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19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개정해 40여일 남은 올해 안에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지난 18일 회의에서 후보자 선정에 실패하자 하루 만에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 교섭단체(국민의힘)에 줬던 ‘공수처장 거부권(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는 방향으로 공수처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작년 12월 공수처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야당의 거부권을 보장해줬다”고 반박했는데 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공수처법 개정 작업에 착수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공수처를 연내에 반드시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이낙연 대표도 “소수 의견을 존중하려 했던 공수처법이 악용돼 공수처 가동 자체가 저지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고 했다.

민주당은 “수만 번 표결해도 현재의 법으로 후보자 선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야당이 거부권을 악용해 공수처 출범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거부권 행사 기한을 제한하는 것은 명분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공수처장 추천위 활동 시한을 최장 40일로 제한하거나, 공수처장 추천 요건을 현행 ‘추천위원 7명 중 6명 이상 동의’에서 ‘5명 이상 동의’로 완화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국민의힘은 “야당에 거부권이 있어 공수처가 중립적이라더니 후안무치하다”고 반발했다.

與 작년엔 “야당 마음에 안들면 공수처장 될 수 없다”고 하더니…

더불어민주당은 19일 “훌륭한 제도도 악용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걸 야당 스스로 증명했다”며 국민의힘이 가진 ‘공수처장 거부권’이 문제라고 공세를 가했다. 국민의힘 측 추천위원 2인이 반대를 거듭해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할 때는 반발하는 국민의힘을 향해 “야당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공수처장이 될 수 없으니, 공수처 설치에 동의하라”고 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야당 추천위원 작태에 분노한다”며 “합리적 근거를 통한 거부권 행사가 아니라 오로지 공수처 출범을 막기 위해 거부권을 악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방해권으로 전락한 거부권을 포함해 합리적 안을 도출해 정기 국회 내 (공수처 출범)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회 의석수에 따라서 (공수처장을) 결정할 때가 왔다”고 했다. 사실상 민주당이 낙점한 인사를 공수처장에 앉히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상민, 백혜련, 박주민 의원

민주당은 이미 야당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법 개정안을 여럿 발의한 상태다. 공수처장 추천위원 7명 중 6명이 동의해야 하는 조항을 5명 이상만 동의해도 되도록 하는 법안, 후보자 추천을 최장 40일 안에 끝내도록 하는 법안 등이다. 민주당은 야당 거부권을 완전히 없애지는 안되, 횟수나 시한 제한을 설정해 공수처장 추천을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해 공수처법을 처리할 때는 야당 교섭단체에 주는 거부권을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라고 강조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작년 4월 “야당 거부권이 확실히 인정되는 방향으로 돼 있다”고 했다. 박주민 의원도 작년 6월 야당 거부권 보장을 강조했지만, 이날은 “공수처 출범 방해 목적으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거부권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여당을 겨냥해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를 비호할 인물을 공수처장에 앉히기 위한 입법 독재”라고 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법치국가에서 상식에 위반된 것”이라고 했다. 유상범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추천위 회의는 야당 거부권을 무력화하려는 법 개정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고 했다.