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9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photo 뉴시스

‘독대(獨對)’는 그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다. 어떤 일을 논의하기 위해 단둘이 만나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그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독대가 갖는 격은 뛰어오른다. 배석자 없는 1대1의 대화, 그리고 그것이 정치인 간에 이뤄지는 밀담이기에 과거 대통령과의 독대는 ‘밀실 정치’라는 부정적 의미를 상징했다.

다만 시대와 사람에 따라서 독대의 의미는 바뀐다. 박근혜 정부 때는 독대를 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다양한 사람과 대면 보고를 받지 않은 게 폐쇄적 소통이라는 비판을 만나 문제가 생겼다. 2016년, 박 전 대통령의 독대 기피 문제는 큰 이슈로 번진다. 그해 11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대통령의 측근들은 국회에서 이런 대답을 내놨다.

“(대통령과) 전화통화는 했어도 독대한 적은 없습니다.”(조윤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제가 독대를 한 적은 없다고 말씀드렸고….”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당시 해결해야 할 경제현안이 산적해 있던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조차도 대면보고를 못 한 지 한 달이 넘었다고 했다. 당시 이 문제가 화제가 됐던 건 박 전 대통령이 정사(政事)를 논의해야 할 공식적 라인과 대면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로 지적되면서부터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나 비선 실세 최서원(전 최순실)씨라는 ‘인의 장막’에 갇혀 있었다는 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발언들이었다.

지난 10월 2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상임위원장·간사단 초청 격려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photo 뉴시스

친윤 “김 여사 건드리는 접근법 용납 못 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요청한 독대는 퇴짜를 맞았다. 재차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독대 요청에도 대통령실은 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만남 자체도 무산되기 일쑤다. 지난 9월 30일 한 대표는 오후 5시로 예정됐던 한 언론사의 창간기념식 참석 일정을 행사 30분 전 취소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가장 급한 일이 의료계 문제다. 때마침 의료계 인사와의 급한 만남이 잡혀 이동한 것이지 일부러 회피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당 언론사에 양해도 구했다고 했다. 대통령과의 갈등 국면의 불편함 때문이 아니라는 걸 재차 강조했다.

지난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식 행사장에서 짧게 악수만 하고 헤어진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부각된 건 10월 2일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상임위원장, 상임위 간사단을 용산으로 불러 만찬을 했다. 지난 9월 24일 한 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 만난 지 8일 만에 이뤄진 또 한 번의 만남이다. 다만 원외인 한 대표는 이 자리에 불참했다.

독대는 하지 않고 서로를 등진 채 뒤돌아서 있지만 오히려 ‘독대’가 부각되는 이번 사례는 꽤나 이례적이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독대는 당정일치라는 관점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돼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과의 독대는 권력의 가늠자다. 이 때문에 이번에 독대를 성사시키지 못함으로써 한 대표 체제는 이전 김기현 대표 체제보다 허약한 것을 노정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김기현 전 대표는 2022년 11월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만찬 독대를 가졌는데 3시간 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유독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인색하게 구는 건 두 사람 간 신뢰에 냉기가 흐른다는 방증이다.

독대를 요청하는 쪽은 사정이 급한 쪽이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을 때 취하는 만남이 독대다. 그런 점에서 급한 쪽은 한 대표다. 그리고 그의 독대 정치가 실패하는 데는 김건희 여사가 있다. 한 대표는 지금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시달리는 중이다. 원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직면해 있다. 민주당은 한 대표가 앞서 공약한 제3자 추천 방식을 반영해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네 명을 추천하도록 하겠다며 특검법 통과를 압박한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특검 찬성’이 우세한 지형은 변하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26일 공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야당이 추진하는 김 여사 특검법에 대한 찬성 여론은 65%로 반대 여론(24%)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특히 여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지역에서도 특검법 찬성 여론이 각각 58%로 과반을 기록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럼에도 대통령실의 입장은 단호하다. 한 친윤계 관계자는 “한 대표가 김 여사 문제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 자체부터가 문제”라며 “그런 식의 정치적 어프로치를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반면 한 대표 측은 김건희 특검법에 관해서는 어떻게든 정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장동혁 국민의힘 수석최고위원은 지난 9월 30일 JTBC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든 해소가 돼야 한다”며 “사과든 다른 방법으로든 정치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대표 측에서는 “용산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대표 쪽과 가까운 한 의원은 “한때 브로맨스의 상징과 같던 두 사람은 정부 출범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사실상 파국을 맞았다. 그 이유는 대통령실에 있다”고 강조한다. “보스-부하 사이와 대통령-여당 대표 사이는 관계 설정에서부터 질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윤 대통령이 그런 변화를 용인 못하는 것 같다. 대화를 거부하니 두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 속 표정을 보고 내면을 읽어내는 일이 계속 반복된다. 이런 피곤한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2014년 7월 1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 옆 자리에 착석했다. photo 뉴시스

‘무대’도 가시밭길… 韓이 가능할까

여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패배하자 국정 운영 기조의 변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대통령 탓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하지만 총선이 끝난 뒤에도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 총선이 끝나고 닷새 만에서야 대통령의 메시지가 처음 나왔다. 대국민 메시지가 아닌,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 총선 뒤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했다. 취임 뒤 최저치를 찍었다.

마치 2024년의 상황 같지만 이건 8년 전 박근혜 정부가 처했던 정치적 환경의 판박이다. 2016년 4·13 총선에서 패배한 여당 내부에서는 청와대의 권위적 국정 운영 스타일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평소 박 전 대통령은 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무대(무성대장)’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의 독대에 매우 인색했다. 2014년 7·14 전당대회가 끝난 다음 날, 새로 선출된 김 전 대표는 청와대 만찬 부름을 받는다. 당시 이들의 자리 배치는 뉴스거리였다. 당 대표가 대통령 맞은편에 앉는 매뉴얼과 달리 전당대회에서 3위를 한 김태호 당시 최고위원이 박 전 대통령 맞은편에 앉았다. 김 전 대표는 대통령 옆에 배치됐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마주보는 구도를 청와대가 거부한 셈이 됐다. 이후 두 사람은 냉랭한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김 전 대표는 줄곧 ‘수평적’ 당청관계를 내세웠다. 민심과 당심을 등에 업은 데 힘입어 ‘주류’ 세력을 따돌리고 당 대표가 됐기에 그 기조를 버리지 않았다.

마치 지금의 데자뷔 같은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임기가 남은 대통령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무성 지도부가 처음 들어설 때 지도부를 비주류가 장악했다. 사무총장이나 제1사무부총장에도 비박계 의원들을 기용했는데, 1년 지나고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청와대에 찍혀 사퇴하면서 당 내홍이 심해지자 친박계 의원들을 다시 주요 당직에 인선하며 한발 물러섰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무성-유승민’ 조합도 그렇게 가시밭길을 걸었는데 정치 경험이 일천한 한 대표는 추경호 원내대표와 원팀도 아니다. 임기가 아직 절반 이상 남은 윤 대통령을 이겨낼 수 있을까. 부정적이다.”

이재명과 더블스코어로 벌어진 경쟁력

한 대표가 처한 상황이 더 비관적인 건 거대 야당의 존재 탓이다. 당시 총선에 패했던 새누리당도 여소야대에 내몰렸지만 여당과 제1야당의 의석 차는 122 대 123, 불과 1석이었다. 반면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과 제1 야당의 차는 108 대 175다. 야권 의석을 모두 합치면 192석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한 대표가 골머리를 앓는 김 여사 관련 이슈를 ‘꽃놀이패’로 삼을 모양새다. 이미 지난 9월 19일 수적 우위를 앞세워 통과시킨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거부권 행사를 민주당에서는 ‘마일리지 적립’처럼 본다.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축적 소재가 없어서다. 게다가 재표결을 이틀 앞둔 10월 2일 검찰이 김 여사의 ‘디올백 수수 의혹’에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도 민심에는 악재였다. 당 내부에서는 “방어 논리 만드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혹독한 조건 속에서 한 대표는 두 달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지난 7월 23일 취임한 뒤 한 대표를 향한 정치적 지지 강도는 상당히 약해졌다. 지난 9월 27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에서 한 대표는 15%를 기록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25%)에 10%포인트 차로 뒤졌다. 지난 7월 조사에서 19%를 기록해 이 대표(22%)와 오차범위 내 접점을 벌였던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난다.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의 의뢰를 받아 10월 2일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한 대표는 20.7%를 얻어 이 대표(42.8%)에 더블스코어로 밀린 상태다. 지역별·연령별 모든 그룹에서 뒤졌다는 게 흥미롭다. 심지어 70대에서도 이 대표에게 밀렸다.

정치적 자산이 적은 한 대표에게 가장 중요한 건 대선 후보로서의 경쟁력이다. 그가 ‘비대위원장-당대표’ 루트를 최단 코스로 밟았던 이유였고 보수 정당의 리더로 그립을 강하게 쥘 수 있는 밑바탕이었다. 당내 자기 세력을 불리는 데 있어서도 이 경쟁력이 떨어져선 안 된다. 과거 정치 경험이 전무했던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빠르게 장악했던 것도 개인 경쟁력을 밑천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자신의 보스였던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놓인 상황이 다르다. 윤 대통령은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기, 외부에서 영입됐고 검증을 거칠 시간이 부족해 여러 악재에도 정면돌파가 가능했다. 반면 대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한 대표는 줄곧 검증대에 올라서야 할 처지인데 이 과정에서 실점만 하고 있다. 과거 정치 관행을 ‘여의도 문법’으로 격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히려 그의 문법은 ‘언론플레이’라고 지적받으며 점수를 까먹는 식이다.

당정 관계, 당내 장악력, 여야 관계 모두 꽉 막힌 상황에서 한 대표는 고립됐다. 고립이 깊어질수록 빠져나오는 것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여권에서는 틀어진 두 사람의 결말을 크게 네 갈래로 본다. 한 대표의 중도 사퇴,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봉합, 윤 대통령의 마이웨이, 동반 추락이다. 한 대표는 당 대표 취임 뒤부터 “중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윤 대통령과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 당 주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 등이 그 근거다. 특히 다가올 10·16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지도부 책임론이 한 대표를 향하게 된다. 기초단체장 선거들로 꾸려진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금정과 인천 강화는 국민의힘이 이겨야 본전인 상황이다. 하지만 김 여사 관련 악재와 당정 갈등으로 대통령 지지율과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동반 추락 중인 게 변수다. 최근 한 대표가 직접 선거 운동에 나서는 이유다.

“이런 식이면 대선 캠프도 못 꾸려”

성격이 다른 사퇴가 있을 수도 있다. 한 대표가 스스로 물러나기 위한 준비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대선 나가려면 내년 9월에 (당 대표를) 그만둬야 되는데 이 상황에서 당의 변화를 이끌지 못하면 대통령 때문에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기도 어렵다”며 “내년 9월 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오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봉합은 당정이 손을 잡는 그림이다. 특히 야당은 ‘김 여사 국감’을 앞세우고 있는 터라 위기에 몰린 윤 대통령이 한 대표 쪽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거라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한 대표 없는’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일행과 윤 대통령이 만찬을 가졌던 10월 2일을 기점으로 이 시나리오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정부는 정부대로, 당은 당대로 제 갈 길 가는 마이웨이도 윤 대통령의 스타일상 희박하다는 관측이 많다.

오히려 우려되는 건 동반추락이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한 대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력도 없고 권한도 없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지지율이 빠질 각오를 해서라도 대통령과 적절한 타협이 필요한 때다”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지지율을 떨어뜨리면서 한두 번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선택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앞선 친윤계 관계자도 “대표 인기가 오른들 보수정치 진영이 망가지면 의원들 중 누가 좋아하겠나. 한 대표가 그러고서 대선에 나간다 해도 캠프도 못 꾸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 없이 의원단을 만났던 10월 2일, 한 대표는 진보 성향 유튜브 채널과 공모해 자신을 공격했다는 의혹을 받은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에 대한 당내 감찰을 전격 지시했다. 김 전 행정관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앞둔 지난 7월 10일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관계자와 통화하며 한 대표의 ‘비위 의혹’을 제보했다. 대통령실은 ‘개인의 일탈’로 규정했지만 한 대표 측은 ‘정치공작’으로 읽는 모양새다. 고립의 해법으로 용산을 겨냥한 한 대표는 과연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