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보좌관 강혜경씨(가운데). 민주당은 강씨를 ‘공익제보자 보호 1호’로 지정했다. photo 뉴시스

경남을 주무대로 선거컨설팅 등을 해온 명태균씨가 2022년 3·9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을 위해 81차례에 걸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정조준하고 있다. 명태균씨가 실제 운영자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81건을 전수조사해 여론조작 사실이 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기로 하면서다. 현재 폐간된 인터넷언론 ‘시사경남’을 발행한 미래한국연구소는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앞서 명씨의 최측근으로 미래한국연구소 부소장(전 시사경남 편집국장)이자 김영선 전 의원의 4급 보좌관(회계책임자)을 지낸 강혜경씨는 지난 10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명씨가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당시 후보(현 대통령)를 위해 81회의 여론조사를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조사비용이 총 3억7520만원이고, 이에 대한 대가로 명씨가 밀던 김영선 전 의원이 2022년 6월 치러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 공천장을 받았다는 것이 강씨 측 주장이다. 민주당은 지난 10월 31일 “김영선이 경선 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거(공천)는 김영선이를 좀 해줘라”라는 윤 대통령의 육성도 공개했다.

당초 창원 의창의 지역구 의원이던 박완수 현 경남지사가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경남지사에 출마하면서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창원 의창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김영선 전 의원이 국민의힘 후보로 단수공천 받았다. 창원 의창구는 공장들이 밀집해 민주노총의 세가 강한 창원 성산구와 달리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국민의힘 공천은 곧 당선으로 여겨지는 지역이다. 김 전 의원은 앞서 2020년 총선 때는 창원 진해구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공천신청을 했다가 ‘컷오프’된 바 있다.

여기에 “윤석열이를 좀 올려가지고. 젊은 아이들 있다 아닙니까. 응답하는 그 계수 올려가지고 2~3% 홍(준표)보다 더 나오게 해야 됩니다”라는 명씨의 육성마저 공개되면서 지난 3·9대선을 앞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명씨 측이 여론조사 결과를 윤석열 당시 후보 측에 유리하게 조작했다는 혐의는 짙어진 상태다. 이 같은 폭로에 사건당사자인 명태균씨 측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론조사를 조작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입장이다.

미래한국연구소의 실제 운영자로 알려진 명태균씨(오른쪽 둘째)와 미래한국연구소 부소장을 지낸 강혜경씨(셋째). photo 명태균씨 페이스북

선거법 공소시효 단순폭행보다 짧아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당시 여론조사에 부정이 있었다고 해도 공직선거법상의 허점으로 인해 명씨에게 공직선거법을 적용한 사법처리까지는 힘들 것이란 의견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온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여론조사’와 관련한 규정(제8조)을 상세히 두고 있지만, 같은 법 제268조(공소시효)는 ‘이 법에 규정한 죄의 공소시효는 당해 선거일 후 6개월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한다’고 정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홍준표 현 대구시장을 제치고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은 2021년 11월 5일이다. 이미 공소시효가 한참이나 지난 상황이다. ‘6개월’이란 공직선거법상 지나치게 짧은 공소시효 규정 때문에 대통령을 선출하는 여론조사에 설혹 부정의 소지가 개입했더라도 사법의 칼날이 미치지 못하는 셈. ‘다만 범인이 도피한 때나 범인이 공범 또는 범죄의 증명에 필요한 참고인을 도피시킨 때에는 그 기간은 3년으로 한다’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명씨나 강씨 모두 직접적 관련은 없다.

역시 같은 조의 제3항 역시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지위를 이용하여 범한 이 법에 규정된 죄의 공소시효는 해당 선거일 후 10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 역시 이번 사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미래한국연구소의 실제 운영자로 알려진 명태균씨나 부소장 강혜경씨는 모두 당시 공무원이 아닌 사인(私人) 신분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직선거법상의 공소시효를 ‘6개월’로 짧게 설정한 것은 선거사범을 신속하게 처리해 당선자의 법적인 신분을 조기에 안정화하기 위한 취지다. 법무법인 SH의 임성욱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6개월인 이유는 선출직 임기 때문”이라며 “공소도 빨리 하고, 재판도 빨리 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6개월)가 단순 폭행죄의 공소시효인 ‘5년’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짧고, 선거가 끝난 뒤 6개월 후 범죄가 적발되면 처벌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돼 왔다. 자연히 지난 대선 때 여론조작 의혹을 살피는 것과 별개로, 공직선거법상 지나치게 짧은 공소시효 규정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공직선거법상 대부분 공소시효는 국외선거범에 대한 공소시효만 ‘5년’으로 되어 있을 뿐, 대부분 ‘6개월’로 묶여 있는 실정이다. 쉽게 말해서 당선을 목적으로 여론조작 등 명백한 불법을 저질러도 6개월 동안만 걸리지 않으면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은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늘어나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했다.

여론조사 조작 여부를 규명하는 핵심 자료가 되는 ‘원자료’ 역시 공직선거법상의 또 다른 ‘6개월’ 조항으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공직선거법 제108조는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기관·단체는 조사설계서·피조사자선정·표본추출·질문지작성·결과분석 등 조사의 신뢰성과 객관성의 입증에 필요한 자료와 수집된 설문지 및 결과분석자료 등 해당 여론조사와 관련 있는 자료 일체를 해당 선거의 선거일 후 6개월까지 보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여론조사 업체가 원자료를 자체적으로 폐기해도 법적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여론조사와 관련 있는 자료 일체를 해당 선거의 선거일 후 6개월까지 보관하지 아니한 자’의 경우 공직선거법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선거일로부터 6개월이 이미 넘어간 현재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명태균에 공직선거법 적용 어려워”

현재 여론조사에 부정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명씨 측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은 공직선거법이 아닌 정치자금법 정도다. 이때도 명씨가 여론조사를 자발적으로 실시해서 윤석열 당시 후보 측에 제공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2018년 경남지사 선거를 앞두고 명씨 측 요청으로 창원 마산회원구의 명씨 사무실에 초빙됐던 한 선거관계자는 “명씨는 먼저 여론조사를 해서 그 결과를 갖고 후보 측에 접근하는 스타일”이라며 “명씨는 경남에서 행정수요 조사나 복지수요 조사도 많이 했는데 경남의 시장과 군수들이 명씨를 모른다고 하면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김영선 전 의원에 따르면 2018년 경남지사 선거는 김 전 의원과 명태균씨가 처음 인연을 맺은 선거다. 당시 김 전 의원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 공천을 신청했다가 안홍준 전 의원과 함께 ‘컷오프’됐다. 당시 당에서 재선 경남지사를 지내 인지도가 높은 김태호 현 의원을 전략공천하면서다. 하지만 선거 결과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의혹을 받던 민주당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김태호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민주당계 최초의 경남지사로 당선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에 올랐던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었다.

김영선, 회계장부 열람에 어려움

공직선거법과 마찬가지로 정치자금법 역시 주요 조항이 ‘6개월’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정치자금을 규명하는 데 핵심열쇠인 회계장부 열람기간을 공고 후 ‘6개월’로 제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역설적으로 사건당사자인 김영선 전 의원 측도 정치자금법상의 ‘6개월’ 조항으로 인해 202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부터 회계책임을 맡은 강혜경씨의 연이은 폭로에 속수무책인 것으로 알려진다. 강혜경씨는 자신의 상사였던 김영선 전 의원, 명태균씨와 각각 나눈 통화를 녹음한 녹취록을 근거로 연일 의혹을 제기하고, 야당인 민주당은 강씨를 ‘공익제보자’로 감싸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0월 15일 당 차원의 ‘공익제보자 권익보호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강씨를 ‘공익제보 보호 1호’로 선정했다. 민주당은 미래한국연구소의 등기상 대표로 알려진 김태열 전 소장(전 시사경남 발행인 겸 보도국장)도 ‘공익제보 보호 2호’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김태열 전 소장은 김영선 전 의원과 같은 선산 김씨 동향(경남 거창)의 7촌 아저씨뻘로 과거 김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강씨는 2022년 6월 보궐선거 및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국회의원 재직 시 회계내역이 담긴 회계장부 원본을 인계해 달라는 김영선 전 의원 측의 거듭된 요청도 계속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자금법 제44조는 ‘회계책임자는 제40조(회계보고)의 규정에 의하여 회계보고를 마친 후 지체 없이 선임권자에게 이 법의 규정에 의한 당비영수증원부, 정치자금영수증 원부, 회계장부,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에 관한 명세서, 영수증 그 밖의 증빙서류, 예금통장, 지출결의서 및 구입·지급품의서를 인계하여야 하며, 선임권자는 회계책임자가 회계보고를 마친 날부터 3년간 보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김영선 전 의원 측은 선거를 치른 당사자이면서도 회계장부 원본을 확보하지 못해 검찰 조사 등을 앞두고 법적 대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강씨는 회계장부를 이미 선관위에 넘겼다는 입장이지만, 선관위 측은 김영선 전 의원의 열람요청에 정치자금법상 규정한 ‘열람기간(6개월)’이 이미 끝났다는 이유로 당사자에게도 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김영선 전 의원 측은 지난 9월에는 회계장부 확보를 위해 강씨의 남편이 일하는 경남 김해의 한 우체국을 찾아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역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명씨를 윤 대통령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에게 소개시키며 ‘전국구’로 데뷔시킨 김영선 전 의원이 명태균·강혜경씨와 달리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김영선 전 의원 측의 한 관계자는 “강혜경씨를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이미 고소했고 선관위 관계자로부터 회계책임자가 약 300여건의 증거서류를 누락하는 등의 규정위반도 확인했다”며 “고소한 직후 강씨가 마치 공익제보자처럼 행세하고 있는데 조만간 입장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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