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2017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으로 전역한 이후,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중앙일보에 자신의 이름을 건 시리즈 칼럼을 기고했다. 그의 마지막 칼럼 제목은 ‘어쩌다 ‘당나라 군대’라 불리게 됐나’였다. 그는 당나라 군대가 강군에서 ‘오합지졸’로 전락한 원인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정치 세력에 의한 군대의 정치화다. 능력·전문성이 아니라 권력과의 연줄과 뇌물 액수가 군대의 진급과 보직을 결정했다. 희대의 간신 이임보는 자기 ‘애완견들’을 중용했다. 무능한 간부들이 속출했고, 직속상관보다 권력에 줄을 대면서 지휘 체계도 무너졌다.”
그리고 우리 군을 이같이 무능해진 ‘당나라 군대’에 빗대며 이런 말을 했다.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을 불러내 장군 인사를 논의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알려지면서, ‘진급하려면 직속상관에게 충성하느니 청와대 행정관 뒷다리라도 잡는 게 더 낫다’는 말이 나돌았다. 오죽하면 적만 바라봐야 할 최전방 사단장이 철거한 GP 철조망으로 선물을 만들어 여당 국회의원에게 주었겠는가?”
김 전 장관은 이로부터 4년 뒤 ‘12·3 비상계엄’을 주도한 핵심 인물이 됐다. 이 과정에서 김 전 장관의 오랜 측근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계엄의 또 다른 주동자로 지목되고 있다. 김용군 전 대령은 노 전 사령관과 함께 햄버거집에서 정보사령부 인사들과 만나 계엄을 사전 모의한 인물이다. 김 전 장관의 집사로 불렸던 양모씨도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 김 전 대령이나 양모씨 모두 민간인 신분이었다. 이 사람들은 보안을 위해 비화폰을 쓰거나 그에 준하는 통신검열 대상도 아니다. 적의 사이버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 인물들인 것이다.
이 민간인들이 비상계엄에 깊이 관여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김 전 장관이 쓴 글을 자신에게 들이대도 어색하지 않다. ‘정치권의 인사개입과 자기 편 줄세우기로 군의 지휘체계가 와해하고 무능한 군대로 전락했다.’
현재까지 수사로 드러난 것을 보면 김용현 전 장관은 이번 계엄 과정에서 노 전 사령관, 김 전 대령, ‘양 집사’ 같은 민간인들을 내세워 계엄을 지휘했는데, 이들은 모두 학연, 지연 등으로 엮여 있었다. 그는 정년 전역 이후 5년 만인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첫 대통령경호처장으로 임명됐고, 2년 뒤인 2024년 장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의 충암고 1년 후배였다. 이번 계엄에서도 드러났듯 충암파는 군 요직에 중용됐다. ‘충암파’에 이어 ‘용현파’라는 말도 나왔다. 김 전 장관과 함께 근무했다가 전역했던 이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전해진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군을 떠난 지 7년이 된 김 전 장관이 취임 후 짧은 기간 현역에서 심복을 골라내는 것보다 오래 알고 지낸 민간인과 접촉해 동향을 살피고 현직을 소개받는 등 일을 맡기는 게 더 수월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간인 노상원은 누구인가
계엄 이틀 전과 당일 열린 두 차례의 ‘햄버거 회동’을 주도한 노 전 사령관은 2018년 성범죄로 유죄를 선고받고 불명예 전역을 했다. 그는 ‘안산 보살’이란 이름의 점술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김 전 장관의 비선 ‘문고리’로 활동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민간인이었던 그는 지난 12월 1일 1차 롯데리아 회동에 현역인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현직인 김모·정모 대령을 불러냈다. 수사당국은 이들이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과 선관위 직원들을 케이블 타이로 묶고 두건을 씌워 체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당일 2차 회동에선 영역을 넓혔다. 구삼회 2기갑여단장(준장)은 물론 민간인 신분인 김용군 전 대령 등 새 인사가 추가됐다.
노 전 사령관이 현역으로 복무할 때도 사적 인연을 중시했던 인물이란 증언은 차고 넘친다. 과거 노 전 사령관과 정보사에서 함께 근무했었다는 관계자 A씨는 주간조선에 이렇게 말했다. “정보사내에는 여러 파벌이 존재한다. 특히 ‘충청도’를 공통점으로 하는 일종의 카르텔이 존재했다. 당시 충청도 출신 기무부대장 강모 중령은 노 전 사령관이 대전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각별히 챙겼다. 노상원은 부정적인 평가가 워낙 많고 그 아래서 근무하는 자들의 곡소리가 끊이질 않아 기무사령관 물망에 올랐지만 내부의 반발이 거세서 좌절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전역 원인이 된 성범죄 이전에도 여러 성적 논란을 포함한 안하무인적 행보를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강모 중령은 그를 비호했다. 지난 7월 발생한 블랙요원 명단 유출사건 같은 경우 노 전 사령관이 2016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사건을 계기로 기무부의 정보사 부대출입을 차단시킨 것이 발단이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은 해당 사건을 기무부대장으로부터 처음 듣게 된 이후 ‘기무부대원의 활동능력이 우수해서 공작보안이 유지가 되지 않으니 공작부대의 출입을 통제하라’고 명령했었다. 그 결과 정보사 기무대의 활동관 출입이 없어졌고 정보사가 마음대로 정보를 관리하게 되면서 유출 사태가 터진 거라고 본다.”
그가 역술을 신봉하며 주변 사람들의 점을 보러 다녔던 것 역시 결국 업무능력보다 사적 인연을 중시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노 전 사령관은 현역 시절 역술가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등의 관심법으로 주변의 정보를 획득했다고 한다. 관계자 A씨는 주간조선에 “(노 전 사령관이) 주역, 철학 등 공부를 하고, 점을 보는 역술인 모임에 가입을 한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며 “영관급 장교 때는 정기모임 같은 것도 다녔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A씨는 “(노 전 사령관이) 계룡산 등 영험하거나 소위 ‘기가 센’ 장소를 (역술인) 회원들과 찾아다니고 식사도 하고 술자리도 했었다”며 “당시 온라인 역술인 카페에도 (노 전 사령관이 포함된) 모임 사진이 올라왔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관계자 B씨는 “(노 전 사령관이) 대화를 할 때 ‘나는 너를 다 알고 있다’ ‘나는 다 보인다’ 등의 발언을 하며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주지시켰었다”며 “주변에서는 마치 관심법을 하듯이 말한다고 얘기했었다. 가스라이팅 하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했었다”고 기억했다. A씨도 “부대 내에 자신의 망을 은밀히 심어놓고, 부대 돌아가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다 알아내서 그걸로 사람을 괴롭혔다”며 “그걸로 ‘나는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주변에 과시하며 정보를 획득하고 점조직화했다. 웬만한 정보(직무)는 그렇게 안 한다. 굉장히 치밀하고 피곤한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민간인 김용군은 누구인가
김용군 전 대령은 노 전 사령관과 현역 시절 사단 근무를 함께한 인연으로 의기투합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군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단 이른바 ‘문재인 등 정치 댓글 공작 사건’ 수사 책임자였다. 그는 수사를 무마하고 은폐한 혐의로 2018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김 전 대령 관련 수사를 주도한 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야당은 김 전 대령이 참석한 ‘햄버거 회동’에서 정보사 내에 ‘수사2단’으로 불리는 불법 조직을 꾸리는 방안이 논의됐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 휘하에 구삼회 준장을 단장으로 하고 정보사·군사경찰 인원으로 3개 팀을 구성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김 전 대령은 현직 국방부 조사본부 차장인 김모 대령을 접촉했다고 한다. 김 전 대령은 조사본부 수사단장 시절 수사지도과장인 김 대령과 함께 근무한 연이 있다. 김 전 대령은 12월 3일 2차 햄버거집 회동을 끝낸 뒤 조사본부에서 퇴근한 김 대령을 당산역 인근으로 불러내 저녁 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대령 등 곤궁한 퇴역 군인들이 이번 모의에 가담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불명예 전역 예비역들이 두 명씩이나 계엄에 참여하게 된 동기에 대해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군에서 내쫓기며 잃을 게 없던 사람들이었다. 한번 비위를 저질러본 사람들이니 (계엄 등) 이런 것들을 시키기 편했을 것”이라며 “정상적으로 판단할 줄 아는 군인들이라면 아무리 육사 출신이더라도 이런 사적 모임에 가담하지 않을테니 (계엄과 같은 임무를) 맡을 인사도 잘 없을 텐데, 이 사람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임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계엄을 성공시키며 오히려 ‘한탕’을 노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인 양모씨는 누구인가
김용현 전 장관의 집사로 활동한 양모씨는 김 전 장관의 동선, 통화 내용 등을 밝힐 키 맨으로 꼽힌다. 그는 이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김 전 장관이 소대장일 때 통신병으로 처음 만나 40여년간 인연을 이어온 양씨는 김 전 장관의 수족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실 경호처장일 때부터 함께 근무했고, 그가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뒤로는 장관 공관에 기거하며 각종 접객과 살림을 돕는 수족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는 김 전 장관과 공관에서 함께 거주한 이유에 대해 “야간 비상 상황 등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양씨는 경호처와 국방부 내에서 ‘양 박사’ ‘양 비서관’ ‘양 집사’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장관 공관 관리관은 별도로 있기 때문에 양씨는 국방부 장관 비서실 공무원 등 공식 명단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씨가 직접적으로 계엄 모의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김 전 장관의 충복으로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김 전 장관이 만난 인사들의 이동 등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공수처는 최근 양모씨를 불러 조사하는 과정에서 비상계엄 당일 이른 아침 양씨가 노 전 사령관을 차량에 태워 김 전 장관 공관에 데려왔고, 이후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이 20~30분가량 공관에서 회동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양씨로부터 ‘김 전 장관과 회동이 끝난 노 전 사령관을 차에 태워 한남동 인근에 내려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알려졌다. 이날 김 전 장관이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오전 10시) 참석차 공관을 떠난 시각은 오전 9시15분으로 파악됐다. 관련자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공수처는 양씨가 계엄 전후 김 전 장관의 동선 등 큰 그림을 맞추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기일 교수는 “군사 기밀 보호에 관한 법률에는 군인은 현직 신분으로 취득했던 정보를 전역한 이후에도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한 처벌 문항도 분명히 명문화 돼있다”며 “전현직 정보사령관이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인이 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문상호 현 정보사령관 사이의 계엄 모의의 경우) 정보사령관의 일들은 기밀과 직결되기 때문에 이 법에 저촉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 구체적으로 1급에서 3급 그리고 대외비에 이르기까지 군사기밀로 분류되고 지정된 내용을 무단으로 발설하거나 유출했다면 처벌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 사이 군 정보에 관한 내용이 오가는 통화가 있었다면 민간인의 일반 휴대폰이었으므로 그 내용이 북한 등 우리의 적성국가에 도감청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 군 작전이나 작전 임무 등이 유출되면 국가 안보상의 위해가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