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회 디지털자산 STO 포럼 조찬간담회에서 자료를 살피고 있다. photo 뉴시스

국민의힘 당원게시판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당원게시판에 한동훈 대표와 그의 가족 명의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하는 글이, 한 대표에 대해서는 우호적 내용의 글이 집중적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이른바 ‘당게(당원게시판) 논란’은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던 계파 갈등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한 대표가 이번 일에 대한 친윤계의 공격을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의도’라고 말하면서 당은 더 수렁 속으로 빠져가는 분위기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친윤계의 의도와는 별개로 한 대표의 해명이 과거의 언행이나 새로 밝혀지고 있는 사실과 자꾸 충돌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대표가 당원게시판이 ‘당심의 바로미터’라는 취지의 말을 해온 만큼, 당원게시판의 투명성과 공정성 담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것도 한 이유가 되고 있다.

우선 한 대표는 최근 당원게시판은 여론조작이 가능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해당 의혹에 대해 며칠간 침묵하던 한 대표는 “어떻게 당원들끼리만 보는 익명 게시판에서 여론 조작을 하나?” 하고 반문했다. 친한계인 김종혁 최고위원도 지난 11월 27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걸로 여론 조작이 되겠느냐”라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8월 같은 사안에 대해 한 대표와 친한계는 다른 주장을 펼쳤었다. 지난 8월 광복절 사면 당시 김경수 전 지사 복권 소문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자 한 대표는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반성하지 않은 사람을 복권해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국민이 많고 당원과 지지층도 반대가 많다”며 여러 경로로 대통령실에 반대 의사를 전달했다. 한 대표는 이 과정에서 측근들에게 “당은 민심을 대통령실에 전달해야 한다. 그게 당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후 친한계 인사인 박상수 대변인은 언론에 “지금 당 게시판에 보면 어제는 6000개라고 하는데, 9000개 정도의 글이 쓰이고 있다면 당 대표로서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대표를 하고, 그 부분을 언급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김종혁 최고위원은 “당원게시판에 하루에 수천 건의 (김경수 복권) 반대 의견이 올라오고 당원들이 펄펄 뛰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당으로서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동훈’과 한 대표 장모 이름인 ‘최○○’으로 가장 댓글이 많이 달린 때는 두 차례다. 일단 총선 패배 후인 지난 5월 8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가 빗발치던 무렵 당원게시판에는 ‘한동훈’ 이름의 작성자가 하루 만에 50여개의 글을 올렸다. 이때 언론들은 일제히 당원게시판을 인용해 ‘한동훈의 전당대회 등판론’을 보도했다. 지난 8월 13일 김경수 사면 복권이 언론을 통해 기정사실화되자 이번에는 장모 이름으로 40개가 넘는 글이 하루 만에 작성됐다. 이후 9월부터 국민의힘은 당원게시판에 무제한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바꿔 하루 3개씩만 글을 쓸 수 있도록 했다.

팬덤들의 전쟁터 된 당원게시판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당원게시판은 당심의 근거가 돼왔다. 이 때문에 당원게시판은 팬덤들의 전쟁터가 됐고, 서로 ‘화력’을 보여주는 자리가 됐다. 지난 8월 22일 김건희 여사의 팬카페 ‘건사랑’에는 ‘위드후니와 한딸, 잠입 좌파들이 장악한 국힘게시판에 응원의 글을 남겨주세요(대통령과 영부인께 큰 힘이 됩니다)’라는 제목의 공지사항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이 글에는 당원게시판에 글을 쓰기 위해 당원가입하는 방법과 게시글 작성 방법 등이 안내되었다. 건사랑 운영자는 “대통령과 영부인께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막말을 쏟아내서 문제가 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 건사랑이 나선다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썼다. 한동훈 네이버 팬카페인 ‘위드후니’나 각 팬덤의 디시인사이드 갤러리에서도 “당원게시판에 화력지원 부탁드립니다” “여기 말고 당원게시판에 가서 글을 쓰라”는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한동훈의 지지자였으며 팬덤에도 가입했었다고 밝힌 책임당원 A씨는 “하루에 60개씩 글을 쓰는 사람도 봤다. 일사불란하게 어떤 글을 올리자고 주동자가 글을 올리면 다같이 당원게시판에 가서 글을 쓰고, 그것을 다시 카페로 돌아와 인증하는 시스템이었다”고 전했다. 당원게시판 내 당심이 왜곡될 여지가 존재했던 셈이다.

국민의힘 측이 부인한 매크로 정황 역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간 당원 게시판에 일부 사용자가 매크로(자동입력반복프로그램)를 돌려 댓글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왔는데, 국민의힘 측은 이에 대해 “한동훈 대표 이름과 한동훈 대표 가족의 이름에 대해 자체 조사를 했고, 일평균 2.39건이 나왔다”는 식으로 언론을 통해 해명하며 매크로 사용이나 조직적 활동정황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애당초 당원게시판 매크로 의혹은 한 대표를 포함한 가족을 향해 제기된 것이 아니었다. 자유대한호국단의 고발장 및 정치권에서 언급되고 있는 자료에 따르면 ‘김○○’이라는 게시자는 4월부터 11월까지 1만2000개가량의 게시물을 작성했다. 이 게시물들은 주로 한동훈 대표를 띄우는 내용이거나, 윤석열 대통령 등 다른 인사들을 비판하는 내용이어서 의심을 받았다. 특히 이 김○○ 글의 본문이나 제목 등에서는 ‘column’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식별됐다. 세로줄이라는 뜻의 ‘column’은 매크로가 이뤄진 흔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국민의힘 측은 한 대표 가족 외의 김○○이라는 이름의 매크로 사용 여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데이터 분야에 종사하는 정모씨(30대)는 주간조선에 “column이라는 단어는 데이터에서 필수적으로 쓰는 말이다. 데이터의 특정 성질을 공통적으로 추출하려면 column에서 조건을 걸어야 하고, 그러다 나온 오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한 개인이 지속적으로 작성한 글에서 문맥에 맞지 않은 컴퓨터 언어가 지속적으로 노출이 된다면 매크로 의심 정황은 충분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11월 28일을 기준으로 column, from column이라는 글자가 포함된 김○○씨의 글은 855개 남아 있다. 처음 제기됐던 1만2000여개만큼은 확인되지 않으나,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4월 30일이다. 4월 30일은 당시 비대위원장 사퇴 후 칩거하던 한동훈 대표의 전당대회 등판론이 막 불붙을 때였다. “한동훈이 자신이 당대표로 출마하기 위해 전당대회 시점을 미뤄달라는 얘기를 했다”는 소문이 돌자 한 대표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답했던 날이기도 하다.

매크로 사용 흔적 남긴 ‘김○○' 작성 글

주간조선이 익명을 요구한 한 당원의 조력을 받아 김○○씨의 글을 당원게시판에서 열람해본 결과,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실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은, 그가 정계 복귀를 결정할 경우, 자유 진영이 그것을 심하게 막으려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는 장점도 많다’ 등의 어색한 문장이 제목, 본문 등에 하나씩 반복적으로 번갈아 사용되는 글이 다수 발견됐다. 그리고 이 같은 게시물들은 당원게시판 규정에 따라 ‘도배’ 항목으로 숨김 처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검색이 됐다.

보안 전문가인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계속 동일한 언어를 반복시켜서 특정 사안을 호도하거나 악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프레임을 씌운다면 매크로를 의심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디 등의 정보가 남아있기 때문에 IP 등 대부분 다 추적이 된다”면서도 “쉽게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좀더 철저하게 조사를 해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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