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별세한 고(故) 장기표 선생이 세상을 뜨기 20여일 전 병상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친분이 있던 장 선생은 도쿄에서 연수 중인 기자에게 굳이 전화를 걸어와 통일에 대한 평소 지론을 다시 강조했다. 아마도 마지막 인터뷰였을 그와의 통화 내용을 뒤늦게 공개하는 것은 통일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서다.
장 선생은 통화에서 “통일은 국가의 당면 과제”라며 “북한에 ‘남풍(南風)’이 불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한에서 통일 드라이브를 강하게 추진하면 북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장 선생은 “북한 젊은이들이 남한 머리 스타일을 따라해 규제하는 법을 만들 정도”라며 “남한에 대한 동경심으로 체제 유지가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민족통일을 당면한 중요 과제로 내세운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정부 관계자에게 남북 정세가 통일을 이룰 좋은 기회이니 8·15 경축사의 통일방침을 일회용 경축사로 쓰지 말라고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통일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시절 기회를 놓친 것이 지금도 아쉽다고 했다. “진보정권이 통일을 추진한다고 하면 빨갱이 소리를 들으니, 보수정권에서 추진하면 그래도 덜 욕먹을 것으로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굉장히 가까웠다. 박 대통령이 미국을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9월 3일 전승절 베이징 기념식에 참석했다. 중국은 절대 통일 한반도를 인정하지 않는데, 행사 끝나고 시진핑이 박근혜에게 ‘한반도 통일을 위해 단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언했다.” 장 선생은 그때가 우리한테는 “엄청난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후 여론 동향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그는 “보수는 통일하려면 미국과 협력해야지 무슨 놈의 중국이냐고 두들겨 패고, 진보는 북한과 친해야지 중국과 왜 친하냐고 또 두들겨 팼다”고 아쉬워했다.
장 선생은 ‘김정남 망명정부’ 추진 비화도 공개했다. 그는 김정남이 생전에 일본 도쿄신문 고미요지 기자와 가졌던 인터뷰를 읽고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는데도 불만을 절제된 표현으로 밝히는 모습을 보고 김정남의 정치적 식견이 뛰어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후 “김정남을 내세워 ‘망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 박근혜 정부 고위 인사를 만나 실행 방안을 타진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실세 장성택이 중국을 등에 업고 김정남을 내세워 정권을 잡는 계획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는데 김정은이 장성택, 김정남을 제거한 것은 이러한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정남 망명정부’를 통일 방안으로 생각한 장 선생은 2012년 김정남 인터뷰 발간 직후 고미요지 기자와도 도쿄에서 만났다. 당시 만남을 주선했던 한국인 Y씨는 지난 9월 도쿄에서 기자와 만나 “내가 장 선생과 고미요지의 만남을 주선했다”며 “나 역시 고미요지에게 백두혈통 김정남의 역할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했다”고 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장 선생은 ‘통일이 희망’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대중에게도 알려지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통화 당시 그의 건강 상태는 3달 정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서울로 돌아가 그와의 본격적인 인터뷰도 계획했으나 9월 22일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장 선생은 기자와의 통화 직후 고미요지 기자와도 통화를 하면서 평소 자신과 나눴던 얘기들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