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조기대선에 가장 먼저 출마한 후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기도 전에 개혁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돼 있었던 까닭이다. “역시 국민의힘에서 여러 선거를 승리로 이끈 경험자답게 빨리 움직인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럼에도 극단으로 갈라진 선거지형상 이 후보가 유의미한 득표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선이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 있은 다음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렇게만 말하기는 어렵게 됐다.
이 후보는 3자 구도를 가정하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최대 9%까지 득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회사 메타보이스와 JTBC가 함께 지난 4월 5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선주자 가상 3자 대결에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7%,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23%, 이 후보는 9% 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다.
국민의힘 후보를 홍준표 대구시장으로 바꾸면 이 후보의 지지율은 7%, 오세훈 서울시장·한동훈 전 대표일 경우 8%였다. 일관되게 7~9%의 지지율을 보인 것이다. 아직 대선 초반이긴 하지만, ARS가 아닌 면접조사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유의미한 수치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첫 조사에서 그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봤는데, ‘촌놈 마라톤’ 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수치가 나왔다”고 말했다.
“초반 30일, 反이재명 대표로 동남풍”
이 후보가 현 시점에서 지닌 가장 강력한 장점은 ‘시간’. 이미 후보로 결정되어 있기에 60일 동안 경선을 치를 필요가 없다. 반면 ‘1호 당원’ 대통령을 상실한 국민의힘은 5월 3일에야 후보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이 날짜가 윤 대통령이 파면된 4월 4일부터 따지면 정확히 30일 뒤인 것을 고려하면, 국민의힘 본선 후보보다 30일을 더 번 셈이다. 실제 이 후보는 지난 4월 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예비후보로 가장 먼저 등록했다.
이 후보 측은 이렇게 벌어들인 시간으로 ‘보수 본진’을 공략한다는 방침이다. 탄핵 인용 뒤 이 후보의 첫 방문지는 다름아닌 TK였다. 탄핵 인용 이후인 4월 7일 경북 칠곡과 영덕을 찾아 이 후보 조부모 산소에 성묘한 뒤 산불 이재민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는가 하면, 9일엔 대구에서 새벽 5시부터 출근길 인사를 펼쳤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아니라 유세차와 확성기만 사용하지 못할 뿐, 사실상 선거유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그저 큰 대사를 앞두고 조상께 잘 싸우겠다고 인사드린 것”이라면서도 “동남(영남)풍이 불 것이다. ‘국민의힘 후보로는 방법이 없는데 이준석으로는 된다’고 느낀 본진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 자신도 “(본인이 당선됐던)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 연설을 통해 ‘탄핵의 강을 넘자’고 주장했던 것이 2021년 6월 3일이었다”면서 “대구·경북 당원들이 그 말에 동의해 줘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당대회 승리를 거뒀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준석 후보 측 관계자는 “분명한 전략을 가지고 TK를 방문한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의 이런 ‘집토끼 전술’의 전략적 기반은 이재명 포비아다. 김성열 개혁신당 공보특보는 주간조선에 “민주당 후보가 이재명 전 대표로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선거 구도가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며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동기가 매우 큰 선거인데, 이 후보는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 이재명 체제를 이겨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와 가까운 한 인사도 “탄핵된 대통령을 선출한 정당의 대선 후보가 승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재명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두려운 보수 유권자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 전략은 국민의힘 내 비윤계인 한동훈, 유승민 등의 주자들이 경선에서 노리는 ‘전략적 선택론’과 궤를 같이한다. 정말로 먹혀들지는 아직 알 수 없다.정치평론가인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에 회의적이다.
“이 후보에게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반이재명의 대표주자였다는 점과 2030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강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탄핵정국에 들어서서 그런 자산이 옅어진 측면이 있다. 이 후보는 어쨌든 보수 정치인인데,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보수 지지층과 이대남이 모두 이탈했다는 측면이 있다. 윤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하다 보니 ‘반이재명’보다 ‘반윤석열’ 이미지가 강해졌다. 대선 주자는 정체성을 먹고사는데, 그런 측면에선 정체성이 모호해진 것이다. 이번 대선의 메인 선거 구도가 내란 심판과 이재명 견제로 짜이는 건 사실이지만, 이 대표와 국민의힘 후보 양쪽으로 지지세가 몰릴 확률이 아직은 더 크다.”
이 전 대표가 공직선거법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등 리스크를 상당부분 덜어낸 것도 이 후보에게 호재는 아니다. 이미 오랜 시간 공격받아온 이 전 대표에게 이른바 ‘유효타’가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는 이에 대해 “지금까지는 야당 대표였던 이 대표를 공격하면 ‘탄압’처럼 보였지만, 대통령이 사라진 지금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단일화는 없다, 국민의힘과는…
지금도 많은 전문가들이 대선에서 이 후보의 역할을 ‘캐스팅보트’쯤으로 본다. 박빙 승부가 펼쳐질 경우 양 진영에서 단일화를 제안할 수도 있고, 이 후보가 완주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을까. 일단 이 후보는 지난 8일 “모욕적 주장(성상납)을 통해 나를 내쫓았는데, 반성이나 사과의 기미가 없는 상황에서 단일화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대선 완주의지를 강력히 드러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자신을 두고 “결국 우리 쪽으로 올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보수가 매번 한데 묶여서 망신을 살 수는 없다”며 “새로운 보수 문화를 만들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핵심 측근도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재명 반대’와 ‘이준석 단일화’밖에 없겠지만, 하자고 해도 우리가 안 한다”면서 “단일화를 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지층이 달라야 하고, 단일화를 하면 지지층이 70% 이상 이동해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며 “아스팔트 보수가 주된 지지층인 국민의힘과 단일화는 모든 조건이 어긋난다”고 했다.
민주당과는 어떨까. 한 개혁신당 인사는 “대선후보로 완주해야 내년 지방선거 후보들이 나오는 상황이니, 이 후보는 일단 본인이 양보하는 단일화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이런 일은 있을 수 있다”면서 “이재명 전 대표가 DJP연합처럼 ‘40대 총리’를 제안하면 받아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도 0.7%포인트 차로 석패했는데, (본인이) 이회창이 되는 게 제일 무서울 것이다. 이 전 대표 입장이 그렇게 돌아설지 어떻게 알겠나? 이 전 대표는 무서우리만큼 실용적인 사람이다. 최근 내세우는 ‘중도보수론’도 그러한 작업을 위한 ‘빌드업’의 일환일 수 있다.”
“김문수가 나오면 1등 노린다”
국민의힘 후보가 누구로 결정되느냐는 이 후보에게 가장 유의미한 변수다. 요컨대 ‘아스팔트 후보’가 나오면 ‘2등 이상’도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열 특보는 “여권 후보가 친윤 후보로 확정되면 ‘1등 전략’으로 갈 것”이라며 “지난해 동탄 총선도 콘크리트라던 국힘 후보 득표를 15%대까지 떨어뜨리지 않았나”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실제 이 후보가 3자 대결 여론조사에서도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것은 ‘찐윤’으로 분류되는 김문수 전 장관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설 때였다. 정치평론가인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김문수 전 장관이 출마할 경우, 국민의힘이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보수 지지층의 표가 이어지며 이 후보가 15~20% 득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4월 셋째 주 대선 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년층 사이에서 반발이 격렬했던 연금개혁을 무위로 돌리고, 여성가족부를 노동인권부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 개선을 포함한 노인 의제도 공약에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를 개혁하고 경찰 국가수사본부의 수사 역량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는다. 거대 양당이 경선을 치르는 동안 어젠다를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강남역의 대로변에 선거 캠프도 차렸다. 대선후보 사무실로는 이례적인 1층으로, 원래는 화장품 로드숍 따위가 들어서던 자리다. 개방형으로 디자인해 젊은 층에 소구할 수 있는 캠페인을 치른다는 목표다. 이 후보가 이미 후보로 결정돼 있는 만큼 속도를 내기 용이하다는 평을 받는다.
박상병 교수는 “소속 당이 작은 이 후보가 단기필마로 대선에 뛰어든 셈이니 좋은 결과를 초반에는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좋다면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엄경영 소장도 “탄핵 선고 직후에 조사된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의 지지율이 높게 나왔지만, 그다음 주부터는 국민의힘 후보들 지지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며 “이 의원이 주목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데, 국민의힘도 친윤일색 후보보다는 본선 경쟁력을 고려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지 않겠는가”라고 비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