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가 지난해 2월 4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민생파탄-검사독재 규탄 국민보고대회’에서 윤 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11월 첫 주말부터 장외집회를 예고한 더불어민주당은 집회를 이틀 앞두고 ‘명태균 녹취’를 직접 꺼내들었다. 지난 10월 31일 당 원내대표단이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것은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명태균씨와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 여기서 윤 대통령은 명씨에게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것은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라고 말한다. 이 발언 뒤엔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명씨의 말이 이어졌다.

이 녹취에 대해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석열·명태균 대화) 다음 날인 5월 10일 국민의힘은 실제로 김영선 전 의원을 공천한다”며 “이는 윤 대통령이 불법으로 공천에 개입했고 공천 거래가 있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자 헌정 질서를 흔드는 위중한 사안임을 입증하는 물증”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 증거”

이 녹취록은 그간 논란이 되어온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입장이다. 그간 여러 언론을 통해 공개된 명씨의 통화 파일에는 명씨가 김건희 여사한테 부탁해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따냈다는 정황들이 담겨 있다. 민주당이 이날 공개한 또 다른 녹취에는 “지 마누라가 옆에서 ‘오빠 명 선생 처리 안 했어? 명 선생 이렇게 아침에 놀라서 전화오게끔 만든 게 오빠 대통령으로 자격 있는 거야?’(라고 하니까) 나는 했다고 마누라한테 얘기하는 거야”라는 명씨의 말도 나온다. 대통령실은 녹취 내용에 대해 “당시 윤 당선인은 명씨가 김영선 후보 공천을 계속 이야기하니까 그저 좋게 이야기한 것”이라며 “당시 윤 당선인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공천 관련 보고를 받은 적도 없고, 또 공천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민주당이 윤 대통령 음성이 담긴 통화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11월 2일 시작될 민주당 거리투쟁의 ‘수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70석의 제1 야당이 다시 거리투쟁을 예고한 표면적 이유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이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집중 공격한 여세를 몰아 장외투쟁을 통해 여론의 지지를 늘린 뒤 12월 본회의에서 ‘김건희 특검법’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그동안 역풍을 우려해 ‘탄핵’과는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모양새를 취해왔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0월 5일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면 혼을 내 선거에서 바꾸고, 선거를 기다릴 정도가 못될 만큼 심각하다면 도중에라도 끌어내리는 게 민주주의고 대의정치”라는 발언을 했다가 “자신의 방탄을 위해 윤 대통령 탄핵 몰이에 나선 것”이라는 여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나는 탄핵 얘기를 한 적 없다”며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월 26일 서울 서초역 인근에서 열린 조국혁신당의 ‘검찰해체·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언대회’ 집회에서 조국 대표(왼쪽)와 황운하 원내대표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photo 뉴시스

“장외집회 의제에 ‘尹 규탄’ 추가될 것”

하지만 민주당 내부의 이런 ‘탄핵 거리두기’ 분위기는 이제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음성까지 공개한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을 넘어 ‘탄핵’까지 바로 쏘아 올릴 가능이 커졌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전직 최고위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현직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한 명확한 정황으로 보인다. 현행법을 어긴 건 부정할 수 없는 팩트”라며 “장외집회에서 ‘김건희 국정농단 규탄’에 ‘윤석열 대통령 규탄’이라는 의제가 추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당장 민주당 지도부는 ‘거리투쟁’ 불가피론을 펴면서 이번 장외집회에 화력을 집중하는 양상이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0월 28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과거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늘 ‘원내와 장외 투쟁을 적절하게 국민과 함께 병행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이 그런 시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소 금기시해온 ‘탄핵’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횟수도 늘고 있다. 송순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0월 18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10%대로 추락했다. 국민은 이미 심리적으로 윤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라며 “지금 윤 대통령의 유일한 선택지는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하야”라고 말했다. 주철현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난 10월 28일 “대통령 임기가 아직 절반 이상 남았지만 많은 국민께서 윤 대통령이 언제 그만두냐고 물어본다”며 “우리 국민은 이미 윤 대통령을 사실상 탄핵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김민석 최고위원도 “윤석열 정권이 ‘말기 호스피스’ 상태에 들어갔다”며 “권력의 모든 불법 행위와 불법 지시에 대한 엄격한 점검과 ‘시민 불복종’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시민 불복종’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 당시 야권이 내세운 구호다.

‘시민 불복종’을 언급한 김민석 최고위원은 ‘김건희심판본부장’으로서 김건희 특검법 관철을 위한 ‘천만인서명운동’도 진행할 예정이다. 그가 장외투쟁 과정에서 주도하는 천만인서명운동이 자연스레 탄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말도 민주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앞서의 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처음부터 민주당이 탄핵 깃발을 들기보다는 천만인서명운동에 많은 국민들이 동참하면서 점점 탄핵 흐름으로 가지 않을까. (대통령 공천 개입 등) 현행법 위반 사례까지 나왔기 때문에 법적으로 탄핵을 추진해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주류 입장에서는 지난 6월 ‘채상병 특검법 촉구’ 이후 4개월 만에 재개하는 거리투쟁이 여러모로 유효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집회에는 민주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 전원이 참여할 예정이며 전국 지역 당원들에게도 참여를 독려 중이다. 이런 당력 집중과 동원이 ‘사법리스크’ 현실화에 전전긍긍하는 이재명 대표와 주류 측으로서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월 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과 관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이 장외집회로 테스트하려는 것

사실 이재명 대표에게 11월은 위기의 달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15일)과 위증교사 사건(25일)에 대한 1심 판결이 열리기 때문이다. 만약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거나 위증교사 혐의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으면 이 대표는 차기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내부에선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이번 장외집회를 통해 ‘시험해 볼 게 많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재판 결과가 유죄일 때 이 대표를 비호할 수 있는 세력이 얼마나 되는지가 각 지역위원회에서 동원한 사람들의 규모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이 대표의 대북송금 사건 재판부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민주당은 내심 긴장할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이 윤석열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우리 당을 이렇게 지지하는데도 이 대표에게 유죄를 때릴 것이냐, 이런 의도도 장외집회에 숨어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선 전직 최고위원도 “이재명 대표에 대한 ‘여론재판’은 민주당을 더 똘똘 뭉치게 만드는 명분이 된다”며 “장외집회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설명했다. “1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장외투쟁에 돌입해야 여론재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 대표가 무죄가 나오면 ‘부당한 검찰 뒤에 윤석열·김건희가 있다’며 집회 참여자가 늘어날 것이다. 유죄가 나온다면? ‘죽일 놈의 검찰 뒤에 윤석열·김건희가 있다’가 된다. 이 대표 혼자서 말하는 것보다 민심의 파도를 만드는 게 유리하지 않겠나.”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이런 관측을 했다. “이번 장외집회는 이재명 대표로선 자신에 대한 측근들의 성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대여 투쟁 구호를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장외집회에서 탄핵 구호가 실제로 소구력이 있는지 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명태균’을 업고 거리로 나오는 민주당이 탄핵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민주당이 ‘탄핵 간보기’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대통령 지지율 20%’라는 현실이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국민 여론이 반반이면 야당도 장외로 나가기 쉽지 않다. 그런데 여론조사상으로 대통령 부정 평가가 70%다”라면서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김건희 리스크를 깨끗하게 털고 가라는 건데 그런 국민의 요구를 야당이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앞선 의원이 언급한 ‘부정 평가 70%’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지난 10월 25일 발표한 자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율은 직전 조사(10월 15〜17일)보다 2%포인트 내린 20%였고 부정 평가율은 직전 조사 대비 1%포인트 오른 70%였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김건희 여사 문제’라고 답한 비율(15%)이 가장 높았고 ‘경제·민생·물가’(14%)와 ‘소통 미흡’(1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장외투쟁과 함께 원내에서 ‘김건희 특검법’ 통과를 압박할 계획이다. 11월 14일에는 김건희 특검법을 본회의에 상정할 방침인데,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특검법에는 김 여사가 명태균씨를 통해 지난 경선·대선 과정에서 불법 여론조사 등 부정선거를 했다는 의혹이 수사 대상에 추가됐다. 14일 본회의에선 대통령 또는 대통령 친인척이 수사 대상인 경우 여당의 특검후보 추천권을 배제하는 내용의 ‘상설 특검 일부 규칙 개정안’ 처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김건희 특검법 통과 여부와 관련해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지난 10월 4일 김건희 특검법 표결에서 4명의 이탈표가 발생했다. 여기서 4명만 더 이탈하면 통과된다. 여권 내의 갈등이 심하기 때문에 (민주당 주도 장외집회에) 엄청난 인파가 모여서 (이탈에 대한) 명분을 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으로서는 다른 야권의 행보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은 탄핵 공세에 보다 적극적이다. 조국혁신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시작일인 10월 26일에 맞춰 탄핵 집회를 열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 선 조국 대표는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합법적 절차에 따라 윤석열·김건희를 모두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당은 매달 탄핵 집회를 열고 조만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초안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민주당이 빼든 ‘탄핵 거리투쟁’은 양날의 검이다. 거리투쟁의 궁극적 목표가 ‘이재명 방탄’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판결에 따라 거리투쟁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형이 나오면 민주당의 ‘탄핵 대오’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치권에선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의 ‘원외 잠룡’들이 비명(비이재명)계 결집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도 돈다. 반면 당내에선 지금의 ‘이재명 일극체제’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관측도 여전하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올린 이 대표의 득표율(85.4%)을 무시할 수 없고 원내 비명계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이유에서다.

국힘은 ‘방탄용 장외집회’ 맞불 방침

장외로 나서는 민주당을 향해 여권은 예상대로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공격을 퍼붓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용 장외집회 대응 TF’도 가동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당 소속 의원들, 또는 당원을 동원한 장외집회로 맞불을 놓는 방식도검토하고 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한 관계자는 “김건희 여사 문제 해결책과 민주당의 장외집회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민주당이 ‘명태균 게이트’를 고리로 대통령실을 정조준하는데 가만 있을 수는 없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가장 먼저 탄핵에 앞장섰던 민주당 정치인이다. 2016년 경기 성남시장 재임 시절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해 박 전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앞장서 주장했고, 그 과정을 통해 당내 비주류에서 대권 주자로 체급을 높일 수 있었다. 이런 ‘탄핵에 대한 추억’이 이재명 대표를 다시 추동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민주당 일각에서는 ‘그때와 지금은 다를 수 있다’는 분위기도 읽힌다. 한 비명계 인사는 “이번에는 2016년도와 같은 바람을 일으키기 어려울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을 탄핵시켰을 때 대안이 이 대표일 텐데 이에 대한 회의감도 크지 않나”라며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최후의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며 일거에 광장에 모였다. 이번에는 정권 초기부터 일부 진보 세력을 중심으로 탄핵 이야기가 나와 국민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표에게 탄핵은 결국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형준 교수는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선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다가 헌법재판소에서부터 기각되는 시나리오는 민주당을 뿌리째 흔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탄핵을 추진하기 위한 명확한 요건과 절차가 있는데 장외집회는 실질적인 절차가 아닌 일종의 공세”라며 “대통령 지지율이 아무리 낮아도 지지율로 탄핵을 할 수는 없으며 여론 탄핵이 헌법의 우위에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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