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섣부른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의도 정치판에는 이미 조기대선 국면이 활짝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진행 중이지만,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다면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하는 숨가쁜 일정을 맞게 된다. 이 때문에 유비무환 자세를 각 정당은 요구받고 있다.
현재 다음 대통령직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모든 대선 후보군을 상대로 하는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에서 홀로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12월 14~16일 전국 성인 남녀 2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에서 이재명 대표는 48.0%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한 친명계 인사는 지금의 구도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보다 더 강력해 보인다고 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다자구도에서 30%대였다. 40%대 지지율은 다자구도에서 쉽게 보기 힘들다. 나머지 후보들을 다 합쳐도 이 대표 지지율보다 아래다. 반(反)이재명을 상정한 단일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이 대표가 앞선다. 대세론이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한 형국이다.”
‘이재명 대세론’은 탄핵을 전후해 그 앞에 놓여있던 벽을 한 단계 넘어선 결과다. 탄핵 전 20~30%대를 오가던 그의 다자구도 지지율은 계엄 사태 이후 급등했다. 그의 지지율은 탄핵 정국 들어 꾸준히 상승했다. 이 대표를 둘러싼 악재도 지지율 상승을 막지 못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내에서는 ‘절제’를 당부하고 차분함을 요구한다.
낮은 호감도는 변하지 않았다
지지율의 고공행진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 정권교체론이 국민적 합의 수준에 도달했다. 계엄이라는 엄청난 혼란, 속속 드러나는 그날의 증언,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로 버티는 윤 대통령의 태도 등이 국민 정서를 자극하며 정권 심판 여론이 식지 않는다. 정권교체에 가장 앞서 있는 야당 후보는 이 대표다. 불확실한 차기 대선 일정 속에 가장 앞서 있는 후보를 향해 여론은 지지세를 만들어가고 있다.
둘, 야당 내 경쟁자가 없다. 후발 주자들은 선두주자를 때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조기 대선으로 치러졌던 2017년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함께 이 대표도 문재인 전 대통령 때리기에 나섰다. 당시를 기억하는 한 친문계 인사는 “지금의 민주당 지지층인 40~50대 화이트칼라가 당시 30~40대로 문 전 대통령의 강력한 지지층이 됐다. 그들이 보호막이 되면서 민주당 경선은 문 전 대통령의 손쉬운 승리로 끝났다”고 말했다.
반면 지금 야권 내의 3김(김부겸 전 총리·김동연 경기지사·김경수 전 경남지사)은 이 대표를 공격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지금의 이 대표를 향한 비판은 여당 동조자처럼 보일 수 있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의 이재명’보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돼버린 당내 구조도 경쟁자에게 설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셋, 유력한 상대 후보인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추락했다. 탄핵 이전 여론조사 다자 대결에서 2위였던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탄핵과 그 과정에서 보였던 갈지자 행보, 그리고 여권의 지지기반 붕괴 탓에 쓰러졌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여권에 유의미한 후보가 없다”고 보는 쪽이다. “설혹 국민의힘이 혁신형 비대위를 꾸리고 과거와 단절한다고 해도 결국 친윤석열계만 남은 정당이고 나올 만한 대선 후보 중에서도 혁신적인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표가 리스크를 안고 있다고 해도 탄핵을 안고 싸우는 여당 후보가 수도권에서 득표를 할 수 있을까 싶다. 하자가 없어도 힘든데 하자가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이라고 본다.”
이쯤되면 이 대표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국민의힘 쪽에도 이 대표의 대세론에 관해 물어봤다. 두 번의 대선을 캠프에서 직접 치렀던 한 당직자는 “이재명이 유리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이재명이 반드시 이기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낮은 이 대표의 호감도에 주목했다. “계엄 이후 야당 지도자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비호감도가 여전히 높다. 호감도에 변화가 없는데 지지율이 높아진 건 후보 경쟁력의 상승이 아니라 외부 요인 때문이다. 앞으로 외부 요인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이 대표의 경쟁력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거나 추락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비호감도가 높은 정치인이다. 이는 탄핵 정국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12월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2명에게 이 대표의 신뢰도를 물었을 때 신뢰(41%)보다 불신(51%)이 더 높았다. 바뀌지 않은 호감도, 그리고 상승한 지지율을 두고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 유권자의 전략적 판단만 이 대표로 향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도 확장 전략이 필수적이다. 중도 확장은 이 대표가 시도해왔던 숙제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 대표는 자신의 정체성을 평가하며 “총량으로 보면 저는 보수 색깔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고 민주당에 대해서도 “중도보수에 가까운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중도층을 향한 발신 메시지로 읽혔다. 하지만 이런 구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갤럽조사에서 중도층은 42%만 이재명을 ‘신뢰한다’고 답해 ‘신뢰하지 않는다’(49%)는 답변보다 낮게 나왔다. 지지세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게 대선이고 이 때문에 잠재적 우군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가로막는 건 이 후보의 비호감도가 한몫하고 있다. ‘이 대표가 좋아서 찍는’ 지지자를 확장하는 게 필요하단 뜻이다.
2심 판결에 따라 중도층 이반될 수도
알다시피 이 대표는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선거법에서는 항소심과 최종심을 각각 3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2심 판결은 내년 2월, 최종 판결은 5월까지 선고돼야 한다. 국민의힘의 한 전략통은 “선거법 2심 판결이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선거법은 판례가 엄청나게 많아서 앞선 판결이 잘 엎어지지 않는다. 2심에서도 유죄가 나올 경우 지금 이 대표 쪽에 몰려있는 중도·무당층의 지지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유권자 중 정치인의 흠결에 가장 냉소적이고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한 그룹이 중도·무당층이다. 2심 판결에 따라 중도층이 민주당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계엄과 탄핵, 그리고 보수의 추락이 가져올지 모를 조기 대선은 이 대표에게 강력한 호재지만 지금의 ‘단기 수익’이 내년에도 그대로 유지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가장 앞섰을 뿐, 결승점에 먼저 도착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소로 향하면서 당장 다음 시선이 이 대표와 그의 법정으로 쏠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실상 이재명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큰 변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