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훈 국민의힘 전 당대표는 지난 설 연휴 기간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와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비슷한 시기 만났다. 언론에서 이런 행보를 대선과 연결해 해석하지만, 한 전 대표의 이 같은 활동이 반드시 대선 출마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보기는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한 전 대표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지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본인이 어떻게 한다고 밝힌 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친한계 인사들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있다. 한동훈 대표체제에서 당 대변인을 맡았던 박상수 국민의힘 인천서구갑 당협위원장은 지난 2월 1일 유튜브 채널 ‘언더 73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박 위원장은 채널명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았으나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가 1973년생이므로 ‘언더 73(1973년생 아래)’으로 채널명을 정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언더 73 스튜디오’는 개설 이틀 만에 구독자 1만명(2월 3일 오전 7시 기준)을 돌파했다.
구분을 명확하게 하긴 어렵지만 친한계는 내부에서 세 그룹 정도로 분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나 신지호 전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 등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그룹이 그중 하나다. 이들은 한 전 대표의 대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다. 신 전 총장은 지난 2월 6일 오전 BBS라디오 ‘신인규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다가 등판해야 하지 않느냐, 반대 측에서 공격을 할 것이고 정면돌파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빨리 나오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다”며 “한동훈 대표의 결단에 달린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그룹은 진종오 의원이나 박상수 위원장과 같은 1980년대생 소장파 그룹이다. 한동훈 대표 체제에서 당에 들어온 이들이다. 진 의원은 최근 한 전 대표와 만난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2번 연속 검사 대통령’은 부담
다른 그룹은 보다 젊은 외곽그룹이다. 지명도 있는 인물은 없지만 팬카페 등과 접촉하며 대중적 여론을 한 전 대표에게 전달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한 전 대표의 대선 출마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특히 탄핵이 인용될 경우 당내 반발 세력의 반대에 더해 ‘검사 출신 대통령’이란 프레임으로 야당이 공격하면 쉽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렇게 되면 재기가 쉽지 않아 ‘정치인 한동훈’ 카드가 너무 쉽게 사라진다고 이들은 걱정한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한동훈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장관을 하긴 했어도 여전히 검사 이미지가 강한 한 전 대표가 시장으로서 행정능력을 검증한다면 이런 이미지를 떨쳐내기 좋다는 것이다.
한 전 대표가 서울시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경우다. 내년 6월 1일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기다리는 방법이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우다.
두 번째 경우의 수는 복잡하다. 공직선거법 제35조는 ‘대통령이 궐위(탄핵 또는 하야)하면 60일 내 후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선관위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선거법 35조 4항의 대통령 궐위 시 선거는 ‘보궐선거 등’에 포함되는 걸로 본다”며 “53조 2항에 있는 ‘보궐선거 등’의 규정을 준용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선거일 30일 전에만 사퇴하면 출마할 수 있다”고 해석을 내린 바 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다고 가정하면, 2월 말 인용은 4월 말 벚꽃 대선으로 치러진다. 3월 중순 인용되면 5월 중순 장미 대선이다.
오 시장 사퇴 시점이 변수인 까닭
이런 대선 일정은 오 시장의 사퇴 시점과 연관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오는 2월 28일까지 관할선관위가 재보궐선거 실시사유를 통지받지 못한 경우 당해 지자체장은 제9회 전국지방동시선거(2026년 6월 3일)에서 선출한다’고 확정했다.
따라서 헌재가 2월 28일 이후에 탄핵을 인용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치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 시장이 탄핵심판 이후에 행보를 정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이 사퇴하면 서울시 행정부시장이 내년 지방선거 때까지 직무를 대행한다. 이럴 경우 한 전 대표는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만 이런 행보는 오 시장의 두 번째 서울시장 중도사퇴라는 점에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전 대표 측에서는 이런 서울시장 출마설은 친한계 내부가 아닌 오 시장 쪽에서 흘리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무상급식으로 중도사퇴를 한 적이 있는 오 시장이 두 번째 중도사퇴라는 정치적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한 전 대표를 끌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 친한계 인사는 이 같은 시나리오가 도는 것에 대해 “바로 대권으로 간다”며 “한 전 대표가 이제 곧 나올 텐데 (서울시장 출마는) 선택지에 없다”고 했다. 이 인사는 오 시장 측 특정 인사를 거론하며 “오 시장 측에서 그렇게 많이 (얘기)하는 것 같은데 경선에서 잘 싸우면 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선 경선에 나올 경우 당내 경선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친윤계의 집중포화를 맞아 내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은 여전하다. 당헌·당규를 개정하지 않은 채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국민의힘은 당심·민심 5 대 5로 대선 후보 경선을 치른다. 민심이 압도적이지 않은 이상 당심을 차지하지 못하면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힘들다. 당원 투표는 조직표 동원 전략이 관건이다. 특히 국민의힘 책임당원의 약 40%를 차지하는 영남의 경우 더욱 그렇다.
결국 한 전 대표도 영남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의 마음을 얻지 않는 이상 어려운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다. 현재 여론조사나 국민의힘 내부 분위기를 보면 한 전 대표가 경선에 나가는 것이 단순히 매를 먼저 맞는 수준이 아닐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결정이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에게 기다림이란 가장 중요한 덕목이면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덕목이다. 섣불리 주변 그룹들의 충고만 듣고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채 나섰다가 정치적 가치를 잃은 인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통상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주변 인사들의 정치적 이해를 구분하지 못하고 부추김을 당해 등판했다가 소비됐다. 한 전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