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모(27)씨의 군(軍) 보직 청탁 의혹에 연루된 핵심 인물은 당시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A씨다.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인 A씨는 현 정권 출범 후 국방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임용돼 국방부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장관 아들이 2017년 주한미군 카투사로 복무했을 당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이었던 이철원 예비역 대령이 “횡포가 심했다”고 지목한 사람도 A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 정책보좌관은 장관의 정책 수행을 보좌하는 게 주된 역할이다. 하지만 A씨는 장관의 보좌관이라기보다는 집권 세력의 ‘대군(對軍) 민원 채널’ 역할이 더 두드러졌다는 말이 많았다고 국방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방부 장관정책보좌관 12명 가운데 8명이 집권당이나 청와대 출신으로 파악됐다. 현 국방장관 정책보좌관 2명도 민주당·청와대 출신이다.
관가(官街)에서는 장관 정책보좌관들의 위세를 짐작케하는 일화가 여럿 회자된다. ‘실세’로 통했던 한 부처 장관 정책보좌관이 중형급 차량인 ‘소나타’가 배차되자 “내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고 소리 질러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국방부에선 장관 정책보좌관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장군들에게 함부로 대한다는 얘기도 돈다. 한 군 관계자는 “젊은 나이의 정책보좌관이 장군들에게 반말하는 모습에 속으로 경악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지난 4월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장관 정책보좌관의 부처 내 입김도 강해졌다고 한다. 한 예로 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임명한 민주당 출신 정책보좌관들은 통일부 안팎에서 ‘문고리 파워'로 통한다. “이 장관의 신뢰를 바탕으로 신임 장관정책보좌관들이 남북경협 등의 중요 현안을 다루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외교부의 한 정책보좌관은 각종 현안과 관련해 강경화 장관에게 직보(直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그는 정권 실력자를 보좌한 적도 있다.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됐다. 별도의 공개 채용 없이 추천만으로도 장관이 임명할 수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정책보좌관들은 ‘늘공(직업 공무원을 일컫는 은어)’들에게 국정 철학을 전파하는 역할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각 정권마다 ‘제 사람 챙기기’ 수단으로 제도를 악용하면서 설립 취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9월 현재 각 부처 정책보좌관 가운데 민주당과 청와대 출신은 약 65%에 달한다. 전체 18개 부처 가운데 여당과 청와대 출신 정책보좌관이 자리 잡은 곳은 최소 16곳으로 분석됐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듬해인 2004년에 공개된 장관 정책보좌관 중 여당과 청와대 출신 비율 60%(45명 가운데 27명)와 비교하면 ‘낙하산’ 비율이 더 커진 것이다.
여당·청와대 출신 정책보좌관의 후임 자리는 대부분 당·청 출신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정책보좌관 자리가 집권 세력 내부 인사들 간에 대물림식으로 충원되면서 정권의 부처 장악과 민원창구로 전락한다는 것이 야당 주장이다. 현 정부 들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전 환경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청와대·환경부의 연결 고리로 의심받았다. 추 장관 아들 통역병 선발 문제와 관련해 민원 창구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장관 정책보좌관은 현재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