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철원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선거 여론조사는 민심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차원을 넘어 정당의 후보자 공천, 정당 간 후보 단일화, 정치인 인지도 올리기 등 광범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은 여론조사에 사활을 건다. 공표 여론조사의 경우 선두 후보에게 지지가 쏠리는 ‘밴드왜건(bandwagon) 효과’까지 발생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여론조사가 정치적 결정이나 선거 판세의 주요 변수가 되면서 정치 브로커들이 여론조사를 조작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는 것”이라며 “여론조사라는 꼬리가 선거라는 몸통을 흔드는 꼴”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여심위 심사를 통과한 합법 여론조사지만 이를 통한 ‘밴드왜건 효과’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한 사례로 김어준씨를 꼽는다. ‘여론조사꽃’ 이라는 여론조사 업체를 운영하는 김씨는 지난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를 엿새 앞두고 구독자 100만명이 넘는 자기 유튜브 채널에 민주당 김경지 후보를 출연시켰다. 김어준씨는 해당 방송에서 “여론조사꽃이 지난주(9월 30일~10월 1일) 여론조사를 해봤는데 (김 후보가) 6.5%포인트 차이로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박빙이라 본다”고 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향후 표심에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후보들은 이런 김씨의 영향력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이 방송 이튿날 여론조사꽃은 ‘민주당 김경지 후보 40.9%, 국민의힘 윤일현 후보 37.7%’로 김 후보가 윤 후보를 오차 범위 안에서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또 발표했다. 그런데 닷새 뒤 치러진 선거 결과는 윤 후보의 22%포인트 득표율 차 승리였다. 여론조사 업계 관계자는 “정치에 관심 있는 여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은 여론조사꽃이 김어준씨가 만든 회사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 회사 조사 전화엔 응하지 않아 결과에 편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당 내부 후보자 결정 과정에서 활용되는 여론조사가 과학적 측면에서 불완전하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을 여론조사 방식으로 치렀다. 그런데 지난 3월 서울 중·성동을 지역구 일반 국민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1001명 가운데 50대 이상이 857명으로 85.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선에서 패한 하태경 후보는 “특정 연령층이 과(過)표집됐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여론조사 경선 기간(통상 이틀)에 당원과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조사를 다 끝내야 하니 연령대별 비율을 맞출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천 시즌에 후보들이 지지자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여론조사 전화 응답을 독려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