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10·16 재·보궐 선거 이튿날인 17일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힘에 준 마지막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며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국민 걱정과 우려를 반드시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한 대표가 부산 금정구청장과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승리를 이끌어내자 김 여사 리스크 해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온 것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텃밭’ 2곳 수성에 성공한 것은 “유권자가 김 여사 문제를 정리하라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라고 보고 행동에 나선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날 한 대표의 김 여사 문제 관련 요구에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야당은 탄핵,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보수 궤멸 위기를 느끼고 투표장에 나와 국민의힘에 표를 던진 측면도 있다”고 했다. 여권에선 대통령실과 한 대표의 이런 인식 차로 볼 때 두 사람이 김 여사 문제 등 여권발 리스크를 해소하고 여권 재정비에 나서자는 데 뜻을 모을 수 있을지는 “산 넘어 산”이란 말이 나온다.
한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해 ‘대외 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 3가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한 대표가 이번 재·보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9일부터 공개적으로 제기해 온 사안이다. 당시엔 기자들의 관련 물음에 ‘동의한다’는 취지로 답하는 형식이었지만, 이날은 공개회의 자리에서 김 여사를 거명하면서 꺼냈다.
한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김 여사와 관련해 “제기되는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이 ‘필요한 절차가 김 여사 특검법을 말하는 것이냐’고 묻자 “특정한 절차를 말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적극적으로 설명해서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드리는 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이날 검찰의 김 여사 무혐의 처분에 대해서는 “오늘 검찰 설명이 국민이 납득할 정도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10일 “검찰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 한 대표의 이날 언급은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김 여사 특검법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김 여사가 스스로 의구심을 푸는 행동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란 말이 나왔다.
이처럼 한 대표가 당정 관계 악화 우려에도 김 여사 관련 리스크 해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번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이 ‘김 여사 문제 정리’를 요구한 것이라 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친한계인 신지호 국민의힘 부총장은 통화에서 “부산 금정구청장, 강화군수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지지층이 한 대표의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인정하고 쇄신에 나서라고 명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이날 비공개회의에서 김 여사와 과거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를 공개하며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킨 명태균씨와 관련해 “검찰의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이날 “국민이 선거 현장에서 한 말은 ‘지금 이대로 가면 너희(여권) 다 망한다’였다”며 “국민이 선거를 통해 마지막 기회를 줬다. 변화와 쇄신만이 야당의 헌정 파괴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친윤계 내부에서도 “김 여사 관련 의혹이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을 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친윤계 의원은 “이번 재·보선 민심은 김 여사와 관련한 환부를 도려내라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친한계를 중심으로 “김 여사뿐 아니라 윤 대통령의 직접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 대표의 김 여사 관련 발언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조폭도 넘버투가 넘버원 등에 칼을 꽂진 않는다”고 했다. 오는 21일 예정된 대통령과의 독대를 앞두고 거듭되는 한 대표의 김 여사를 겨냥한 공격이 선을 넘었다는 취지다. 다른 관계자는 “한 대표가 민심을 오판하고 독대 등 판을 깨려는 것 아닌지 의아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데 대해서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비공식적으로 “혐의가 없는 사건을 검찰이 너무 시간을 끌었다” “야당이 사건을 정치화하면서 본질이 왜곡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실 주변에선 김 여사가 명품 가방 수수 문제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적극적인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