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북한은 지난 5월 28일 탈북민 단체 등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오물 풍선을 처음 부양했다. 지난 9월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이 그동안 22차례에 걸쳐 띄운 오물·쓰레기 풍선은 5500여개에 달한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태영호 신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지난 정권에서처럼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북한에 넘겨주면 안 된다”며 “대북전단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법치국가라는 점을 북한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탈북 외교관 출신인 태 사무처장은 “누군가에게 통일은 쪼개진 국토가 연결되고 갈라진 민족이 하나가 되는 거창한 일이지만 제게 통일은 고향으로 돌아가 헤어진 일가친척을 다시 만나는 매우 단순한 일”이라며 “사무처장 임기 내에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 안 되더라도 평생 통일을 위해 모든 걸 다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9월 25일 서울 중구 민주평통 사무처에서 그를 만났다. 다음은 태 사무처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 임종석 전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이 통일하지 말자며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남한에서 2개 국가 수용론이 나오는 것이 굉장히 우려스럽다. 임 전 실장이 말하는 통일은 북한이 바라는 통일이 아니었을까. 북한이 통일하자고 할 때는 평생 통일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하던 분들이 북한이 통일을 포기하고 두 국가로 가겠다고 하자마자 2개 국가론을 받아들이니 그들이 생각하는 한반도 미래상은 평양 주도의 미래상이 아니었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 북한은 왜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했나.

"먼저 김정은 정권이 자기 체제의 취약성을 느껴 궁여지책으로 내놨다고 본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 한류가 북한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2개 국가론을 발표하기 전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만들어 통제를 강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정은 정권은 통일을 지워버리는 것이 한류를 차단하는 효과적인 방도라고 생각한 것 같다. 두 번째로는 핵을 쓰기 위함이다. 북한은 핵무기에 대한 입장을 자위적 수단에서 선제공격 수단으로 바꿨다. 2022년 9월에 발표한 '핵무력 정책법'에는 비핵국가들이 다른 핵무기 보유국과 야합하여 북한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면 핵무기를 쓰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북한 헌법에서 남한은 통일의 대상이다. 남한을 향해 핵을 선제적으로 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을 것이다. 헌법과 특별법이 충돌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족·통일 개념을 지우고 2개 국가론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북한 주민들이 2개 국가론을 바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새로운 이론을 내놓으면 전문가 집단이 사설·논설 등에 풀어서 설명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켰다. 그런데 북한 주민들이 다 보는 노동신문에서조차 김정은의 2개 국가론을 해설해 주는 사설이나 논설이 보이지 않았다. 재일 친북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에서도 굉장히 큰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조총련 원로들이 중앙위원회에 ‘어떻게 이렇게 통일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평양에서 아직 이에 관한 설명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2개 국가론과 관련해 체계적인 내용 정립이 안 된 것이다.”

- 특히 북한 엘리트 계층이 충격을 먹었다는 얘기도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입국한 엘리트 탈북민은 10명으로 2017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북한 외교관들은 ‘한반도의 분단은 강대국들이 강요한 것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 ‘통일하려면 미군이 남조선에서 나가야 한다’ 등 통일을 외치면서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통일을 하면 안 된다’ ‘2개 국가로 가야 한다’는 등의 활동을 해야 한다. 업무에 큰 괴리가 올 수밖에 없다. 또한 북한 노동당은 원칙적으로 세습을 반대하는데 세습 체제가 공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던 배경에는 통일이라는 목표가 있었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만들면서 ‘혁명적 수령관’을 넣었는데 쉽게 말해서 지도자가 바뀌면 전 지도자의 정책이 뒤집어지니 통일을 이룰 때까지 세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트 계층에선 ‘통일을 안 할 건데 왜 세습 통치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제조 시설을 시찰하는 모습이 최근 공개됐다.

“김정은이 북한에서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선 무언가 이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이에 ‘선대들이 못했던 핵 개발을 자신이 완성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 김정은은 핵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같은 대국 지도자가 북한을 찾아온 것이라며 핵이 대단하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지만 곧 약효가 끝날 것이다. 주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결국 생계다. 핵이 주민들의 생활고를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김정은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라고 본다.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핵무기 개발에 쏟아부으면 주민들 생활은 더 힘들어진다.”

- 최근 북한의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람들은 재산을 북한 화폐로 저축하지 않는다. 만약 오늘 장마당에서 번 북한 돈이 있다면 그날 화폐 가치를 보고 돈주(錢主)에게 달러를 사서 집에 간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장마당에 와서 달러를 내고 북한 돈을 필요한 만큼만 산다. 환율이 굉장히 출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공무원 월급이 몇 달 밀리면 내부적으로 돈을 찍는다. 돈을 계속 찍다가 갑자기 화폐개혁을 하면 이전의 화폐는 휴지조각이 된다. 북한 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니 북한 주민들 집에는 김일성이 그려진 지폐 대신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지폐가 있는 것이다.”

- 미국 대선 결과는 북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 김정은은 ‘대화도 대결도 우리의 선택으로 될 수 있지만 우리가 보다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할 것은 대결’이라고 말했다. 4.5t급 탄두를 장착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우라늄 제조 시설도 공개했다. (미국 대선에서) 누가 올라서든 북한은 협상을 하려고 하겠지만, 트럼프 후보의 당선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북한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테이블 위에 꺼내놓는 주고받기식 협상 전략을 짜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추후 핵 협상에서 북한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면 북한 정권은 위기에 빠질 것이다.”

- 최근 탈북민의 연령 구성을 보면 20대가 가장 많다. ‘장마당 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의 탈북이 늘어난 이유는.

"기존에는 '톱다운'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보텀업' 방식의 탈북이 이뤄지고 있다. 제가 탈북했던 2016년에는 부모들이 먼저 탈북을 결정하고 자녀들이 부모의 결정을 따랐는데 최근에는 20대 자녀들이 먼저 남한에 가겠다고 하고 부모들이 끌려온다. 그 배경에는 한류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부모 따라서 해외에 간 북한의 젊은 세대들이 전 세계가 한류로 들썩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 온 탈북민 가운데 가장 많은 연령대가 20대였고 그다음으로 10대, 30대 순이었다. 탈북민 중 MZ세대가 이제는 80%를 넘는다고 한다."

- 탈북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차관급 관료직에 임명돼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북한 주민도 우리 헌법에 의해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계속 내왔지만 현실적으로 북한 출신도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께서 북한 공직자 출신을 차관급으로 임명하면서 북한 주민들도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지금의 북한 체제는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소련이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될 것이라는 걸 누가 예측했겠나. 외교관 출신으로서 우리의 자유 통일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연대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힘을 쏟겠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