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당시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 8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피날레 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photo 국회사진기자단

생애 첫 선거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뽑았다는 이공계 대학생 박모(24·남)씨는 소위 ‘R&D 예산 삭감’ 논란에 실망했다고 한다. 그는 “(연구실에서) 지원비가 끊기면서 인건비를 받지 못하는 동료들을 보며 ‘내가 잘못 뽑았나’라고 생각했다”면서 “(군필자로서) 국군의날 행사도 아쉬웠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이른바 ‘이대남’으로 불린 20·30대 남성들은 윤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다. 지난 대선 기간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펼친 이른바 ‘세대포위론’의 가장 큰 공로자이기도 했다.

“이재명보다는 나을 줄 알았다고 생각했다”는 전모(23·남)씨 역시 윤 대통령에게 투표했다. 그랬던 그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논란’이 너무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간 ‘2030세대=진보적 성향’이라는 틀을 깨고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유지할 것으로 보였던 20·30대 남성들이었지만, 이들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1639만4815표’. 윤 대통령이 2022년 3월 9일 제20대 대선에서 받은 득표수다. ‘공정과 상식’ ‘법치’ 등 선거 기간 중 윤석열 당시 후보가 앞세운 키워드는 명확했다. 이는 이른바 보수 후보를 전통적으로 지지해왔던 60대 이상의 장년층과 TK(대구·경북)를 제외한 유권자에게도 호소력이 짙었다.

우선 세대별로는 소위 ‘이대남(20대 남성)’으로 불렸던 젊은 남성층에게 크게 작용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으로 대표되는 윤 대통령의 이대남 공략은 성공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밀어붙인 정책 혹은 결사적으로 막은 자신의 가족 관련 의혹은 20대 지지층들을 삽으로 떠내듯 덜어냈다.

비상계엄 전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다

‘선수는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며 떠난 지지층을 외면했던 윤 대통령은 어느새 본인이 콜드게임 상황 직전까지 몰린 것도 외면했다. 결국 그는 대선일로부터 1012일 만에 직무 정지라는 상황을 맞이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결정적으로 윤 대통령을 탄핵 정국으로 몰아넣었다는 평가가 주요하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기간 서서히 하락했던 민심으로 인해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등장한 20대 유권자들은 그들이 어떻게 떠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대만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윤 후보는 지역별로도 의미 있는 결과를 냈다. 호남 전 지역에서 두 자릿수 득표율에 성공했으며, PK(부산·울산·경남) 지역 중 부산에서는 40만표 이상의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여기에 주부층과 선거 막판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로 인한 표까지 더해지면서, 윤석열 후보는 역대 대선 최고 득표수와 함께 용산에 입성했다. 특히 호남 공략이 성공하면서 윤 후보는 광주광역시에서 역대 보수정당 후보 중 첫 두 자릿수 득표율을 얻었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한 달여 전인 지난 11월 초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호남권 국정 지지율은 3%에 불과했다. 직장인 김모(26)씨는 “광주 출신이지만 이재명이 너무 싫어서 윤석열을 뽑았다”면서 “그때는 광주에서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비교적 흔들리지 않았던 부산도 결국 무너졌다. 부산은 대선에서 40만표 이상 득표 차를 보였던 곳이다. 당시 전국 득표수에서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의 표 차이는 20여만표에 불과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부산에서의 압도적 승리로 극복했다. 이후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의 악재에도 부산은 지난 4월 총선에서 18개 지역구 중 한 곳을 제외한 전석을 몰아주며 전폭적 지지를 보였다. 그러나 계엄 사태 이후 PK 지지율 역시 10%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부산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지난 금정구청장 재보궐선거 때까지만 해도 버텼던 부산이었다”면서도 “계엄 이후로 기류가 변했다”고 전했다.

세대별, 지역별 지지가 무너진 이유는 다양하다. 전업주부인 50대 박모씨는 올해 초 터진 ‘의대증원 논란’을 보고 실망했다. 그는 “솔직히 소통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자영업자 백모(32)씨는 “경제는 보수가 잘할 것 같아서 윤 대통령을 뽑았다”고 한다. 그러나 백씨는 “경제가 나아지지도 않았지만, 특히 (대통령의) 연이은 ‘특검법 거부’를 보면서 더 이상 응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빠르게 추락한 이유를 그의 허약한 정치기반에서 찾는 지적도 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윤 대통령이 (대선에서 얻은) 48%는 결코 견고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득표는)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충성심 강한 고정 지지층’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결속력이 전혀 없었던 지지층이었기 때문에 더욱 쉽게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 입문한 지 불과 8개월여 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비록 검사 시절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었음에도, 정치인으로서 강한 지지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던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기대감 상실로 이어졌다. 앞서 백씨는 “어느 순간부터 대통령에게 큰 기대는 없었다”면서 “(계엄 사태로) 이렇게 된 마당에 할 말이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궁극적으로는 대통령 말 자체에 대한 신뢰조차 잃게 만들었다. 최근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수사’ ‘거대 야당의 폭거에 대한 경고’ 등 자신의 계엄령 선포 이유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통해 호소했지만, 그에게 표를 던졌던 수많은 유권자 중 대부분은 동의하지 않았다.

대선 때는 1640만명 지지… 이젠 단 11%

‘11%’. 지난 12월 13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2차 표결을 하루 앞두고 발표된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다. 앞서 1640만명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그에게 표를 던졌지만, 윤 대통령은 불과 2년7개월 만에 국민 10명 중 1명만 지지하는 대통령이 됐다. 결국 다음날인 14일 저녁 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까지 11일이 걸렸지만 이전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이미 6개월 넘게 20%대에서 답보 상태였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 야권 일각에서는 지난 여름부터 “국민들로부터 이미 윤 대통령은 ‘심리적 탄핵’ 상태”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이와 관련해 앞서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계엄은 일종의 확인 사살이었을 뿐, 지난 4월 총선 당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미 20% 수준이었다”면서 “민심이 돌아섰다는 시그널은 충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국정 기조의 변화 등이 없었던 일관된 태도가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사상 초유의 비상계엄 선포가 윤 대통령 탄핵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으나, 그 기저에는 윤 대통령에게서 돌아선 민심이 이미 단단해진 상태였다는 것이다.

▷더 많은 기사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