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24일 대기업 사장급 임원들을 다음 달 열릴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대거 채택했다.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하다며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國政) 전반을 감독하는 국정감사를 의원들이 지역구 민원 해결에 활용하는 행태가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與野)는 다음 달 7일 시작하는 농해수위 국정감사 증인 21명을 채택하는 데 이날 합의했다. 농해수위 국정감사 증인 21명 중 62%(13명)가 대기업 경영진이었다. 국민의힘 정운천(비례)·정점식(경남 통영·고성) 의원이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출연 실적이 저조한 책임을 묻겠다’며 대기업 임원들을 대거 국감 증인으로 신청한 데 따른 것이다. 정점식 의원은 애초 5대 그룹(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총수를 한꺼번에 국감 증인으로 신청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야 협의 과정에서 기업별 사회 공헌 파트 책임자인 주은기 삼성전자 부사장, 양진모 현대자동차 부사장, 강동수 SK 부사장, 전명우 LG전자 부사장, 유병옥 포스코 부사장, 이강만 한화 부사장, 여은주 GS 부사장, 정영인 두산중공업 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농해수위 관계자는 “현행법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혜택받는 기업들이 농어촌 상생기금을 출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촉구하는 차원에서 증인으로 부른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재계를 중심으로 “국정감사 명목으로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불러내 출연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반발이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여야 구분 없이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 법안들을 내놓으면서 출연금 내는 문제로 국감에 불러 세우는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의원들의 민원 해결용으로 의심되는 기업인 호출 행태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작년엔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지역구에 있는 식품 업체 ‘후로즌델리’의 분쟁 해결을 위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이 의원은 롯데 측에 “후로즌델리와 합의하지 않으면 신 회장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이 의원은 증인 채택을 철회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이날 낸시 메이블 워커 구글코리아 대표, 레지널드 숀 톰슨 넷플릭스서비시스 코리아 대표 등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했다. 구글코리아 대표가 국감에 불려 나오는 것은 최근 ‘구글 통행세’ 논란이 불거진 구글 인앱결제 강제 움직임 때문이다. 톰슨 대표는 이른바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에 관한 질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과방위 국감의 최대 관심사는 네이버·카카오 측의 출석 여부였으나 증인·참고인 최종 의결에서 두 기업은 우선 제외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서는 여야가 모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이사를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배달 앱과 영세 자영업자 상생(相生)방안과 관련한 질의가 예상된다. 또 정부의 에너지 정책 전환과 관련해서는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 김석기 삼성전자 부사장, 오세철 삼성물산 부사장 등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관심 끌기용’이란 의구심을 낳는 증인 신청도 적잖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날 성명 미상(未詳)의 ‘펭수 캐릭터 연기자’를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관련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은 “EBS가 펭수 캐릭터로 경영 성과가 크게 개선됐는데, 펭수를 연기하는 인물이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건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지난 2018년에 이어 올해도 국감 참고인으로 채택됐다. ‘농수산물 판매 촉진을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 방안 논의’를 하자는 국민의힘 안병길 의원 요구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