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보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는 어떤 카드가 남았을까. 한 대표 주변에서는 최근 ‘제3자 김건희 특검법’ 이야기가 나왔다.
의견은 갈리지만 당 내부에서는 부정적 기류가 강하다. “그런 설을 추적해보니 소수의 의견이 확대돼서 퍼진 것 같더라. 그런 이야기가 나와도 그건 한 대표가 받기도 어렵고 관철하기도 어렵다. 배신자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당장 제3자 특검법은 원외 대표 입장에서 한계가 있다. 특검법 반대 당론이 채택될 거고 여야 협상의 주도권은 추경호 원내대표가 가지고 있는데 그게 되겠나. 만약 반대 당론을 정했는데도 이탈표가 나와 어떤 형태의 특검법이든 통과된다면 추 원내대표도 물러나야 하지만 한 대표도 책임져야 한다.” (국민의힘 당직자)
반대 관측도 있다. “김건희 특검은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대통령실은 그동안 사과하는 것도 안 된다는 것 아닌가. 만약 특검을 피하면 김건희 리스크를 해결하지 못한 여당 대표로 대선을 향해 가야 한다는 건데 그거는 상식 밖의 얘기 아닌가. 대통령과 갈등 있는 당 대표는 진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직을 걸고 승부를 던질 수도 있다.” (국민의힘 수도권 원외 위원장)
한 대표는 회담에서 김건희 여사 리스크 대응 방안을 핵심 의제로 꺼냈고 윤 대통령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빈손 회담’은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쪽에 정치적 타격이 컸다는 시선이 많다.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은 하나도 안 변할 것”이라는 이미지가 고착됐다. 특히 면담 직후 추 원내대표를 만찬에 부른 것은 ‘한 대표 홀대론’을 넘어 ‘패싱론’을 확신시키는 장면이 됐다.
회담 이후 양쪽 지지자들 진영도 완전 갈라선 분위기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한 대표를 향해 ‘이재명 밀정’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회담 직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회담을 갖기로 한 발표가 나왔다. 용산에서의 홀대는 한 대표 지지자들의 감정선을 강하게 자극했다. 잠재적 우군일지도 모르는 이들은 이번 기회로 확실하게 서로 비토 세력으로 돌아섰다.
통합은커녕 이제는 내전 돌입
갈라섬이 강해지면서 보수통합은커녕 보수내전 양상이 펼쳐질 기세다. 회담 다음 날 있은 친한계 모임은 ‘세 과시’나 ‘시위성 만찬’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 대표 쪽에서는 “앞으로 더 자주 볼 것” “앞으로 사람 수를 더 늘릴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 대표는 원내 세력이 약하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은 원외, 혹은 장외다. 회담 다음 날 인천 강화풍물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민심 따라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주목할 대목은 “피하지 않고”다. 충돌을 감내하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한 대표는 ‘배신자 프레임’을 경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과 다른 길을 걷기 위해서는 이를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필요했던 건 고난의 서사(敍事)였는데 회담에서 받은 홀대 장면은 이를 충족시켰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친윤 쪽에서 배신자 프레임을 걸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본다.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건 보수에서 엄청나게 가혹한 일이다. 한 번 배신자로 찍히면 그걸 떼어내기 어렵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그런 경향이 강한데 만약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이런 게 붙기 전에 미리 명분을 쌓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한 대표가 요구한 의제들은 국민 상식 선에서 다 맞는 말들이다. 배신자 덫을 놔도 걸릴 수 없지 않겠나.”
배신자 프레임이 정치권에서 효과를 크게 발휘했던 때가 2015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전 의원의 이마에 ‘배신자’란 주홍글씨를 붙였다. 다만 그때와 지금은 환경이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배신의 정치 응징론’을 꺼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5년 6월 마지막 주 박 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3%였다. 특히 핵심 지지층이 많은 대구·경북(TK)에서는 긍정(47%)이 부정(45%)보다 높았다. 지지층을 등에 업은 박 전 대통령은 유 전 의원을 원내대표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유 전 의원 편에 함께 서 있던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우리가 어쩌다 이래 됐노”라며 ‘원내대표직 사퇴 총의’를 담은 의원총회 결론을 그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반면 지난 10월 3주 차 한국갤럽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2%에 그쳤다. TK에서 윤 대통령이 잘한다고 보는 비율은 31%에 불과하고 54%는 잘못하고 있다고 본다. 텃밭에서의 결속력도 약해졌고 낙인을 찍더라도 그 효과는 미지수다.
같은 탄핵 걱정, 다른 해법
한 대표를 공격하는 측은 탄핵으로 갈 가능성을 언급하며 탄핵 트라우마를 전면에 내세운다. 반면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탄핵 트라우마 때문에 한 대표는 김건희 선에서 끊으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탄핵이 진행되면 윤 대통령도 한 대표도 모두 정치적으로 망한다. 지금 보면 공격과 비판의 칼날 중 대통령을 향한 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영부인을 향해 있다. 보수 진영에서 탄핵을 걱정하지만 나오는 이야기들은 영부인의 개입을 문제 삼는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지금 의혹을 끊어내는 게 한 대표 입장에서는 탄핵 가능성을 막는 거라고 보는 것 같다. 친윤계나 대통령 지지자들과 목적은 같지만 방법이 다르다. 대통령과 그 주변이 지금 같은 자세를 고수할수록 한 대표가 명분만 축적하는 모양이 되니 보수 내부에서 권력 투쟁은 앞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내전 양상으로 보수 정당의 미래는 안갯속에 던져졌다. 보수는 내전에 덜 익숙하다. 계파연합의 성격이 컸던 민주당계 계열은 치열하게 싸우고 갈라선 뒤 다시 만나 합하길 반복했던 역사가 있다. 반대로 보수 정당은 그런 흐름이 드물다. 그나마 가장 두드러졌을 때가 박근혜 정부 탄핵 이후에 벌어진 분당이다. 그리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꽤 닮았다.
당시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유승민 전 의원의 자리는 친박 원유철 전 의원의 몫이 됐다. 청와대는 껄끄러웠던 김무성 당시 대표를 패싱하고 원 전 의원과 소통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벌어진 2016년 총선에서 야당에 패했다. 그 뒤 김무성 대표가 물러나고 이정현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문고리 권력 이야기가 등장하고 최서원(최순실)의 국정농단 문제가 불거지면서 야권의 집중 공격을 받았고 보수 정당은 최악의 정치적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정치적 장면 하나하나가 현재와 비교했을 때 낯설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보수 내전의 데자뷔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이지만, 용산의 강경한 입장을 봤을 때 그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