세에도 시달렸다.

고인은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는 집필과 강연 등을 이어갔다. ‘양파와 연꽃: 체제 내 리버럴의 기록’(1992) ‘언론·정치 풍속사’(2004)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2006)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2014) ‘진보 열전’(2016) ‘시대의 조정자’(2023) 등을 썼다. 언변이 능해 TV 토론에도 자주 나왔다. 고인은 책 수만 권을 모은 장서가(藏書家)이자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1998년에는 수집한 책 6만여 권을 객원 교수로 정치 문제를 강의했던 호남대에 기증했다. 유족은 “고인은 이후에 모아둔 책 1만여 권은 후배 기자들에게 나눠줬고, 남은 책은 한 신문사가 바자회를 열어 독자들에게 권당 1000원에 팔았다”고 전했다.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빈소에서 한 문상객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인은 책 ‘진보 열전’에서 “꿈은 진보에 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고 썼다. 딸 남영숙 이화여대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아버지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대의 조정자 역할을 하셨다”며 “그 점을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했다. 고인의 사돈이자 남 교수의 시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인 고(故) 예춘호 전 의원이다.

유족으로는 아내 변문규씨와 딸 화숙(미국 워싱턴주립대 명예교수), 영숙(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관숙, 상숙씨와 사위 예종영(전 가톨릭대 교수)·김동석(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19일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