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정쟁이 아닌 정책에서 앞다퉈 부딪치는 분야가 있다. 자본시장 관련 정책이다. 꾸준히 밀어왔던 주장을 접거나, 상대 당 의견과 함께하거나, 때로는 먼저 어젠다를 던지며 선점하는 일이 적극적으로 벌어진다. 여기에는 크게 증가한 개인투자자들을 확보하려는 선제적 움직임이 맞물려 있다. ‘개미’들을 위한 정책 보따리는 선거를 앞두고 제시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재명·한동훈 양당 대표와 상대할 이렇다 할 대항마가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권을 위한 물밑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둘러싼 공방이 한 번 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월 4일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2022년 10월 ‘금투세 시행’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폐지를 주장하며 민주당을 압박했다. 시행과 유예, 폐지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민주당은 2년여 만에 당론을 접으며 폐지 쪽에 섰다. “원칙과 가치에 따르면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강행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고,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는 1500만 주식 투자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정부·여당이 밀어붙이는 금투세 폐지에 동의하기로 했다.” 이 대표의 변이다.
금투세 물러선 민주당의 상법 청구서
자본시장 관련 정책을 두고 국민의힘은 일관되게 ‘노(No)’를 주장한다. 법 시행도, 개정도, 세금 조정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예민한 문제를 둘러싼 선택지는 매번 민주당 앞에 놓인다. 당내에서는 “저항을 민주당이 온몸으로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금투세도 그런 케이스다. ‘No’를 계속 주장해 온 국민의힘, 한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금투세를 앞에 두고 갈지자 행보를 해왔다. 민주당 전당대회 때는 “금투세 시행 시기를 고민해봐야 한다”라며 유예를 시사했다가 “(공제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자”며 보완 후 시행을 주장하기도 했다. 9월 들어 논란이 당내에서 가열되자 시행 쪽과 유예 쪽이 나눠 토론회를 가졌고 10월에는 의원총회를 열어 지도부에 모든 결정을 위임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시행도 유예도 아닌 ‘폐지’를 택했다.
금투세 폐지와 함께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는 걸 근거로 또 한 번 전선이 그어진 게 상법 개정 문제다. 국장(국내 주식시장) 저평가 현상은 올해 심각해지고 있다. 주요국 가운데 코스피보다 하락률이 높은 곳은 현재 전쟁 중인 러시아(-20.79%)가 유일하다는 조사도 있을 정도다.
민주당은 국장 부활책으로 상법 개정을 주장한다. 상법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돼 있다. 이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민주당 쪽은 본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고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주 보호 의무 조항을 담자는 거다. 기업만 이익을 보고 주주들은 과실을 나누지 못했던 그간의 구조 탓에 국내 기업들의 주가 부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미 지난 11월 19일 이정문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은 상법 제382조의3에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내용의 2항을 추가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상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큰 골격인 법은 놔두고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핀셋 조정하자는 뜻이다. 한 대표도 “주주를 충실의무 대상으로 넣으면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로 굉장히 많은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처벌도 정말 쉬워진다”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한 대표가 “가불기(가드 불가능 기술)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개미투자자를 위해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기업의 지배권 남용 문제를 막자는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계 저항은 예상됐던 거지만 유권자 내 주식투자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여론을 업으면 된다”며 “금투세를 지렛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폐지했으니 상법 개정은 반드시 해야 당 입장에서도 할 말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치집단화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
과거 개별적 차원에서 목소리를 내는 데 그쳤던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집단화되고 있다. 관련 커뮤니티는 활성화됐고 의견 교환도 주저하지 않는다. 집단행동도 적극적이다. 여의도에서는 이런 집단화가 정치적으로 결집할 경우가 신경 쓰인다. 저금리 시대에 주식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투자자들은 자산 가격 유지가 최우선 과제다. 이들은 자산시장 부양에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매우 가혹하다.
이 집단은 정치적 효용도 얻은 적이 있다. 2023년 11월 금융 당국이 주식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던 건 승리의 경험이다. 결집된 개인투자자들은 금투세 국면에서도 민주당을 압박하는 방법을 공유하며 행동을 이어갔다. 금투세 시행 측 의원들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문자를 넣으며 금투세 폐지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항의보다 민주당을 곤란하게 만든 건 ‘네이밍’이었다. 온라인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금투세를 ‘재명세’라고 불렀는데 이런 부정적 딱지표는 정치인에게 마이너스다.
가상자산 과세 건도 금투세와 맥락은 비슷하다. 2024년 상반기 기준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는 800만명에 육박한다. 시장 규모로는 미국과 일본에 이은 세계 3위 수준이다. 이들은 또 다른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투자자라는 대표성도 갖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젊은층의 이익을 상징한다.
지난 11월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 산하 소소위원회에서는 내년 1월 1일 시행 예정인 ‘가상자산(코인) 소득 과세’에 대해 논의했지만 여야 합의에 도달하진 못했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투자소득 중 기본공제 250만원을 제외한 금액에 대해 20%(지방세 포함 22%) 세율로 과세를 하게 된다. 정부·여당은 과세체계 미비 등을 이유로 이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표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그 과세는 공정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800만명이 넘는 우리 국민(투자자) 중 대다수는 청년이다. (가상자산이) 청년들의 자산 형성 사다리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공은 또다시 민주당으로 넘어온 상황이다. 민주당은 예정대로 내년부터 과세를 시행하되, 투자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본공제 한도를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상향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비공개회의에서 이 대표가 우려를 표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금투세와 비슷한 갈지자 행보 중이다. 당내에서는 “일부 투자자들의 주장이 과대 대표되는 것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민주당 정책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 표차로 승부가 갈린 것을 양당 모두 너무 잘 안다”며 “어느 집단과도 마찰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려고 하다보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