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7일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을 4일 오후 10시쯤 기자단에 공지했다. 대통령 기자회견을 이처럼 심야에 임박해서 알리는 것은 전례가 많지 않은 일이다. 당초 대통령실은 이날 낮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이 이달 중순 해외 순방 이후 여권의 쇄신 요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었는데, 수시간 만에 기류가 바뀌었다. 대통령실은 “이왕이면 순방 전 국민에게 말씀드리는 기회를 갖는 게 좋겠다는 참모진의 의견을 (윤 대통령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10일)을 앞두고 열리는 이번 기자회견은 취임 후 4번째다.
여권에서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비롯해 여당 소속 시·도지사, 상임고문 등 원로, 중진 의원들, 친윤들까지 잇달아 윤 대통령을 향한 쇄신을 요구하자, 윤 대통령이 회견 시점을 앞당긴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리스크 해소 방안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의혹에 대해 직접 설명하지 않은 채 더 시간을 흘려보내면 여론이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 리스크 해법을 제시하고, 명태균씨와 관련한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탄핵 공세와 임기 단축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힐 전망이다. 여권 관계자는 “일문일답을 받겠다고 공지한 것 자체가 ‘윤 대통령이 어느 현안에 대해서건 피하지 않고 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이날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에 대한 쇄신 요구가 쏟아졌다. 한동훈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정치 브로커와 소통한 녹음과 문자가 공개된 것은 그 자체로 국민들께 대단히 죄송스러운 일”이라며 “국민들이 걱정하는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이 솔직하고 소상하게 밝히고 사과를 비롯한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한 대표는 그러면서 ‘대통령실 참모진 전면 개편’ ‘과감한 쇄신 개각’ ‘김건희 여사 대외 활동 중단’ ‘국정 기조 전환’ ‘명씨 관련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 등을 요구했다.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 통화 녹음이 공개된 지 나흘 만에 이 사안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한 대표가 이날 공개적으로 윤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한 데 대해 친한계 인사는 “현 정국이 여권에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고 판단한 결과”라고 했다. 한 대표는 이날 “민심이 매섭게 돌아서고 있다. 독단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졌다는 점을 아프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정 기조 전환이 반드시 더 늦지 않게 필요하다”고도 했다.
전날 국민의힘 소속 시·도지사협의회가 성명을 내고 상임고문단이 비공개 회동을 한 데 이어 이날은 국민의힘 3선 의원들이 추경호 원내대표와 간담회를 하고 “당과 대통령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3선의 김성원 의원은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상황을 돌파하려면 용산과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며 “분열하지 않고 단합해 갈 수 있는 그런 방안이 최선이 아닌가 하는 말씀”이라고 했다. 대통령을 향한 쇄신 요구와 함께, 한 대표를 향해서도 여권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대통령실과의 소통에 나서라고 요구한 것이다.
한 대표는 이날 야당을 겨냥한 비판 수위도 높였다. 지난 주말 민주당이 대(對)정부 규탄 장외 집회를 열고 민주당 일각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논의하는 것과 관련해 “범죄 혐의자인 이재명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 헌정(憲政)을 중단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어떤 이름을 붙인 헌정 중단이든 국민과 함께 국민의힘이 막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을 향한 쇄신 요구는 ‘배신’이 아니라 야당의 탄핵 공세를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임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