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1시간 20분가량 회동을 마친 뒤 곧장 귀가했다. 회동 결과는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브리핑했다. 회동 직전까지 국민의힘 관계자들 사이에선 “한 대표가 회동 후 국회로 와서 직접 기자들에게 브리핑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한 대표 대신 박 실장이 나선 것이다. 대통령실은 회동과 관련한 사후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탓에 회동이 끝난 뒤 여권에선 “윤·한 두 사람이 회동에서 입장 차만 확인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왔다.
박정하 당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윤·한 회동이 끝난 뒤 국회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을 뵙고 나온 한 대표한테 구술받은 내용”이라면서 한 대표 발언을 전했다. 박 실장에 따르면 한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윤 대통령에게 ‘나빠지고 있는 민심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와 관련한 3가지 해법과 특별감찰관 임명 진행’ ‘여·야·의·정 협의체 조속한 출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대표가 언급한 김 여사 리스크 해소 3대 해법은 그가 지난 17일 당 지도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요구한 ‘김 여사 대외 활동 중단’ ‘대통령실 인적 쇄신’ ‘의혹 규명 절차 협조’ 등이다.
박 실장은 이어 “한 대표는 우리 정부의 개혁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지지하고 당이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렸다”며 “다만 개혁의 추진 동력을 위해서라도 부담되는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고 했다. 박 실장은 “이 외 고물가·고금리 등 민생 정책 관련 당·정·대 협력 강화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여당 대표로서 정부의 의료·연금·교육·노동 등 4대 개혁 과제와 핵심 국정 기조 등을 뒷받침하겠지만, 개혁 추진 동력에 리스크로 작용하는 김 여사 문제와 의정 갈등을 윤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풀어달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박 실장은 ‘한 대표 요구에 대해 윤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는 기자들 물음에는 “회동에 배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대표에게 전달받은 내용 외에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회동 직후 한 대표 얼굴이 어땠느냐’는 질문에는 “해가 진 상황이라 표정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대표 주변에서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서 기대했던 답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김 여사 활동 중단과 의혹 규명 협조, 대통령실 내 김 여사 라인 정리 등 한 대표 요구에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은 김 여사가 이미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고 대통령실 인사도 구체적인 잘못이 확인돼야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명태균씨 관련 의혹도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임명과 관련해서는 “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후보도 함께 추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결국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요구한 ‘김 여사 리스크 해소’와 ‘여·야·의·정 협의체 신속 출범’을 위한 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가 회동 후 브리핑을 하지 않고 곧바로 귀가한 것도 회동 결과에 실망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대통령실이 이날 공개한 회동 사진을 보면 한 대표 앞에는 A4 용지를 담은 빨간색 파일이 놓여 있다. 여권 관계자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할 말을 미리 적어간 파일”이라며 “한 대표는 할 말을 다 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회동 결과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두 분이 여러 다양한 주제에 대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며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당정이 하나 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들어가고 나갈 때 표정이 밝았다”며 “윤 대통령이 등을 두들겨 주는 모습도 있었고 안아주기도 하고 그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