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금투세 시행팀과 유예팀으로 나눠 토론하고 있다. photo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지난 10월 30일 언론에서 “민주당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을 전제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이내 들썩였다. 여의도 국회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민주당 의원실은 항의 전화를 응대해야 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민주당원이라는 한 남성은 ‘정권 교체 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라며 전화를 탁 끊어버리더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지난 10월 4일 금투세 시행과 유예를 두고 의원총회를 연 뒤 내린 결론은 이재명 대표 등 당 지도부에 결정을 위임하는 것이었다. 지도부 내에서는 차기 대선 이후까지 금투세 도입을 유예하는 방안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의총에서 나선 유예 측 의원들은 “최소 3~4년 뒤로 미루자”는 뜻을 내비쳤다. 2027년 대선 이후를 의미했다. 대선 이후라는 시점을 특정한 건 차기 대선 유력 후보인 이 대표가 이 문제를 언급하는 걸 피했으면 하는 뜻이 담겼다.

의총이 열리고 한 달 정도가 흘렀지만 이 대표는 금투세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언론을 통해 유예 혹은 폐지를 두고 고민한다는 전망이 나올 뿐이다. 그새 정치권에서는 금투세에 대한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여당은 ‘폐지’를, 조국혁신당 등 야권에서는 ‘시행’을 압박했다. 그러는 새 갑자기 금투세 관련 법안의 발의 소식이 뜬 것이다. 여기에는 ‘폐지’를 주장하던 친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이 발의자에 이름을 올린 게 주목받았다. 앞선 의원실 관계자는 “금투세 시행파 의원들이 모여서 발의한 게 아니다. 시행을 찬성하는 의원도 있지만 이대로 놔두기보다 기재위(기획재정위원회)에 올려 여당과 제대로 논의해봐야 하지 않냐는 뜻에서 이름을 올린 의원들도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 원칙 사이에 미세 조정 필요”

이 대표의 침묵은 여러모로 해석된다. 다만 오래 끌수록 민주당의 내상(內傷)이 크다는 점에 대해선 내외부의 의견이 일치한다. 금투세는 당초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여당이 발을 빼면서 민주당 홀로 고민해야 할 문제가 돼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묻는 문제로 변모했다. 민주당의 강령은 ‘조세정의 구현’을 못박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금투세가 정의와 실용의 충돌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 금투세 문제는 이 대표 본인의 재판 문제나 김건희·채상병 특검과 같은 큰 문제와 비교하면 작은 전략·전술 차원이었는데 이게 민주당의 정체성과 연관이 되면서 큰 문제가 돼버렸다. 이 대표가 안정적이고 실용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한 것일 수도, 아니면 우선순위에 따라 뒤로 미룬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타이밍은 놓쳤다. 작은 결심으로 해결될 문제가 큰 결단을 요구하게 됐다.”

이 대표는 자신을 ‘보수적 실용주의자’로 규정한다. 금투세 문제도 실용적으로 대처하고 공개적으로 ‘유예’를 언급했다면 잠깐 논란은 있었겠지만 그걸로 마무리될 문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금투세 유예 측과 찬성 측은 ‘조세정의’와 ‘표심’이라는 이상과 현실에서 서로 대척점에 서버렸다. 민주당의 정신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혹시나 모를 주식투자자들의 적대적 반발을 우려해야 할지를 두고 전선이 갈렸다.

민주당은 줄곧 과세의 형평성을 주장해왔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민주당의 오랜 원칙이다. 금투세 시행에 여야가 합의한 건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이다. 이 때문에 금투세는 문재인 정부의 유산으로 평가받았다. 원래는 2023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는데 일반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주식시장 침체가 우려되자 이를 2025년 1월 시행하는 것으로 2년간 유예했다.

당내에서는 금투세를 종합부동산세(종부세)처럼 보는 시선도 있다. 다가올 대선의 향방을 가를 서울과 수도권에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 자산 형성의 욕망을 건드린다는 것, 입법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수당의 책임으로 돌아올 공산이 크다는 것 등이 닮은 점으로 꼽힌다.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공시가격 6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부과됐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다주택자 중과율을 높이는 등 종부세를 강화했다. 반면 이재명 지도부에서는 금투세뿐만 아니라 종부세의 불합리한 부분을 수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 대표 스스로가 이미 종부세 완화와 금투세 유예를 시사한 바 있다. 주택 자산 등이 과거와 달라졌고 자산불평등의 양상도 변했으니 세제(稅制)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다. 다만 ‘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유산을 정면으로 건드려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 세금 정책의 조정을 넘어서는 과제가 돼버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마포갑 패배를 주목했다.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 앞섰지만 개표 결과가 뒤집혔던 지역이다. 당시 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이 지역에서 종부세를 둘러싼 숨은 표심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 때문에 이익 투표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혔다. 한 친명계 인사는 “종부세로 강남을 때린다고 강남 밖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게 아니다. 금투세 등 세금 문제를 두고 민주당이 우클릭했다고 이야기하는데, 바뀐 현실에 대한 반영과 정치적 원칙 사이에서 미세 조정이 필요하니 이 대표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권·시민 사회는 반발, 지지층은 ‘유예’

‘이재명 일극체제’라는 평가도 내심 부담으로 작동하는 모양새다. 금투세의 당내 의견을 모으기 위해 토론회도 갖고 의총도 열었지만 ‘당내 다양한 의견 수렴’이라는 당초 목적보다 금투세 찬성 의견이 적지 않다는 점만을 여실히 드러냈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금투세 시행 의견이 적지 않다. 당내 주요 의견그룹 중 하나인 ‘더좋은미래’가 대표적이다. 더좋은미래는 지난 7월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 모임의 대표인 김성환 의원은 이번 소득세법 개정법률안 발의자 중 한 명으로 금투세 시행을 강하게 주장해 온 인물이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등 야권과 시민사회도 설득의 대상인데, 현재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조국혁신당은 금투세법 개정안을 당론 발의하며 “(금투세) 유예는 민주당의 자책골이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지난 9월 진보당은 경제정의실천연합·참여연대 등과 함께 “금투세 폐지·유예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예정대로 금투세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반발하는 이들은 그간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의 전통적인 연합군이었다.

반면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0월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금투세 유예’는 27%, ‘금투세 폐지’는 29%로 나타났다. ‘금투세 시행’은 23%였다. 진보층에서도 유예(36%)가 시행(26%)보다 높았고 중도층에서는 폐지(30%) 의견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원칙과 효율성 사이에서 이 대표가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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