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월 1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열린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에게 현실화된 이재명 사법리스크와 당의 앞날에 대한 의견을 묻자 무척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징역형 선고 이후 격렬한 분노가 몰아친 당내 분위기를 의식하는 태도였다. 당의 분노 지수는 최민희 의원의 격렬한 언사가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 의원은 “(비명계가)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들과 함께 죽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내부에서도 ‘극언’이라며 놀라움을 표할 정도였다. 이런 과격함 속에서 일종의 내부 단속과 검열이 시작된 분위기가 감돌자 이 대표에 관한, 민주당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이 쉽게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앞선 당직자도 그런 경우다.

이 당직자는 ‘익명이어야 한다’며 이 대표 사법리스크 현실화 이후의 민주당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풀었다. “나는 오히려 이재명이라는 이름 아래 숨어 있던 좋은 민주당 정치인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의원들 중에서도, 광역이나 기초자치단체장 중에도 있다. 전직 의원들 중에서도 몇몇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되게 조용히 계셨다고 보는데, 이제는 이들을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좀 비추어 줄 필요가 생겼다고 본다. 이 대표 아래서 열심히 하는 분들이라면 모두가 친명계 아닌가. 이 대표가 사라질지 모르니 앞으로 나서야 된다는 게 아니라 원래 민주적 대중정당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이재명의 대안이 없도록 만든 건 우리 당이 자초한 일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당의 기회비용을 언급한다. 그는 “이 대표만 붙들고 있다가 당이 기회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오히려 그는 이 대표가 자신도 살고 당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직접 나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분들도 있으니, 오히려 이 대표가 직접 나서 당 안에 포진한 훌륭한 정치인들의 목소리와 능력을 부각하는 캠페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을 살리는 길과 대표가 살 길의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 민주당은 그러지 않을 정당인 것 같아서 걱정이다.”

이견 허락되지 않는 민주당 내 분위기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맞서 ‘똘똘 뭉쳐야 한다’는 단일대오 결의가 민주당 내 구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도 맞지만 그 속에서도 당의 미래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오간다. 지난 11월 15일 선거법 1심 선고는 사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충격적이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을 재판부가 대부분 다 인정한 것을 근거로 2심 역시 녹록지 않다는 관측이 크게 늘었다. 이 대표가 대선에 나서려면 2심에서 100만원 미만의 벌금형이 선고돼야 하지만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2심 재판부가 크게 감형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예상외로 중형이 선고되자 ‘검찰독재 정권의 야당 지도자 탄압’이라는 프레임이 당 안팎을 뒤덮었다. 여기에 이견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 대표의 선거법 선고 이후 당 전체 분위기는 급하게 변했다. 시기적으로도 다급해졌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선거법에서 ‘6·3·3’ 규정을 강조한다. 선거범 재판 1심은 기소 뒤 6개월 이내, 항소심과 상고심은 각각 3개월 이내에 하도록 했다. 규정대로라면 내년 여름 전에 확정판결이 나올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여론전과 장외투쟁 등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하기로 뜻을 모았다. 제1야당 대표를 향한 정치 탄압 의도가 명백하니 이제 거는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본다. 수권정당이나 중도확장을 위한 신중한 행보는 뒤로 물리는 분위기다.

말의 성찬을 벗어나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는데 세 가지 트랙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임기단축 혹은 탄핵에 대한 논의를 이전보다 활발히 가져가는 분위기다. 선고 다음날인 11월 16일에는 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범야권 의원 30여명이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추진하는 ‘개헌연대’를 만들었다. 통상 토요일은 국회가 한가하지만 이날은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두 번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특검법의 통과다. 특검법은 국민들의 공감도가 높다.

마지막은 장외집회의 확대다. 이 대표 선고의 부당성을 알릴 수 있는 행사에 힘을 주기로 했다. 위기를 공세로 돌파해나가자는 건데, 지난 11월 16일 장외집회에서는 ‘미친 정권’ 등의 표현이 나오는 등 한층 공세를 강화했다. 집회 동원에도 힘을 쏟는다. 국회의원들이나 지역위원장들을 상대로 독려 강도가 세졌다. 한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은 “하긴 해야 하는데 좀 부담스럽긴 하다”고 말했다.

장외집회 참석 의원 숫자 주목해야

민주당 안팎에서 불거져 나오는 ‘3김 3총(김경수·김동연·김두관의 3김, 이낙연·정세균·김부겸의 3총리) 기지개론’은 원천봉쇄 당하고 있다. 이들 역시 당분간 관망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는 인식이 많다. “논의 자체가 너무 이르다”(박지원 의원)며 군불조차 지피지 못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지역위원장은 “그분들이 앞으로의 상황을 버텨낼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지금 기지개를 켠다고 해도 결국에는 경선에서 당원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한다. 지금 이 대표가 저렇게 됐다고 해서 기지개 켜고 활동하면 당내 지지기반도 없는데 버티는 게 가능할 것 같나. 그분들 지지해줄 사람들이 이 당에 많지 않다. 새미래로 가거나 조국혁신당으로 떠났다. 지금 민주당에 남아있는 식구들은 이 대표를 강력하게 지지하거나, 적어도 이재명 체제나 당 지도부가 가려는 길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기조에 동의한 사람들이다. 이 기류를 뒤집으려면 이 대표와 관련한 것들을 비판하며 떠올라야 경쟁력이 있는 건데 그분들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 대표가 두 번의 대표를 지내며 민주당 친정체제는 완전히 구축됐다. 친명 쪽은 이를 ‘당내 질서의 안정화’라고 표현한다. 이 때문에 명(明) 지지 세력에게 선택받지 못하면 리더십이 서지 않는 구조다. 지금 남아있는 강성 친명 지지자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도 비판해 왔다. 과거 친문 인사들에 대해서도 비토 정서가 강하다. 그 정서를 뒤집으면서까지 친문 타이틀을 달아본 적 있는 ‘3김 3총’이 부상하기란 쉽지 않다. ‘3김 3총’보다는 친명 내에서 대안 주자를 찾는 옵션이 부상할 거라는 시각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런 관점에서 비명계의 한 인사는 친명계 측근들 간 힘겨루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봤다. 친명계 내 후계자 다툼이다. “친명을 자처하는 이들이 ‘내가 대통령이 돼서 이재명을 사면시키겠다’며 대권을 노리는 쪽으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다. 사법부가 이재명을 죽였으니 이재명이 못다 이룬 꿈을 내가 이루겠다며 서로 경쟁에 나설 거고 그들 사이 힘겨루기가 강해질지 모른다. 지금도 내부에서 ‘패션 친명’이니 아니니 하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과거 친박들의 ‘진박감별사’와 비슷한 움직임들이 있을 수도 있다.”

비명이든 친명이든 ‘대안’이 이야기되려면 이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그립감이 약해지는 게 필요하다. 11월 들어 시작한 민주당 장외집회는 이 대표의 장악력을 보여준 시험대였다. 이 대표 비호세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각 지역위원회에서 동원한 사람들의 규모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자리로 딱이었다.

이는 장외집회가 거꾸로 약해진 장악력을 파악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두가 이 대표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외치고 있고 지도부의 방침으로 매주 집회에 인력 동원까지 하고 있는데, 이 동원력의 감소가 리더십의 약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선 비명계 인사는 “집회 규모보다 눈여겨봐야 할 건 전체 참여인원이 아닌 의원들의 숫자다”라고 말했다. “의원들이 개인 스케줄까지 변경해 가면서 지금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매주 지역구에서 30~40명씩 이끌고 집회에 참석하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만약 이 대표가 사법리스크 때문에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의원들의 이탈이 가시화될 거다. 장외집회에서 그런 모습이 먼저 나타나게 될 것이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그에게 그런 이탈이 언제쯤 일어날 건지를 묻자 “올해가 가기 전에는 생기지 않겠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야당의 투쟁이 동력을 얻으려면 자당 지지층을 넘어선 여론의 호응이 중요했다. 지금의 강경 투쟁 노선이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도, 이탈자 없이 이 대표가 장악력을 유지하며 일치단결을 요구할 수 있는 힘도 결국 여론이 매기는 점수에 달렸다. 그리고 민주당이 확신을 갖기 어려운 부분도 바로 여론이다.

호남 지지도, 이 대표 선고 뒤 감소세

지난 11월 14~15일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47.5%를 기록했다. 31.6%인 국민의힘에 15.9%포인트 앞선 수치다. 이날 조사는 11월 15일에 있었던 이 대표 선고가 일정 부분 반영됐다. 전주 지지율과 비교해 민주당은 3.8%포인트 올랐고 국민의힘 역시 0.9%포인트 올랐지만 양당 사이 격차는 벌어졌다. 리얼미터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표의 1심 선고에도 불구하고 전주 대비 상당폭 상승이 이뤄졌다. 지지층 응집력이 건재한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주목할 부분은 광주·전라의 지지율이다. 지역별로 여론조사를 뜯어보면 샘플 수가 줄어드는 한계가 있지만,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전주보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상승했다. 서울에서는 2.9%포인트, 인천·경기에서는 4.2%포인트, 부산·울산·경남에서는 5.3%포인트 올랐다. 유독 두 지역에서만 하락했는데,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3.9%포인트), 그리고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전라(2.7%포인트)였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호남의 선택이 민주당에는 매번 결정적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나올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이 대표 일극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이 됐다고 하지만 호남의 민심은 N분의1로 평가받을 순 없다. 민주당 역사에서 리더십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과정에는 매번 호남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선택했던 것도, 민주당에 위기를 안겼던 국민의당의 부상에도 매번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있었기에 인구수가 적다고 무시할 수 없다. 호남이 만약 이 대표를 아웃시킨다면 민주당의 일극체제 약화도 더 빨리 일어나게 된다.”

비명계 잠룡들이 잠잠하지만 호남과 관련해서는 이런저런 소식과 설이 들린다. 민주당 관계자는 “김부겸 전 총리가 분주하게 호남을 방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김경수 전 지사 진영에 광주·전남 정가에 몸담고 있던 인사들이 합류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독일에 있는 김 전 지사 대신 측근이 호남에 종종 들른다는 설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정치권에서는 호남의 지지세를 수도권의 호남 표심과 결합해 설명한다. 수도권 유권자의 약 30% 정도가 호남 출향민이라는 이유에서 호남 민심을 잡는 게 수도권의 박빙 선거전에서 중요하다는 게 정가의 정설이다. 최근 들어서는 수도권과 호남의 링크가 약화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전히 호남 민심에 여야가 공을 들이는 건 수도권 공략을 위한 포석이 더 짙다. 특히 민주당에서는 이 문제가 더 예민하게 다가온다. 권리당원 3분의1이 포진한 민주당의 텃밭이자 박빙의 대선 구도에서 흐름을 좌우하는, 그래서 전략적 계산이 통하는 지역이 호남이다. 민주당 대선 승리의 공식이 돼 버린 ‘민주당 영남후보론’은 영남권 표심의 증가를 필요조건으로 삼지만 여기에는 호남의 압도적 지지가 선결조건이다. 51 대 49의 싸움으로 펼쳐지는 대선에서 호남이 등을 돌리면 승리가 요원해진다는 뜻이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 ‘안 될 사람은 포기한다’

호남과 민주당의 관계를 지역주의 고리로 파악하는 것도 절반만 맞다. 호남과의 연고를 강조하는 건 민주당에서 큰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작업이다. 반면 그렇게 호남과의 연고를 강조하는 잠룡들 대부분은 비호남 출신이다. 이재명 체제가 들어선 민주당에서는 오히려 호남 홀대론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영남 출신 인사가 대거 지도부에 진입한 탓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도 호남과의 결합을 지역주의 관점이 아닌 가치주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많다. 이른바 ‘반보수 연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보수에 이겨야 한다는 호남과 민주당이 서로 손을 잡았다는 건데, 이 파트너십에는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전남이 고향인 이낙연 전 총리는 호남에서 47.12%를 얻었다. 경북 출신인 이 대표는 46.95%를 얻으며 대등한 지지세를 보였다. 호남의 절반이 경쟁력을 믿고 이 대표를 밀어준 셈이다.

‘될 사람을 선택한다’는 건 ‘안 될 사람은 포기한다’는 얘기다. 이는 이 대표와 민주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호남은 이 대표에 완벽하게 묶이지 않았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 누적 득표율 90%를 돌파하며 ‘구대명’(90% 이상 득표율로 대표는 이재명)으로 불리던 이 대표가 80%대를 기록하며 주춤했던 것이 호남이었다. 경쟁자였던 김두관 후보가 두 자릿수 득표율을 처음 얻은 곳도 호남이었다. 당시 주요 국면마다 전략적 선택을 해온 호남 민심이 이재명 일극체제에 따른 우려와 한계에 대해 선제적으로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0월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41%에 불과했다. 2~3위인 진보당과 조국혁신당 후보의 표를 합치면 과반이 훌쩍 넘었다. 경쟁력 있는 이 대표를 지지했던 호남이 사법리스크가 극에 달한 대권 후보를 여전히 지지할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를 둘러싼 약한 고리가 분출할 시점으로는 선거법 2심 이후라는 전망이 많다. 2심에서도 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는다면 의원직 상실과 피선거권 박탈이 현실에 가까워진다. 민주당도, 지지자도 이 대표 없는 대선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6·3·3’ 규정대로라면 2심 결과는 내년 2월경이다. 민주당이 맞을 봄날이 그리 화사하지만은 않을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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